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힘주는 기자들, 드라마보면서 공부 좀 하세요

[리뷰] 언론인의 자세, 드라마 <뉴스룸>에 담겨 있다

등록 2012.09.10 14:01수정 2012.09.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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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얼마 전에 시즌1을 마친 미국드라마(미드) <뉴스룸>을 보고서 느낀 점이다. 지난 6월 24일에 첫회가 방영되면서 이날에만 미국 내 214만 명을 브라운관 앞에 모이게 했다.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드라마는 지난 8월 26일을 마지막으로 시즌1 10부작을 모두 마쳤다.

언론이라는 소재를 사실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뉴스룸>. 감동을 억지로 쥐어짜내지 않으면서도 뉴스의 존재 의미까지 짚어내는 <뉴스룸>. 이 드라마는 매주 토요일 시청자들을 매료시킴과 동시에 세간으로부터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뉴스룸>이 가지고 있는 매력, 이 드라마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드라마에서 저널리즘 배워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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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 HBO

첫회 오프닝 장면부터 파격적인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라고 당연히 생각해오던 미국인들을 향해, 주인공이자 뉴스 앵커인 윌 맥커보이는 충격적일 만큼 신랄한 독설을 내뿜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 강연회에서 윌은 '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답변을 내놓는다.


"미국은 위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중략) 당신들은 지금 최악의 세대에 속한 일원이란 말입니다. 그런 당신이 지금 미국이 위대한 이유를 묻고 있다니... 난 도대체 당신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위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옳은 것을 위해서 일어섰고 도덕을 위해 투쟁했습니다. 도덕적인 이유로 법을 만들기도, 폐지하기도 했습니다. 가난을 물리치려고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희생도 하며 이웃을 걱정하기도 했지요.

우리는 지성을 열망했지만 우습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중략) 지난 선거에서 우리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그런 걸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쉽게 겁 먹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에게 정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하고 존경받는 사람들의 지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닙니다."

그는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보려는 시선을 가린 채 자화자찬만 늘어놓는 이들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놨다. 그는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는 언론인이 아니라, 대중에게 필요한 말과 그들이 속한 사회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언론인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다.

'진짜 뉴스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시사프로그램을 맡게된 윌이 방송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사과의 말도 가슴을 울린다.

"지금 이 순간부터 무엇을 방송할지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확한 정보가 주어진 현명한 유권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진리를 기준으로 결정될 겁니다.

폭넓은 관점에서 정보를 다루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집된 정보들, 그 자체만으로는 뉴스가 탄생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팩트에 따를 것이며, 간접비방·추측·과장·불합리에 맞설 것입니다.

우리는 손님의 입맛에 맞춰 이야기를 요리해 내놓는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아니며, 또한 팩트만을 쏟아내는 컴퓨터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뉴스는 인간이라는 맥락 아래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죠. 제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함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동시에 제 의견과 다른 합리적인 현명한 의견도 여러분이 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이 사과문의 끝에서 자신을 '언론의 엘리트'라고 소개한다. 그것은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만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언론을 이끌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오늘의 모습을 스스로 꾸짖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주류 언론과 공중파 방송들이 시청률에 매달려 사건의 본질을 전달하지 못하고, 되레 논란을 부추기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가려버리는 현실을 꼬집는 자성의 목소리인 것이다.

재미·감동·사람 냄새...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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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뉴스룸>의 등장인물들. ⓒ HBO


<뉴스룸>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아론 소킨은 이야기를 만들고 긴장감 있게 이끌어가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이미 실존인물들의 삶을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 <머니볼> 등에서 각본 실력을 인정받았다.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한 정치드라마 <웨스트 윙> 역시 그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그가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필수 요소들인 소재의 흥미를 극대화 하는 능력,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살리는 능력, 유머를 적절한 때에 배치하는 능력 등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윌은 성격이 괴팍하다고 소문난 뉴스 앵커다. 하지만 그는 "100만 명이 보는 나쁜 뉴스보다 100명이 보더라도 좋은 뉴스를 만들고 싶다"는 신념을 가진 프로듀서 맥켄지를 만나면서 점차 변한다. 시청률을 위해서 기계적인 중립성을 지키던 그는 '좋은 뉴스에 대한 열정을 쏟으며, 시청률까지 동시에 잡는' 언론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뉴스룸>은 뉴스 앵커 윌과 책임프로듀서 맥켄지뿐만 아니라, 뉴스가 방송되기 전후의 취재·편집 과정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발로 뛰는 제작진들의 모습을 묘사함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스튜디오 밖에서 영상과 음향을 맡은 스태프들도 비추고, 시청률을 신경쓰며 정치권과의 마찰을 이유로 주인공들을 압박하는 사주와 그에 맞서 방송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임원진들의 노력 또한 조명한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져 지루해지지 않도록, 곳곳에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코믹 요소들을 빼놓지 않았다. 직장 내 동료들 간의 마찰과 경쟁 의식, 그러면서도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우정을 나누는 등의 설정을 가미했다. 아론 소킨은 이야기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모든 요소들이 빛을 발하도록,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각본부터 연출까지 신경을 썼다.

더 이상 미국드라마 보면서 감탄 뱉지 않길

<뉴스룸>의 시점은 2년 전부터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멕시코만 기름유출 사고, 미 특수부대의 빈 라덴 사살 사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아랍의 민주화혁명 등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사고들을 다룬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들을 시청률 확보를 위해 자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사건의 본질을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하려는 언론인들의 열정과 고뇌를 그리면서 미국 언론의 현실을 꼬집으려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오늘날 한국 언론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치권과 각계의 사건·사고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과정에서 사건의 핵심과 본질은 흐려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태풍과 성범죄 혹은 정치인의 막말 등 자극적인 아이템들만 부각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예도 있다. 언론이 시청률에 치중하자 왜곡·편파 보도나 오보가 발생하는 것이 바로 그것.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와 같은 언론들의 상층부에는 정부 여당에 의해 낙하산으로 발탁된 임원진들이 존재한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며 방송 내용을 검열하고, 부당한 이유로 언론인들을 징계하며 시사프로그램 다수를 폐지 또는 중단시켜 언론의 비판 기능 자체를 후퇴시키는 일이 떠오른다.

<뉴스룸>은 미국의 언론이 권력과 시청률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보수정당인 공화당이 '무늬만 공화당'이 아니라 보다 상식적이고, 자국민을 생각하는 온건한 정당이 되기를 바라는 미국인들의 마음도 담고 있다. 여기서 '미국'을 '한국'으로 바꿔도 의미가 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나는 바란다. 시청자들이 <뉴스룸> 같은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필요가 없는 날이 오길 말이다. 언론이 사회의 뒤틀린 부분을 바로잡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드라마 속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뉴스룸> 마지막 화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바보들(The Greater Fool)이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드라마에는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에 숨 죽일 때 한 걸음 더 내딛는 사람들, 그 작은 발걸음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바보들이 한국에, 한국 언론계에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뉴스룸 #아론 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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