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밭에서 노다지 캤습니다

가뭄과 우박 견디고 수확의 기쁨을 안겨준 고구마를 캐내며

등록 2012.09.22 14:56수정 2012.09.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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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고구마 좀 캐 봐요. 밑이 제대로 들었는지 살펴보기도 하고요."
"아직 너무 이를 텐데요. 고구마 순이 파란 것을 보면 10월에나 캐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맛보기로 몇 개 캐봐요. 이파리만 너무 무성해 알갱이가 제대로 들기는 했는지 걱정돼요."


 기둥뿌리 같은 느낌을 주는 호박고구마
기둥뿌리 같은 느낌을 주는 호박고구마최오균

지난 21일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호미를 들고 고구마밭에 가 땅을 헤집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호미로 땅을 조심스럽게 후비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호미 끝에 기둥뿌리처럼 생긴 고구마가 잡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호미를 놓고 손으로 땅을 파보니 놀랍게도 럭비공 크기만 한 고구마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아내를 향해 소리 질렀습니다.

"여보, 이리 좀 와 봐요!"
"왜요? 지금 바쁜데요."
"글쎄 잠깐만 와 보라니까."

 노다지 같은 호박고구마를 캐들고...
노다지 같은 호박고구마를 캐들고...최오균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아내를 향해 나는 고구마를 두 손으로 들고 흔들어 보였습니다. 마치 노다지를 캔 것 같은 기분으로 말이죠.

"와아, 세상에나! 고구마가 그렇게나 커요?"
"그러게, 꼭 노다지를 캔 기분이야! 마치 노적봉처럼 생기지 않았소?"
"인수봉처럼 생기기도 했네요. 호호."

 럭비공처럼 생긴 호박고구마
럭비공처럼 생긴 호박고구마최오균

평생 이렇게 큰 고구마를 만져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키운 고구마를... 더구나 올해처럼 극심한 가뭄을 견뎌내고, 이처럼 튼실한 결실을 맺어준 고구마가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하늘과 땅, 그리고 임진강에 흐르는 물을 우러러보며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고구마 꽃이 피면 행운이 온다고 했는데, 이거야말로 우리에게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뭄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모래밭을 일궈 텃밭에 심었던 고구마밭에서 100년 만에 한 번 핀다는 고구마 꽃이 아름답게 피기도 했습니다.

100년에 한 번 핀다는 고구마 꽃을 아시나요?


 지난 7월 피었던 고구마꽃
지난 7월 피었던 고구마꽃최오균

처음 보는 고구마 꽃이 그저 신비스럽게만 보였습니다. 더구나 왼쪽 발뒤꿈치에 골절상을 입고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던 아내는 고구마 꽃을 바라보며 얼마나 감격스러워했는지 모릅니다. 귀한 고구마 꽃은 아내에게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아내는 내가 캐낸 고구마를 한광주리 안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리 골절상이 회복됐습니다. 목이 타는 가뭄 속에서 그렇게도 덥고 지루한 여름을 이겨낸 고구마와 아내, 그저 고맙고 대견하기만 합니다.

 모래 밭에서 가뭄과 우박세레를 견뎌내며 결실을 맺어준 호박고구마
모래 밭에서 가뭄과 우박세레를 견뎌내며 결실을 맺어준 호박고구마최오균

 세 뿌리에서 캐낸 한광주리의 호박고구마
세 뿌리에서 캐낸 한광주리의 호박고구마최오균

22일 아침, 호박고구마를 식탁에 올려놓고, 아내와 나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정말이지, 이 고구마는 하늘과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여보, 고구마 맛이 짱이야! 저 큰 고구마 하나면 하루 끼니를 해결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에요. 모두가 당신이 열심히 물을 준 덕분이에요."

 아침식탁에 오른 고구마는 달콤한 호박맛과 고소한 밤맛이...
아침식탁에 오른 고구마는 달콤한 호박맛과 고소한 밤맛이...최오균

찜통에 넣고 삶은 고구마는 짙은 노란색을 띠어 식욕을 돋워주는 것 같습니다. 당도가 높고 수분도 풍부한 호박고구마는 호박처럼 달콤하고 밤처럼 고수한 맛을 풍겨주고 있습니다. 꼭 호박과 밤을 섞어 놓은 듯한 맛이 납니다.

식탁에 오른 고구마를 바라보며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호박고구마 #고구마꽃 #연천군 미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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