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의 한국 대통령, 신라 왕보다도 못했네

[노래의 고향 13] 안민가

등록 2012.08.31 09:33수정 2012.09.14 15:58
0
원고료로 응원
a

금오봉 오르기 조금 직전에 만나는 마애석가여래좌상.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시원하다. ⓒ 정만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내 탓'을 강조한다. '내가 못 먹여서 내 자식이...' '내가 못 가르쳐서 내 자식이...' 등듸 표현은 그 자책감에서 나온 화법이다. 어렵게 사는 현실을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다.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에 관심이 없으니 정치인들은 정말 편하다.

'내 탓'이라는 글자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는 일이 유행한 때도 있었다. 특정 종교에서 선도한 국민의식 개혁운동이었는데, 시작할 때의 의도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정치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격이 됐다. '내 탓'은 가난도 질병도 교육 불평등도 모두 국민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구호가 됐기 때문이다.


이발소 벽에 흔히 붙어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도 '내 탓'과 동일한 가치관을 퍼뜨린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고? 경제적 양극화, 정치 권력의 독재 등이 가족 구성원끼리만 화목하다고 해결될 문제인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네 꼴'이나 잘 살펴보라는 취지로 왜곡된 채 전파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도 마찬가지다.

a

솔숲이 아름다운 경덕왕릉 ⓒ 정만진


신라 경덕왕 때 충담사가 지은 안민가(安民歌)도 흔히 그런 식으로 이용됐다. 충담사의 창작 의도와는 정반대로 후세 정치인들은 그 노래를 악용했다. 충담사는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살아가면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갈파했지만, 이 노래는 '백성은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부분만 강조하는 정치적 해석에 시달려 왔다.

충담사 "왕이 왕 같아야 백성이 충성할 것"

삼국유사 권2에 보면, 경덕왕은 재위 24년(764) 3월 3일, 귀정문(歸正門) 누각 위에서 신하들에게 말한다. 

a

고위봉에서 삼화령으로 오르는 등산로. 이 곳을 오르면 통일전과 서출전에서 시작하여 포석정까지 이어지는 '남산 관통도로'가 나타난다. ⓒ 정만진

"위엄 있는 스님 한 사람을 데려오라."


이때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승려 한 사람이 길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신하들이 그 스님을 왕에게 데려왔다. 그러나 왕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는 그런 스님이 아니다."

그러면서 그 스님을 돌려보냈다. 다시 누더기옷을 입은 스님 한 사람이 남쪽에서 걸어왔다. 왕이 그를 보고는 기뻐하면서 누각 위로 영접했다.

"그대는 누구요?"
"소승은 충담(忠談)이라 합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소승은 중삼중구일마다(每重三重九之日) 차를 달여 남산(南山)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彌勒世尊)께 드리는데, 지금도 갔다가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그 차를 한 잔 나눠 주실 수 있겠소?"

스님의 차는 맛이 특이하고 찻잔 속에서 기이한 향기가 풍겼다. 

"스님이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사뇌가(詞腦歌)가 그 뜻이 무척 고상하다고 들었소. 나를 위해 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理安民歌)를 지어 주시오."

충담은 왕의 명을 받들어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a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고위봉은 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사진의 오른쪽 가까운 곳은 용장사터가 있는 지점이다., ⓒ 정만진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자애로운 어머니라,
백성을 어리석은 아이라 여기시면
백성이 그 사랑을 알리.
꾸물거리면서 사는 물생(物生)들이
사랑을 먹고 다스려져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한다면
나라 안이 유지됨을 알리.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하리.

경덕왕이 주문한 노래의 주제는 '왕의 다스림(理)을 받아 편안(安)한 백성(民)'이었다. 하지만 충담사는 '편안한 나라'를 노래했다. 왕과 충담사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경덕왕은 신라 후반기의 전성시대를 이끈 임금다웠다. 그는 자신의 요구와 다른 내용이었지만 충담사의 노래를 '아름답다(佳)'고 여겼다. 그래서 충담사에게 '왕의 스승(王師)'으로 모시려 했다. 충담사는 끝내 왕의 부탁을 사양했다.

