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 '멘붕 스쿨'의 인기 캐릭터 '갸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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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은 꽤 짜임새있는 전개를 갖추고 있다. 갸루상 이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은 소통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컨텍스트를 무시하거나 벗어나 독백을 거듭할 뿐이다.
예컨대 소영이는 "그거나 그거나" 똑같다고 우기고, 성원이는 "미국영어는 다르다"고 억지를 쓰며, 납득이는 "납득시켜드리겠다"고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말만 한다. 이런 소통장애는 점점 도를 더해 태훈은 자신의 의도를 배반하는 액센트에 시달린다. 승환이는 우기지도 않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갸루상에 이르면 의미와 소통 그리고 정체성 자체가 파괴된다.
소통과 자아정체성의 붕괴를 상징하는 갸루상으로 이르는 과정에 캐릭터 하나를 더 삽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기꺼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천거할 것이다. 그녀는 최근 들어 점점 더 우리의 의미세계를 파괴하는 일을 해왔으며, 갸루상 앞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영이에게 "헬리콥터균이나 헬리코박터균이 그게 그거"듯이, 박 후보가 보기에 5·16쿠데타는 4·19혁명을 계승한 것이며 5·16쿠데타는 4·19혁명을 지키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소영이에게 "베트남 칼국수나 베트남 쌀국수나 그게 그거"듯이 박 후보에게 1차 인혁당 사건과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모두 그게 그거다(1차 인혁당 사건 또한 재심중이며 무죄판결이 예상되고 있다는 점도 물론 그녀는 모른다).
5·16 쿠데타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박 후보의 말도 불가피한 것과 최선을 뒤섞는 소영이 화법의 일종이다.
우리를 '멘붕'에 이르게 하는 박근혜의 화법박 후보는 때로 납득이처럼 우리를 납득시키려 한다. 새누리당의 지난 19대 총선 당선자 문대성이나 김형태 파문에 대해서는 "사실이 확인되면 거기에 따라 당이 (결정)할 거니까 더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얘기 같다"고 했으며,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에 대해서는 "개인비리일 뿐, 당이 돈 받은 거 아니"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납득이 안되자 이들은 하나같이 출당, 사직, 탈당했는데, 그것이 납득이랑 유사한 박근혜식 "콘셉트"인 듯하다(이 글 쓰는 중에 또 홍사덕 전 의원도 탈당했다).
하지만 이 콘셉트에는 예외가 있다. 동생의 비리 의혹에 대해 박 후보는 "본인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아무도 납득하지 않았지만, 박지만씨는 아직 동생에서 탈당하지도 사직하지도 않았다.
<멘붕 스쿨>의 태훈이는 연기하려는 바로 그 순간에 연기에 실패한다. 의도의 과잉이 의도의 배반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박 후보는 태훈이의 거울상과 같다. 그녀는 자신의 발언을 잘 연기하지만 그것을 관할하는 초자아가 지쳐 졸고 있을 때마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2004.4.9)에 출연한 박 후보는 곤란한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우자는 거냐"며 진행자 손 교수를 쏘아붙였다. 이런 예들은 여럿이지만 역시 백미는 지난해 가을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이 박근혜 후보를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기자 질문에 "병 걸리셨어요"라고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 것이다.
박 후보는 박정희의 딸일 뿐 아니라 유신 시절 여성구국봉사대를 적극적으로 조직하던 활동적인 퍼스트 레이디였고 사립대학과 거대 장학재단의 운영자였으며, 오랫동안 보수 정당과 정권의 비중 큰 정치가였다. 그런 그녀가 5·16 쿠데타와 10월 유신의 피해자들에게, 나아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국외자인 척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는 승환이가 상담실에 나타나듯이 그렇게 느닷없이 그런 분들의 유가족을 찾아간다. 그리고 놀란 유족들은 상담실의 선생님(송중근分)처럼 깜짝 놀라 묻는다. "사과하러 왔니" 그러면 박 후보는 승환이처럼 말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녀는 사과를 말해야 할 자리에 위로를 말하고 화해가 요청되는 곳에 통합, 그것도 대통합을 읊조린다.
끔찍한 유머가 펼쳐지고 있다그런데 위로하는 자의 위치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통상 가해자로부터 위로받지 않는다. 가해자의 딸로부터도…. 우리가 위로를 구하는 자는 상처에 공감하지만 삶의 은혜로움 덕에 그 상처받은 자보다는 덜 상처받아 아직 사랑을 나눌 마음의 여력을 가진 제3자이다. 우리는 그런 자로부터 얻은 위로를 자양분으로 스스로를 일으켜세워 가해자를 용서하는 고양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박 후보가 말하는 '위로'는 최악의, 끔찍한 유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