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강남 스타일', 갈 데까지 가볼까

'강남 스타일'이 될수 없는 남자들을 위한 변명

등록 2012.10.02 15:58수정 2012.10.0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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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가 아시아를 넘어 팝의 나라 영국, 미국 등 가히 전세계에서 파죽지세다. 유투브에 올린 싸이의 뮤직비디오는 석 달도 안 돼서 조회수가 3억 건을 넘었고 지금도 하루가 멀다하고 그 기록을 다시 세우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싸이의 노래와 스타일을 '세계와 통하는 B급 정서'라고 치켜세우고 혹자는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스페인 곡인 <마카레나>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분석을 떠나서 우리나라의 대중가요가, 그것도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전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분명 흥이 돋고 쾌재를 부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이토록 세계를 열광시키는 '강남스타일'이 도대체 뭐지? 무엇이 이토록 모든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거지? 왜냐하면 싸이의 노래가 뜨기 전에도 이미 우리의 의식 속에서 '강남스타일'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싸이의 노랫말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싸이의 노랫말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노랫말이 다소 직설적이긴 했지만 심의를 의식해서 그런지 자극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도 없었다. 오히려 흔히 '강남' 하면 떠올리게 되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경쾌하고 즉흥적이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럼 싸이의 노랫말을 벗어나서 우리들 내면에 차지하고 있는 '강남스타일'을 생각해보자. 우리들 내면 깊숙이 잠재된 채 틈만 나면 치고 올라오는 우리 안의 숨겨진 욕망으로서의 '강남스타일'을 말이다.


a  미국 WNBC 4 TODAY에서 방송된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미국 WNBC 4 TODAY에서 방송된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 YG엔터테인먼트


구형 아반떼와 고품격 마이바흐, DDM패션쇼와 오뜨뀌뜨르

고금을 통틀어 '촌스럽다'는 시대에 뒤처진, 최신의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다수이자 비주류이며 세련됨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말할 수 없는 '찌질함'이다. 반대로 '세련되었다'는 것은 가장 최신의 것이며 소수이자 주류이며 보통 사람은 함부로 도달 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다. 이를테면 구형 아반떼와 고품격인 마이바흐. 싸구려 중국산 시계와 스위스제 로렉스 시계. DDM(동대문)표와 오뜨뀌뜨르. 그리고 구형 피처폰과 최신형 아이폰5다.


사람들은 시대에 뒤처진 것들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행에 뒤처진 물건과 그것을 사용하는 자들을 은근히 비난한다. 최근의 예로 한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내 스마트폰을 바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처럼 최신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본의 아닌 일탈행위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는 한 달 간격으로, 피처폰을 쓰던 학생이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서 멀쩡한 휴대폰을 물에 빠트리고 발로 밟는 장면을 두 번 목격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리지 못했다.

사르트르의 '실존'과 강남 스타일의 '실존'

진화론과 과학의 발전으로 한때 신의 존재가 인간의 발바닥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시절이 있었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신의 추락'을 논하며 인간의 '실존'을 설명하려고 했다. 신이 그 절대적 지위를 잃자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인간에게 '실존'의 의미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한데 묶어주던 메시야라는 '실존'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신의 존재는 다시 본래의 지위를 찾았지만 동시에 인간에겐 그와 버금가는 '존재'들이 무수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신의 스타일'을 벗어나 뉴욕, 파리, 도쿄, 그리고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서 패션, 신상, 스타일, 얼리어답터 등 이른바  '강남 스타일'로 재현되었다.

즉 오늘날의 '실존'은 고리타분한 '철학과 종교' 이전에 뉴욕이나 파리, 혹은 강남의 한복판에서 오늘을 최대한 세련되게 살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존재방식'이 투영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강남 스타일의 '실존'이란 무엇인가? 최신 유행하는 패션이 강남스타일을 추구하는 자들의 '종교'이고 최신 유행하는 구두와 명품 가방이 그들의 '메시아적 실존'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란 명품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해서 아등바등 대는 무산 계급(프롤레타리아)이나 자영업 중간계층(프티부르주아)가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그들이 욕망하는 대상을 위해서 금빛 골드 카드를 남발할 수 있는 진짜 가진 자들(부르주아)을 가리킨다.

