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매자예요, 용기내서 연락주세요"

한국 친부모님 찾는 독일입양인 1981년생 김매자씨

등록 2012.08.30 20:16수정 2012.08.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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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서울올림픽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다. 미국 CBS 인기 뉴스앵커인 브라이언트 검벨은 아침뉴스에서 올림픽 주최국인 우리나라가 해외입양을 통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세계 1등 해외입양송출국인 것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아닌가?"를 입양기관 관계자에게 질문했다. 당시 1988년 한 해만 우리나라가 아동 6463명을 돈을 받고 해외입양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이 해외입양을 통해서 막대한 돈을 번다고 미국인 뉴스 앵커가 질문했을 때, 입양기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해외입양을 보내는 동기는 비경제적 이유이고 단지 도덕적 차원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물론 이 입양기관 관계자의 답변은 사실이 아니었다.

1988년 당시 한국아동 한 명이 해외입양 되었을 때 입양기관이 받는 수수료가 아이 1인 당 미화 5000불 정도였다. 그 해 6463명의 아동이 해외입양이 되었으니, 대략 3200만 불을 우리나라 어른들이 아이를 팔아서 외화벌이를 한 것이다. 당시 이 액수는 광주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정권 입장에서 볼 때 적지 않은 돈이었다.

최근에 미국 <Adoption Family in America>에 의하면 2009년과 2010년 사이 미국 양부모들이 한국아동 한 명을 입양하는 데 지불한 비용은 평균 3만7586불로  나타났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을 돈을 받고 판매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생후 6개월 만에 독일로 해외입양... 우울증과 불안감에 시달려

 인터뷰 중인 김매자씨
인터뷰 중인 김매자씨김민영

그러나 독일 입양인 김매자씨는 아기를 팔아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한국인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돈을 주고, 인도주의와 자선사업의 이름을 빌어서, 쇼핑하듯이 아기를 사는 부유한 서구 국가들을 비판한다. 친부모를 찾아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김매자씨를 30일 '뿌리의집'에서 만났다.

김매자씨는 1981년 7월 27일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에서 순찰 중인 경찰에 의해 발견 되었다. 발견 당시 매자씨는 기아상태에 있었다. 매자씨를 발견한 천현지서의 한 순경은 파주 반도의원(현 파주 사임당로 835-1에 있는 중앙외과)에 전화를 하여 기아상태에 있는 매자씨를 돌봐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틀간 병원입원 후 1981년 7월 29일 매자씨는 경신양연회라는 고아원에 입소한다.


그 후 1981년 10월 13일, 매자씨는 경신양연회로부터 홀트로 보내지며 그로부터 3개월 후인 1982년 1월 25일, 생후 6개월 만에 독일로 해외입양 보내진다.

김매자씨의 입양부는 독일의 한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입양모는 파트타임으로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입양부모는 매자씨 보다 4살 많은 언니와 2살 많은 오빠를 친자녀로 키우고 있었지만 아시아 여자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 매자씨를 해외입양 한 것이다.


양부모가 독일 중산층 가정이라 그런지 물질적으로 매자씨 어린 시절은 그럭저럭 행복했다. 문제는 어느 때부터 인지 그녀에게 자아의식이 생긴 후 부터였다. 이 자아의식이 생긴 후부터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고, 시도 때도 없이 다가오는 극도의 외로움, 우울증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심한 분노감 때문에 불면증으로 시달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특별히 매자씨는 어려서 독일아이들의 자신을 향한 인종차별이 죽도록 싫었다.

그러나 한 여성으로 성장하여 성인이 된 매자씨는 또 다른 차별에 시달렸다. 어려서는 독일아이들이 자신을 아시아 소녀라고 놀리고 차별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 여성으로 성장 한 후에는 자기 외모가 '이국적 이라며'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접근하는 독일남자들이 너무 싫었다. 그녀는 "저는 유럽인, 특히 독일인들이 무서워요, 인간을 신뢰하기가 너무 힘들어요"하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2005년 김매자씨는 이태리계 독일 파트너와 딸을 하나 낳았다. 그러나 그녀의 우울증과 강박관념은 딸을 낳고부터 오히려 훨씬 심해졌다. 스위스항공에서 일을 하고 있는 김매자씨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동안 양모가 딸을 돌보아 주었다. 그런데, 딸을 잃을 것 같은 극도의 불안감과 강박관념이 갑자기 매자씨에게 엄습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거의 10분에 한 번씩 양모에게 전화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양모가 매자씨에게 "얘야, 제발 안심해라! 어떻게 10분에 한 번씩 엄마에게 이렇게 계속 전화할 수 있니? 제발 엄마를 믿고 전화하지 마라!" 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매자씨의 끊임없는 우울증, 불안감, 강박관념 때문에 지난해 그녀는 4개월간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도 했다. 정신병원에서 마사지를 받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상태가 좋아지든 듯했다. 그러나 병원을 퇴원하면 그녀의 우울증은 입원 전과 마찬가지인 상태로 돌아왔다. 정신과 의사는 매자씨가 친부모가 그리워서 그러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여기가 정말 내 모국이구나", 인천공항에서 흐른 눈물

