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두부를 왜 말려요?"

넘치는 것 나누었을 뿐인데, 현미, 빨래비누, 뻥튀기로 돌아오네요

등록 2012.09.27 09:42수정 2012.09.2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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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못생겼다면서 친구가 건네준 커다란 폐식용유로 만든 빨래비누 ...

못생겼다면서 친구가 건네준 커다란 폐식용유로 만든 빨래비누 ... ⓒ 정현순

▲ 못생겼다면서 친구가 건네준 커다란 폐식용유로 만든 빨래비누 ... ⓒ 정현순

지난 주말이었다. 주방에 있는데 "엄마 두부 말려서 뭐하게?" "두부?두부가 어디 있어?" "여기 있네" 베란다에 말리고 있는 폐식용유 빨래비누를 보고 아들아이가 두부란다. 어이가 없다.

 

"어머 넌 그게 두부로 보이니? 두부를 왜 말리니? 빨래비누잖아. 엄마가 파를 갖다 주었더니 수영장아줌마가 그거 갖고 왔더라고" "그래, 물물교환이네" "그러게  요즘 아줌마들이 자기네 집에 많이 있다면서 이것저것 가지고 오네"

 

주말농장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편이 시간이 많아지자 심심풀이로 우리가족들의 먹거리는 우리 손으로 농사 지어 먹자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주말농장에서 수확하는 농작물과 종류는 조금씩 늘어갔고, 농사의 경험이 쌓여지면서  매해  좋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주말농장에서 수확되는 농작물은 우리가족만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인 것이다. 하여 아파트경비아저씨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딸아이 아파트경비아저씨 등 골고루 나누어 먹기도 한다. 또 남편이 농작물을 가지고 들어올 때 한통로에 사는 분을 만나면 그분들한테도 맛을 보라고 조금씩 나누어 주고 오기도 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부지런히 나누어 먹기를 하고 있다.

 

만약 수확하는 대로 냉장고에 두었다가는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나누어 먹기가 아주 어중간 할 때가 있다. 수확한 채소들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거나 어쩌다 냉장고에 며칠 보관한 후에 나누어 먹기란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우리가 먹으려고 짓는 농사라지만 누구한테 채소를 주면 과연 좋아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상대방들의 반응은 예상밖이었다. 상대방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집에서 짓는 채소니깐 얼마나 공을 들여겠어요. 아무래도 농약도 덜 뿌렸을 테고. 못생겨도 괜찮아요. 앞으로도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하면서.

 

"당연하지. 농약을 아주 안 줄 수는 없고 5번 줄 거 한 번 주는 정도니깐 조금은 질겨. 그런데 몇 번 먹어보면 그것도 이력이 나더라."

 

그랬다. 나날이 늘어가는 남편의 농사솜씨와 그 종류는 우리가 다먹기에는 너무 많다. 결국에는 버릴 수밖에 없는 경험도 수차례  겪었다. 하여 먹기에 괜찮을 때, 밭에서 가지고 오면 바로 나누어 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많은 수확량을 보고 언젠가 딸아이가 "엄마, 광명시 엄마들 모임 홈페이지에 올려서 팔아" "뭘 얼마나 큰돈을 번다고. 아서 아는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지" 했었다. 하여 새로 농작물을 가지고 오면 난 이집 거, 저집 거를 나누어 싸기에 바쁘다.

 

그러던 어느날부터는 그것들이 나한테 되돌아 오기 시작했다. 어느 친구는 뻥튀겼다면서 뻥튀기를, 어느 친구는 시아버지가 폐식용유로 빨래비누를 많이 만들어 왔다면서, 빨래비누, 시골갔다 왔다면서 현미, 미역 등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남편도 채소 잘먹었다면 복숭아·포도 등을 가지고 들어오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낚시갔다왔다면서 우리집 문을 두들겨 물고기까지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오히려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럼 그들은 우스갯소리로 "그래야 싱싱한 채소 또 얻어 먹지요" 한다. 참 정겹다. 이것이 사람사는 정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26일) 다른 친구가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처음에는 "날씨도 좋고 그냥 언니하고 점심 먹고 싶어서" 한다. 그래도 내가 자꾸 물어보니 그제야 "언니한테 좋은 채소 자주 얻어먹기만 하잖아" 한다. "무슨 소리야. 많아서 그런건데. 먹은 것이나 진배없으니 됐어" "아니 언니 그러지마. 이번 딱 한번만" 하면서 사정아닌 사정을 한다.

 

"그래 그럼 보리밥 먹으러 가자. 나 그거 정말 좋아해" "아냐 언니 더 맛있는 거 먹자" "음 난 고기보다 쌈밥종류를 정말 좋아해" "정말이지?" "그렇다니깐" 해서 몇명이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어느새 우리 주말농장은 그렇게 재미있는 물물교환의 근거지가 되고 있었다.

2012.09.27 09:42ⓒ 2012 OhmyNews
#물물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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