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품'이라 부르마!

[지리산 종주기 1]

등록 2012.08.18 16:10수정 2012.08.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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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네모'라고 말한다면. 그 빈칸에 나는 '품'이라고 적어 넣고 싶다.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미움을 받은 사람도,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도 지리산은 다 품어 줄 수 있는 넉넉함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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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성삼재서 바라본 구례 산동면'지리산 온천 방향' ⓒ 강창덕


지리산은 한국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국립공원. 북한산 국립공원의 다섯 배 규모다.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산청. 하동. 함양의 3도 5개 시·군에 걸쳐있다. 그래서 삼도봉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까지 있다. 한해 평균 3백만~4백만 명이 찾는다는 지리산은 3대(代)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선잠은 기본이다.


주능선 종주는 흔히 노고단(일부는 화엄사에서 죽음의 계단을 걸어서 가는 코스가 정석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에서 천왕봉까지 34㎞ 구간을 일컫는다. 하지만 산악인(분명 나는 산악인이 아니다)들은 노고단에서 대원사까지 1백리 길을 종주라 부른다. 이번 휴가 기간에 둘레길 간다는 생각으로 노고단에서 대원사까지 코스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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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대피소 한 밤중에 쏟아지는 폭우 사진 ⓒ 강창덕


대신, 하루 이동거리를 최소한으로 잡고 지리산을 눈에 담고 가자는 취지로 계획을 세웠다. 산행 도중에 만난 서울 참여연대 회원 한분은 산악 마라톤 연습한다고 지리산을 열 번을 넘게 왔지만 기억에 남는게 아무것도 없어 이번에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지리산을 느끼기 위해 왔다고 했다.

4박 코스는 노고단에서 1박 (해발 1422미터), 연하천 1박(해발 1586미터), 세석 1박 (해발1600미터 ), 치밭목 1박(해발 1200미터) 하는 것으로 말이다. 성질 급한 사람의 경우 2박 이면 충분하고, 쉬엄쉬엄 간다는 산행도 3박이면 족한 코스를 4박으로 잡았으니 시간적으로 매우 넉넉한 일정이었다. 제일먼저 대피소 예약이 급선무였다.

예약은 15일전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오전 10시부터 가능하기에 경쟁이 녹녹지 않았다. 동행인과 동시에 예약을 하기로 하고 노고단은 대기자 명단 상위에 들면서 그나마 쉽게 예약이 되었다. 연하천도 그나마 쉬웠다. 사실 노고단을 출발해서 종주를 하는 사람 치고 연하천 대피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쟁이 조금 덜 하기 때문에 예약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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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 1박 이후 새벽 출발전 한치 앞을 구분 할 수 없는 안개 ⓒ 강창덕


문제는 세석대피소였다. 가장 치열한 장터목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 바로 세석대피소이기 때문이다. 여름 휴가철에는 동시에 2만 명이, 휴일에는 1만여 명이 동시에 접속 할 정도이니 10:00 땡 하고 순간적으로 클릭을 하면 서버가 다운 (일종의 디도스 공격 처럼)되는 현상이 빚어진다. 컴퓨터를 정상화 시켜 다시 접속하면 이미 예약은 끝이 난 상태이고 대기자 명단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로또에 비유 할 만큼 예약이 어려운 세석대피소도 예약이 가능했다. 노고단 마고(인간을 탄생시킨 여신) 할매가 도와준 덕분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대피소인 치밭목은 운영은 개인이 하기에 인터넷, 전화예약도 안되고 선착순으로 직접 가는 방법 말고 달리 도리가 없다.

사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한 정보는 치밭목 대피소는 여름 휴가철에도 절반이상 차는 법이 없다고 하니 나름 여유가 있었다. 대피소 예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으니 이제 부터는 먹을 것을 준비하는게 일이다. 두 사람이 4박 5일 동안 (13끼니) 먹어야 할 분량이 만만치가 않았다. 행동식, 매 끼니 마다 식단을 어떻게 짜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가 참으로 난감했다. 하루 이틀 정도면 뭐 대충 하면서 때울 수는 있지만, 13끼니는 생각보다 많았다.

일단 부피가 적고, 쉽게 먹을 수 있고, 가벼운 것으로 정하고 검색에 들어갔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강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리산종주는 일반적으로 노고단에서 지리산 등뼈를 이루는 능선산의 20개 봉우리( 1,500m이상 봉우리만 16개 )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매우 심하다. 하루 3끼니가 아니고 5끼니를 먹어야 버틸 수가 있다.

동결건조 식품으로 물만 부어 끓이면 먹을 수 있는 위주로 구입했다. 김치국밥 2끼니, 짜장 밥(2개), 시금치 된장 국(2개), 양놈들이 먹는 씨레이션 3끼니(2400 kcal ), 누룽지 2끼니, 고추장 참치, 젓갈로 식단을 짯다.

행동식으로는 개당 약 200 kcal 인 건과류가 들어 있는 에너지바(매치매치바와 비슷) 15개, 개별 포장된 치즈 15개(개당 90 kcal), 미숫가루(3회 분량), 소고기 육포(100g+3개) 약간의 과자, 건과류와 몇 가지 상비약 등이다. 산에서 치약은 사용 할 수 없기에 소금은 필수다.

개인 물품은 여벌옷, 타올, 양말, 바람막이, 스패츠, 판초우이, 버너, 코펠, 화장지, 물수건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충분한 비닐 봉투, 지퍼팩 등이다. 포장지는 철저히 분리해서 내용물만 가져가는데도 50리터 배낭 두 개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국 종류나 씨레이션은 전부 다 합쳐도 5리터도 안되는 부피였지만 종류가 많다보니 배낭은 벌써 배가 남산만 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시인 이원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을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별 받은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화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 하면 자살을 꿈꾸는 임아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덧붙이는 글 | 개인불로그에 중복게재 하였음을 알립니다.


덧붙이는 글 개인불로그에 중복게재 하였음을 알립니다.
#지리산 #지리산 종주 #성삼재 #노고단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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