 입양보내지기 전 김매자씨
입양보내지기 전 김매자씨김매자
그래서 이런 알 수 없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친부모를 찾고자 지난 6월 입양 보내진 지 30년 만에 매자씨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매자씨 눈에서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주위에 시선에도 불구하고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30년 동안 떠나 있었고 입양 간 후 한 번도 온 적이 없었지만 인천공항에서 한국의 푸른 하늘을 보고 공기를 들이 마시니 "여기나 정말 내 모국이구나!" 하는 이상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 후 홀트를 방문하고 친부모를 찾기 위해 2주간 동분서주 했지만 꿈에 그리던 친부모에 대해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감을 가슴에 안고 그녀는 독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독일에 돌아간 후 매자씨는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 8월 8일 친부모를 찾기 위해 다시 모국을 방문했다. 회사 상관의 특별배려로 휴가를 받아서 한국을 또 방문한 매자씨는 9월 11일에는 일 때문에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에는 꼭 친부모를 찾으면 좋겠는데요..." 하며 아쉬움을 남기는 매자씨의 모습이 너무도 안 돼 보이고 불안해 보인다.

"한국에 와서 길거리를 다니면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아서 좋아요. 그냥 나 자신 그대로 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독일에서는 내 눈을 더 크게, 내 피부를 더 하얗게 화장을 해야 하지만 한국에선 내 모습 그대로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편합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매자씨는 정말 편안해 보였다.

"도대체 쇼핑하듯이 아이를 사는 게 말이 되나여? 예쁜 신발이나 지갑, 옷을 사듯이 돈을 주고 노란아이, 까만 아이, 하얀 아이를 골라 사다니... 저는 한국정부나 한국인을 나무라기보다는 독일이나 미국 등 돈을 주고 아기를 해외입양해 가는 부유한 나라들을 비판합니다."

"제가 부유한 나라 독일에서 해외입양인으로 살면서 행복하냐고요? 천만에요. 저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돈으로 아기를, 인간을 살 수 있다니? 해외입양은 결코 인도적인 일이 아닙니다.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나라를 돕고 싶으면 아이를 돈을 주고 사갈 것이 아니라 그냥 가난한 나라에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됩니다. 아이를 돈을 주고 매매하는 것은 결코 자선사업이나 인도주의가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아기를 돈을 주고 사는 현재의 해외입양산업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해외입양은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한 다국적 사업 일뿐입니다. 저는 독일 등 부유한 나라들이 돈을 주고 아이를 사는 이 인신매매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매자씨의 눈물어린 절규가 기자의 가슴을 심하게 두드린다. 김매자씨는 기자의 눈을 직시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물질적으로 부유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사람과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 그 중에 누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질문은 나 자신을 더 깊이 돌아보게 만들었다. 매자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기자는 이런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인간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다음은 김매자씨가 한국친부모에게 드리는 사연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안녕하세요?
당신들의 딸 김매자입니다. 얼굴과 이름은 모르지만 저는 항상 당신들을 그리워합니다. 내 사랑은 항상 당신들을 향해 있고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들과 강제로 헤어짐으로 인해서 제 마음속에는 아무것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커다란 고통과 상처가 있습니다. 전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전 당신들을 그저 보고 싶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찾을 용기를 낸 것처럼 당신들도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는 끊임없이 당신들을 찾고 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을 어디서 찾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의 유일한 희망과 꿈은 나를 낳아준 당신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당신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기회를 제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너무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딸 김매자 올림

김매자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02-3210-2452)으로 연락 바란다.
#김매자 #김성수 #입양 #독일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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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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