불행들이 지뢰처럼 묻혀 있는 시

시인 박지우 첫 시집 <롤리팝> 펴내

등록 2012.08.14 16:52수정 2012.08.1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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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인 박지우 시인 박지우가 첫 시집 <롤리팝>(북인)을 펴냈다

시인 박지우 시인 박지우가 첫 시집 <롤리팝>(북인)을 펴냈다 ⓒ 이종찬

나는 한 번도 날지 못한 청동 새예요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날
가장 깊이 비가 내리는 곳을 찾아가면
쇼팽의 손가락이 빗소리로 내려요


신호등의 손짓에 뛰어가는 사람들
자전거도 비를 피하는데
길모퉁이 의자 하나
비를 맞고 있어요
- 44쪽, <기억의 나사를 풀다> 몇 토막

"이 빗줄기로 상처를 꿰맬 수 있다면/ 내 몸에 한 방울의 슬픔도 스며들지 않겠죠"(<기억의 나사를 풀다>)라며 스스로를 "한 번도 날지 못한 청동 새"에 빗대는 시인. "철학도 살지 못하고/ 낭만도 살 수 없는 세상에/ 마음 한 포기 심고 싶네"(<폭설>)라며 쏟아지는 함박눈에 시린 마음 한 자락을 툭 던지는 시인.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을 포옥 껴안을 수 없을 것 같은 시인. 언제 보아도 저만치 한 발짝 물러서서 삼라만상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저울질하다가 제 풀에 지쳐 그대로 삼라만상이 내뱉는 속울음이 되어버리고 마는 시인. "꾸역꾸역 찬밥을 먹"으며 "삼십 년 전 언니의 가을"(<자정 넘어 찬밥을 먹네>)을 더듬는 시인. 그가 늘 슬픈 눈빛을 툭툭 던지는 시인 박지우다.

지난 2009년 <시선>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 시인 박지우가 첫 시집 <롤리팝>(북인)을 펴냈다. 이 시집 제목인 '롤리팝'은 우리 말로 '막대사탕'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막대사탕처럼 마냥 달콤하기를 바라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이 도시는 그리 달콤하지 않다. 단맛 속에 알싸하게 스며드는 서럽고도 씁쓸한 맛이다.

이 시집은 모두 4부에 60편이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도/ 맞지 않는 구두를 신고"(<인형의 집>) 있다. <시간의 침묵> <바람의 모자> <기억의 나사를 풀다> <불면을 발송하다> <몽산포에 묻다> <반쪽의 방> <기울어진 오후 2시> <립스틱을 바른 오후> <사탕반지> <꽃병 속에 기억이 자란다> <하늘에 창문 하나 내고 싶다> <소설 속 주인공> 등이 그 시편들.


배배 꼬인 날씨를 진공포장하고 싶다

a 박지우 첫 시집 <롤리팝> 이 시집 제목인 ‘롤리팝’은 우리 말로 ‘막대사탕’이다

박지우 첫 시집 <롤리팝> 이 시집 제목인 ‘롤리팝’은 우리 말로 ‘막대사탕’이다 ⓒ 북인

내 욕망의 꺾음 그래프.


가장 자유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 <자서> 모두

박지우 시인이 이 시집 머리에 스스로 쓴 글은 시처럼 아주 짧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스스로 자꾸만 자라는 무한욕망을 꺾은 그 그래프에서 무한자유를 만끽하는 나를 찾아 헤맨다. 시집 제목도 그냥 우리말로 '막대사탕'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롤리팝'이라고 쓴 것도 어쩌면 시인 스스로 그 어떤 것에서 한창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은 허상이다. "화살표"(<목표>)가 넘쳐나지만 "심장은 온도계가 없"다. 그 세상에는 "환전되지 못한 생각들"과 "머릿속에는 숫자만이 가득"하다. 그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외국어가 거리에 떠돌고/ 물음표는 늘 앞으로 튕겨" 나간다. 까닭에 "쉼표와 느낌표에 인색"(<과녘>)한 그 세상에는 마침표도 없다.

시인이 죽은 듯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비가 무단횡단"을 하고, "뿌리가 잘린 화환들"이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불륜의 신나 냄새를 풍기는 여관골목에서"는 "엘리스의 고양이가 웃고" 있다. "배배 꼬인 날씨를 진공포장하고" 싶은 시인이 바라보는 이 "세상은 비의 무덤"이어서 "무너진 하늘이 울컥"(<비의 무덤>) 하는 곳이다.