그리고 '강남 스타일'의 히어로가 되어가고 있는 싸이, 그는 내가 알기로 이 시대 진짜 '부루주아'의 한 전형이다. 한때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반도체 장비 회사와 라이벌인 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으므로 나는 종종 그 회사에서 일했던 직장 상사를 통해 신인가수였던 싸이의 가정사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부유한 아버지 집에서 태어나 유학을 가고 버클리 음대를 졸업한 끼 있는 가수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생래적으로 부유한 부모 밑에서 호사스럽게 자란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 '부르주아'를 넘어섰으므로 이제 나는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로이킴과 정준영, 그리고 <슈퍼스타K4>

강남 스타일은 더욱더 입체적으로 변형되고 또한 진화한다. 최근 <슈퍼스타K4>에서 가장 화재가 되고 있는 두 인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강남 출신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방송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미지는 '강남 스타일'의 전형이다. 정준영의 말투(영어)는 세련되었고 로이킴의 교회 오빠 같은 훈남 이미지는 그의 아버지의 기업과 열십자로 '크로스' 되며 일약 <슈퍼스타K4>의 귀공자로 확장되었다.

정준영의 자유로운 사고는 그의 다국적 성장 배경의 결과다. 그가 만약 <개그콘서트> '네가지'의 한 등장인물처럼 시골 두메산골의 촌에서 나고 자랐다면 그의 잘생긴 외모와 수준급의 노래실력은 인정받았을지 몰라도 지금과 같은 화제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선 부자 아버지를 둔 로이킴도 마찬가지다.

이런 대중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제작진은 때로는 '악마의 편집'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벌인 '콜라보레이션'과 라이벌 미션인 <먼지가 되어>는 꽤 훌륭했다. 이들도 어느 정도는 싸이처럼 스스로 '부르주아'를 넘어서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나를 포함한 '또 다른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강남 스타일'이 될 수 없는 이 시대 대다수 남자들의 '실존'은 무엇인가? 단순히 '평범함'이나 '촌스러움'으로 평가받기는 뭔가 억울하다. 나는 평소 옷을 잘 입는 편이 아니다. 패션 테러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옷을 잘 입는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서 며칠씩 대리점 앞에서 노숙을 하는 '얼리어답터'도 아니다. 가능하면 싸게 더 가능하면 중고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즐겨 먹는 음식도 한정되어 있다. 주로 김치찌개나, 순대국, 감자탕, 닭갈비 정도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파스타나 스테이크는 1년에 서너 번, 그것도 친구 결혼식이나 돌잔치에서나 먹을 뿐이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결국 집에 와서는 얼큰한 국물에 밥 한 공기는 말아먹어야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다. 한번은 같이 일하는 여선생님들과(남자들만 파스타를 먹으러 갈 일이 과연 생애 몇 번이나 있을까?) 파스타, 그것도 크림 파스타를 하루에 세 번 먹은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까지 속이 니글거려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아메리카노'보다 달달한 '믹스커피'가 더 맛있는 나

