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 싼 똥 치워주는데 우릴 벌레 보듯 하죠"

[서평] 소외 계층의 '낮은 목소리' 담아낸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등록 2012.09.14 10:08수정 2012.09.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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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을 징후라 여겼다. 우리 사회가 겪게 될 온갖 먹먹함의 징후로. 서울의 한복판, 어떤 세입자들이 살아보고자 올라선 망루에서 불탄 주검으로 내려왔다. 용산참사 이후,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의 절망들이 이어졌다. 일상과 참상의 경계선은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물론, 모든 일을 그들의 책임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권의 초반부에 발생했던 그 상징적인 사건만큼이나, 분명한 것은 있다. G20 정상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4대강 사업 같은 '크고 화려한' 세상을 향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작고, 조촐한' 사람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외 계층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는 '복지 포퓰리즘' 운운과 함께 사라졌다. 우리 사회의 최우선 가치는 뜬구름 잡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되었다.


이 비루한 몇 년을 지나면서, 언론이 비추는 세상은 늘 위태로웠다. 온갖 끌탕이 넘쳐흘렀다. 동시에 나도 분명하게 무뎌져갔다. 무수한 타인의 고단함을 인식의 저편으로 밀어놓았다. 모두가 살아남고자 아우성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서, 그 무딤을 생존의 필수조건이라 변명하면서. 점점 고통이나 한탄, 오열 같은 단어들은 의미가 엷어졌다.

모두는 자연스레 혼자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소외 계층의 '낮은 목소리' 찾아간 기자들

<한겨레> 오피니언넷부 기자들이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신문사에 글을 보낼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 신문사로부터 기고를 청탁받을 기회는 더더욱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 그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싣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 낮은 곳의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언론의, 오피니언면의 역할이라 믿었다. - <한겨레> 임지선 기자,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여는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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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책표지 ⓒ 레디셋고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씀, 레디셋고 펴냄)는 그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책이다. <한겨레>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기자가 누구에게나 개방된 기고란 조차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싣지 못하는 '낮은 목소리'를 찾아갔다. 글쓴이들은 기획기사나 취재백서가 아니라, 편지나 대담 등의 다양한 형식을 차용했다. 덕분에 '4분단 뒤쪽, 1분단 구석'의 목소리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돈을 줄 때, 그들은 우리를 벌레 보듯 한다. 우리가 가끔 바퀴벌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얼굴도 안 쳐다본다.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린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지폐를 끼워 넣는다. 우리와 손이 닿기 싫다는 뜻이다. 자기들이 싼 똥을 치워 주는 우리에게 너무한 거 아닌가. 고약한 똥 냄새보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더 힘들다." - 정화 노동자, 38쪽

첫 번째 장인 '일하는 손은 외롭다 - 소외된 노동'은 '감정 노동자, 정화 노동자, 전문계 고졸 노동자, 학업 중도 포기자, 인턴사원, 직장인 임산부, 직장 왕따'를 아우르는 노동문제에 귀 기울인다. 때로는 열악한 노동환경보다, 사람에 더 절망한다는 증언이 가슴을 저려온다. 서비스 종사자 10명 가운데 3~4명은 고객으로부터 인격 무시나 폭언을 경험했다거나, 일반 시민에 비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비율이 두 배 가량이라는 통계치는 그 단면이다. 구조화된 차별과 억압이 정당화되는 상황마다, 뒤통수의 따가움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상담이 효과가 있어요. 혼자 캐나다로 유학 갔던 여중생은 음악 듣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고막이 터졌어요. 카페에 '죽고 싶다'는 글을 남겼는데 몇 번 쪽지를 주고받다가 나아졌어요. 얼마 전에는 한국에 들어와 저에게 안부를 전했어요.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받아요." - 자살 방지 카페 운영자, 246쪽

'삶이 아픈 사람들 - 인간답게 살고 싶다'에서는 '동성 커플, 언론 보도 피해자, 자살자 유가족, 지하 거주자, 희귀 난치병 환자들, 연탄 난방 가구, 독거노인'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돌이키면, 신문 한 편에서 가끔씩은 마주했을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공감의 상실'이 분명해진다. 자살 방지 카페를 운영 중인 이는 자신도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의 경험은 '공감'이야말로 자살을 막는 최선이라고 알려주었다. 몇 년 동안, 홀로 1000여 명을 상담했다는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한 번은 외국인 유학생 단체에서 한국 친구들과 결연을 맺어 준다고 해서 참석한 적이 있어요. 아시다시피 한국에 백인 유학생들은 드물어요. 그런데 참석한 한국 학생들 가운데 몇 명이 '뭐야, 순 동남아 애들이잖아' 하면서 행사장을 나가버렸어요. 거기 있던 외국인 유학생들은 전부 교양 있고, 영어도 잘하는 친구들이었는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나 봐요." - 개발 도상국 출신 유학생, 259쪽