어머니 젖꼭지를 물고 읽어낸 풍경

세상에서 비는 그냥 물로 읽히지만
숲에서는 나무들의 피로 읽히지요

저기 걸어다니는 나무들 좀 보세요
내 안에는 길이 없는데
도시를 떠도는 나무들이 자꾸만 젖은 손을 내밀어요
- 32쪽, <숲의 홈페이지> 몇 토막  

시인 박지우가 쓰는 시는 온통 욕망으로만 가득 찬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드리운 슬픈 그림자다. 시인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비를 이 세상 사람들은 그냥 물이라 여기지만 나무들에겐 피와 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야 해요"(<2월 28일 문득>)라며 종로 시계 골목을 찾아가는 것도 참 나를 찾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시인이 어릴 때 살았던 마을은 어떤 곳일까. "은비늘 반짝이는 미루나무를 돌아 등이 휜 고목이 서 있던 마을"이었다. 그 곳에는 "산등성이에 다리 뻗던 뭉개구름"이 있었고, "물소리를 떠먹던 냇가"가 있었다. 그 풍경은 시인이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읽어낸"(<소설 속 주인공>) 아주 오래 묵은 기억이다. 

시인은 스스로 뻗은 첫 뿌리를 찾고 있다. "내 몸에 달라붙은 상표를 떼어내며 생의 뒷골목"(<에델바이스>)으로 가는 것이나 "두드리지 마세요 내 안의 모든 방들을 폐쇄했어요"(<반쪽의 방>), "사내의 혓바닥에서는 거짓말이 자랐다... 나는 손톱에 덧칠을 하기 시작했다"(<네일아트>), "다 읽기도 전 당신의 페이지를 덮습니다"(<립스틱을 바른 오후>) 등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희망과 절망이 엇박자를 치며 돌아가는 곳

훌라후프를 돌리는 아이가 있지 기차가 출렁이는 강도 돌리고 달콤한 사과도 돌리지 짝사랑하는 테라우스도 돌리고 자지러지는 햇살도 돌리지만 찢어진 내 과거만 그대로 서 있어

악몽을 묻었어 꿈이 자꾸만 붉게 젖어들어 페이지를 넘기듯 훌라후프를 돌리지 내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고 주인 없는 생각도 돌고 삐걱대는 남편도 돌아
- 65쪽, <훌라후프> 몇 토막 

시인 박지우가 펴낸 첫 시집 <롤리팝>은 이 세상을 포옥 찌르는 달콤한 막대사탕이다. 여기서 말하는 '막대'와 '사탕'은 채찍과 당근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이 세상 속내 깊숙이 숨겨진 모순덩어리를 끄집어낸다. 시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희망과 절망이 엇박자를 치며 돌아가는 곳이다. "허공에 꽃을 피우는 동안/ 시간이 자글자글 타들어"(<촛불>) 가는 곳, 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 시인은 그곳에서 시를 줍고 이 세상을 읽는다.

시인 박후기는 시인 박지우 첫 시집에 대해 "시의 모퉁이마다 모든 불행들이 지뢰처럼 묻혀 있다"고 쓴다. 그는 "시인은 도시의 가난과 죄, 그리고 불면을 지고 살아가는 영혼을 끊임없이 거리로 내몬다"며 "비루한 생이 발목 잡혀 있는 곳이 지뢰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해가지 않는다"고 적었다.

시인 조연호는 "박지우의 시집 <롤리팝>의 시편들은 고정된 크기나 넓이 등에 주목하지 않는다"며 "박지우의 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런 존재의 위태로움 속에서 더욱 명징해지는 존재의 원천적 불빛인지도 모른다. 의미가 소거된 세계의 위치들은 의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빛난다"고 썼다.

기차가 지나가는 강가에 서서 "아버지가 술 냄새 나는 그림자를 달고 오는 날이면/ 빚쟁이들은 돼지를 몰고 텅 빈 외양간"(<깊은 강>)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시인 박지우. 그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2009년 <시선>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금 '시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롤리팝

박지우 지음,
북인, 2012


#시인 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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