안민가, 유교적 노래로 재단하면 옳지 않아

안민가는 결코 '충'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수직적 가치관의 노래가 아니다. 충담사는 당대 사회의 성격상 왕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면 백성도 백성답게 그들에게 '충'성할 수 있다는 논리는 사실 얼마나 혁명적인가.

충담사는, 최고 권력자가 지도자답지 못하고, 관료들이 공복답지 못하다면, 일반 국민들은 정치적 행정적 권력 앞에 무턱대고 복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찌 안민가가 유교적 노래인가. 안민가를 유교적 노래라고 가르치는 교실은 정치권력에 무조건 복종하라는 반민주적 교육 현장일 뿐이다. 안민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관통하는 민주주의 정치학의 논리를 당당하게 펼치고 있다.

a

삼화령을 가로질러 남산의 서쪽과 동쪽을 관통하는 도로가 '무식하게' 개설되어 있다. 1970년 준공. ⓒ 정만진


충담사가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미륵세존에게 기도를 올렸던 남산의 삼화령은 어디인가. 세(三) 갈래로 갈라진 꽃(花)처럼 앉아 있는 고개(嶺) 삼화령은 고위봉 494m와 금오봉 468m를 잇는 남산의 주능선과 용장사터 가는 길이 셋으로 나눠지는 부분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삼화령 아래 장창골의 돌굴에서 1925년에 옮겨온 아기 같은 삼존석불이 보관돼 있다. 높이가 본존상 162cm, 왼쪽 보살상 98.5cm, 오른쪽 보살상 100cm밖에 안 되는 데다, 얼굴 가득 귀여운 미소를 머금은 모습까지 두드러져 흔히 '삼화령 애기부처'라 불려진다. 충담사가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찾아뵙고 차를 올린 바로 그 부처가 아닌가 여겨지는 불상들이다.

a

삼화령 애기부처. 아기 같은 크기와 미소가 특징이다. 그래서 경주박물관을 찾은 답사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정만진


경주박물관에서 이 삼화령 애기부처를 볼 때마다 나는 한 가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충담사는 그 많은 불상들 중에서 어째서 특히 이곳 삼화령의 삼존불을 해마다 찾았을까.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寺寺星張) 탑은 기러기떼처럼 이어졌다(塔塔雁行)'고 한 곳이 남산이라는 사실은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신라 당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147여 곳의 절터, 82여 기의 탑에 106여 구의 불상이 남아 있는 남산에서 유난히 이곳을 찾은 까닭은 무엇일까.

충담사는 삼화령 삼존불의 아기 같은 모습과 미소가 좋아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극락에 가면 누구나 아기처럼 되지 않을까. 인간 세상의 다툼과 고통이 사라진 세계에서 아기처럼 천진난만하게 살아가고 싶어서가 아닐까.

1970년, 군사정권은 관통도로로 남산을 자르고

a

목이 달아난 용장사터 삼륜대좌불 ⓒ 정만진

그러나 충담사도 미처 예상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경덕'왕'보다 훨씬 반민주적인 '대통령'이 동남산의 서출지 옆에서 서남산의 포석정에 이르기까지 삼화령 고개를 무지막지하게 뭉개고 도로를 개설할 줄은. 자신의 노래 안민가를 '대통령에게 충성하라'는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을 줄은.

삼화령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리는 산등성을 타면 금세 김시습이 머물렀던 용장사터에 닿는다. 김시습은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를 창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장사터의 장관으로는, 남산 전체를 내려다보며 홀로 비바람에 맞서고 있는 삼층석탑도 대단하지만, 보기 드문 원형 대좌를 삼층으로 깔고 앉아계시는 삼륜대좌불이 으뜸이다.

목 위가 달아난 채 몸체만 처연하게 남아 있는 정경을 보노라면, 선거 때만 주인일 뿐 평상시에는 종이나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는 '머리 없는' 백성들을 대하는 것만 같아 푸른 하늘 아래에서 공연히 눈물짓는다.

덧붙이는 글 | TNT뉴스에도 9월 중에 송고할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TNT뉴스에도 9월 중에 송고할 예정입니다.
#안민가 #남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2. 2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