마지막으로 '한글 배우는 어른들, 각방 부부, 배고픈 아이들, 저소득층 비만 아동, 개발 도상국 출신 유학생, 벽지 마을 주민, 보육원 아이들'의 목소리가 '뒤돌아보면… -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서 울려 퍼진다. 편견과 오해가 그들을 내쳤다는 말들에 코끝이 찡하다.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핍박받아야만 했다는 유학생의 외침이 날카롭다. 인격과 교양이 아니라, 피부색만으로 '미개함'을 결론짓는 사회 인식을 꼬집는다. 전국 26개 대학의 유학생 중 68%가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는 한 언론사의 설문조사 앞에서, 미안한 미안함을 가누기 어렵다.

함께 고민하는 일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정규직 여성이든 비정규직 여성이든 원한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를 돌보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허락하라'는 요구는 일터와 가정을, 일과 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 안미선(한국 여성 민우회 상근 활동가), 87쪽

책은 단순히 '지금, 이곳'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더 나은 다음을 함께 고민한다. 개별 꼭지마다, 변화를 모색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실었다. 명확한 현실진단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그 개선책을 제시한다. 정책적인 수준에서부터, 시민들의 소소한 연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의 도움말이 가득하다.

"풍요로운 대한민국,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풍요 속의 빈곤처럼 수많은 아이들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도 단순히 '배고프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시선을 넘어 복지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 최형미(굿네이버스 복지사업팀장), 245쪽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사회 시스템의 붕괴'를 지적한다. 예컨대 2009년 430억 원을 정점으로 한, 희귀 난치성 환자를 위한 의료비 지원은 2년 만에 320억으로 급감했다. 100만 명 이상이라고 추산되는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이 생명권 위협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난방비가 소득의 10%를 차지하는 이른바 '에너지 빈곤층'도 위기를 맞았다. 그간의 에너지 복지 정책을 총괄할 에너지 복지법 제정이 2010년에 불발로 그쳤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복지 포퓰리즘' 미명 아래에서 소외 계층을 지탱해 줄 최소한의 안전망이 소멸되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공동체가 몰락하고 개개인의 인간 소외가 가속화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낮은 목소리'의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론은 '연대'의 회복이다. 사회 시스템을 새로이 다지는 일도, 공동체의 부활과 인간 소외를 멈추는 길도 거기서 시작된다. 단순히 분노나 동정으로 그치기에는 '낮은 목소리'의 울림이 너무 간절하다. 책은 절절한 현실이 우리들의 지근거리에서 현재진행중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누구나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시대에서, 이것은 모두의 이야기와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위한 손길이 필요하다.

'낮은 목소리'를 외면했던, 나 스스로가 두려워졌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를 읽고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작은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행동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 <한겨레> 이정국 기자, 맺는 말 중

인식의 저편으로 밀어놓았던, 타인의 고단함이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매 쪽마다 감정이 치밀었다. 온전히 내 것일 감정들이, 사뭇 낯설었다. 아마 낯설음의 크기만큼, 나는 주변의 '낮은 목소리'에 무딘 사람이었을 터다. 책을 통해서 마주본 대상은 다름 아니라 나 스스로였다. 언론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경고음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떠넘겨왔다. 마냥 인색했었던 절망들이 그제야 분명해졌다. 대한문 분향소 앞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영정을 바라볼 때도, 나에게 22인이라는 숫자는 그저 수치에 불과했었다.

그래서 책을 덮었을 때, 두려워졌다. 시대와 사회의 매몰로만 돌리기에는 모두들의 이야기가 깊고 가팔랐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어쩔 수 없다고 외면했던 자신이 떠올라 서글펐다. 지나쳐버렸을 '낮은 목소리'가 나를 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었다. 매 순간, 나는 무슨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책이 불편함으로서, 각인시킨 공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한 명의 공감 따위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다만, 시작이라 믿고 싶다. 나를 비롯한 독자들의 공감이 모여서 '낮은 목소리'와 발걸음을 맞춰나가는. 글의 앞머리에서 징후를 말했다. <우리는 왜 혼자가 되었나>가 하나의 징후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 사회의 끌탕을 넘어서고, 이겨내는 그런 징후로…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의 시, <담쟁이>

덧붙이는 글 |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씀, 레디셋고 펴냄, 2012년 8월, 15000원.


덧붙이는 글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씀, 레디셋고 펴냄, 2012년 8월, 15000원.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 시스템이 붕괴된 한국 사회의 아찔함을 읽다

이정국.임지선.이경미 지음,
레디셋고, 2012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서평 #한겨레 #낮은 목소리 #소외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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