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동의' 없는 물리적 거세 "나치 때나 있던 법"

작년에도 같은 내용 발의됐다 폐기... 새누리당도 부담

등록 2012.09.08 09:37수정 2012.09.0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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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나 재활이 불가능한 성 범죄자에 대해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이 법안 내용이 사실상 강제적으로 물리적 거세를 시행하는 내용이어서 '나치 독일 때나 있던  법'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문제 법안은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 지난 4일 국회에 접수된 '성폭력 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이다. 같은 당에서 류지영·함진규·이현재·이채익·강은희·박성호·고희선·윤명희·민현주·김을동·김명연·정희수·이종훈·최봉홍·신경림·김정록 의원 등 17명이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민주당에선 전정희 의원이 법안발의에 서명했다가 논란이 되자 공동발의자에서 빠지기로 했다.

이 법안은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자 중 재범의 위험성이 높고 교화나 재활이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검사가 '외과적 치료'를 청구할 수 있고, 법원이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 또는 감정 의견 등을 바탕으로 이를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외과적 치료'는 물리적 거세, 즉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말한다.

문제는 이 법안대로라면 범죄자 본인의 동의 없이도 물리적 거세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법안을 발의한 박인숙 의원은 지난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물리적 거세를 위해선 본인의 동의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다른 나라의 입법례를 들면서 "동의를 받고 안 받고 이건 나중에 시행령에서 다시 자세히 다룰 일이고, 제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물리적 거세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데 있어 '본인의 동의' 유무는 핵심적인 부분인데,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대통령령 제정시 논의하겠다는 입장만 밝힌 것. 박 의원이 각종 인터뷰에서 "독일, 덴마크, 폴란드, 체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이런 유럽 나라에서 이 법적 근거가 돼 있다"고 예를 들고 있지만, 이들 나라에서도 본인의 동의는 필수적이다.

법안 내용상으로도 박 의원이 제안한 법안은 '강제 물리적 거세'에 가깝다. 박 의원은 이 법안에서 형법 개정을 전제하고 있는데, 현재 9종으로 돼 있는 형벌의 종류에 거세형을 추가하는 것이다. 전근대적인 형벌제도인 신체형벌을 법적으로 부활시키자는 것.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이미 성폭력범죄로 징역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치료감호 또는 보호감호 중인 사람에게도 이 같은 치료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인숙 의원실 관계자는 "성범죄의 재범률이 높아 조금이라도 이를 낮춰 보자는 취지의 조항"이라고 설명했지만,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불보듯 뻔한 조항이다.  


국가인권위 "헌법적 권리 침해... 강제 거세는 나치 독일이 유일"

 지난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주최로 열린 촛불집회에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어린이들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 주최로 열린 촛불집회에 어머니와 함께 참석한 어린이들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이와 거의 비슷한 내용의 법안은 18대 국회 때인 지난해 신상진 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바 있다. 이 법안은 결국 상임위 상정도 되지 않은 채 폐기됐지만 화학적 거세에 대한 사회적 논란도 많은 상태에서 물리적 거세를 들고 나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법안이 논란이 되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같은해 5월 상임위 결정을 통해 공식적인 반대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외과적 치료법안의 외과적 거세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위반하여 헌법 제12조 제1항, 자유권규약 제9조 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외과적 치료 대상자의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헌법 제10조, 제37조 제1항에서 보장하고 있는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인권위는 또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강제 외과적 거세를 도입한 나라는 나치 시대의 독일이 유일하고, 외과적 거세를 예외적으로 도입하는 경우에도 치료의 개념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데, 유럽 고문방지위원회는 당사자의 동의를 전제로 외과적 거세를 실시하고 있는 체코에 대하여도 인권침해를 이유로 그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침해의 성격이 분명한 법안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하고 나선 데 대해 당 내에서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정파와 이념을 떠난 대통합 행보를 하고 있는데, 이 법안이 논란이 되면 당이 보수색채를 강화한 것으로 비치지 않느냐는 우려다.

홍일표 대변인은 6일 이 법안을 당 차원에서 추진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면서 "요즘 성범죄 등 강력 사건들이 빈발해 그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다가 그런 법안까지 나오지 않았나 생각된다"며 "물리적 거세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몇 군데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물리적 거세 #나치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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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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