사람들은 쓰디쓴 원두커피보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더 좋아하는 나를 향해서 가끔씩 촌스럽다는 시선을 보낸다. 나의 까칠한 성격을 알기 때문에 노골적인 표현을 하진 않지만. 그런 불편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원두커피보다 믹스커피를 더 즐긴다. 또한 시큼털털한 와인이나 포도주보다 목넘김이 알싸한 소주가 더 좋다. 오성급 호텔 레스토랑의 5만 원짜리 스테이크보다 시끌벅적한 시장 뒷골목 고기집의 8000원짜리 삼겹살이 훨씬 더 나의 아밀라아제를 뿜게 만들고 오장육부를 활발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회를 잘 못 먹는다. 아니 먹기는 하지만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다. 맛은 회상이자 추억인데 나는 어렸을 적에 한 번도 회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해서 사회생활을 갖 시작한 어느 날 회사 회식자리에 내 앞에 몸통은 회가 떠진 채 눈을 깜빡이며 꼬리를 움직이는 생선회가 나왔을 때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나름 입맛을 바꿔 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나를 배신하는 행위였다.

a  미국 WNBC 4 TODAY에 출연한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열창하고 있다.

미국 WNBC 4 TODAY에 출연한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열창하고 있다. ⓒ WNBC


싫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고 해보지 않아서 못하는 것

하지만 반전은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앞서 언급한 것들을 이제껏 내가 싫어서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몇 년 전 '직무관련' 연수를 받을 때 어느 강사의 말은 다분히 충격적이었다. 관련 자료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한 대학 연구팀의 미국사회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문화적 차이와 생활방식을 비교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두 계층의 유년시절의 경험(의식주)이 성인 이후의 두 계층의 삶에(생활 방식)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과였다.

그것은 유년시절엔 배에 등가죽이 붙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 이제는 돈이 있어도 돈을 쓰지 않는(어쩌면 쓰지 못하는) 우리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심지어 강남 한복판에 빌딩을 몇 채씩 가지고 있으면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떨까? 지금 당장 내가 로또를 맞거나 아니면 주식투자를 잘 해서 한번에 수십억 원을 벌었다면 나는 진짜 '강남 스타일'이 될 수 있을까? 자동으로 열리는 차고엔 품격이 넘치는 '마이바흐'를 자랑스럽게 세워놓고 왼쪽 팔목엔 스위스제 '로렉스 시계'를 찬 채 전망 좋은 테라스에 앉아서 부르고뉴산 와인을 음미하며 마룬 파이브의 <원 모어 나이트(One More Night)>를 듣는 게 자연스러울까?

그것은 안타깝게도 거의 불가능하다. 내 머릿속에서 상상 가능한 이미지일 뿐 실제의 나는 감히 그런 거액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쓰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능한 영역 안에서 내가 쓸 수 있는 돈의 한계는 나의 십대 이전에 이미 정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앞서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어떤 객관적 증거나 통계가 없는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내 친구 중 한 명은 그의 전 재산을 털어서 최신형 '제네시스'를 사버렸다. 그와 나의 성장 배경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말이다.

'강남 스타일'이 될 수 없는 남자들을 위한 변명

마지막으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가 몇 달째 '마이바흐'는커녕 중고 '아반떼'조차 사기를 망설이는 것은 싫어서도 아니고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도 아니라 단지 좀처럼 오르지 않는 내 급여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 스타일이 될 수 없는 남자들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강남 한복판이든 달동네 횡단보도 앞이든, 길을 지나가다 그 어떤 화려한 '강남 스타일'을 만나도 결코 곁눈질을 하거나 주눅 들지 마시라. 간혹 이솝우화의 '신포도와 여우같'은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못 먹을거 그 포도는 시다고 생각해버리듯이. 그러나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자기의 결점이나 부족함을 합리화하는 데는 제격일지 모르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는 찌질함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당당하라! 역설적이게도 지금 싸이가 전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싸이 그 스스로 강남 안에서 '강남 스타일'을 버렸기 때문이다. 잘 모르겠다면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나온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시라. 싸이의 노랫말처럼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라면 충분히 강남 스타일이 아니어도 세련되고 멋있어 보일 것이다. 그러니 강남 스타일처럼 세련되지 못한 이 시대 남자들이여 철가방 오토바이를 탔을지언정 갈 데까지 가보자. 당당하게!
#싸이 #강남 스타일 #패션 #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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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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