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언론'은 없었다

방송 3사,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자 뒤늦게 '호들갑 보도'

등록 2012.10.09 14:28수정 2012.10.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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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2년 10월 8일 치 1면 ⓒ 경향신문


정부가 8일 경북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뒷북 대응'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지난 9월 27일 사고가 발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특별한 대책 없이 허둥지둥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피해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피난 행렬을 떠나기까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8일과 9일 주요 언론들이 정부의 늑장대응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는 언론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합니다. 특히 방송 3사가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해 정부의 뒤늦은 대책 마련을 '뒷북 대응'이라며 강도 높게 지적하는 걸 보면 쓴웃음이 나옵니다.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해 언론, 특히 방송 3사 또한 정부의 태도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늑장 대응'을 했다면 방송 뉴스는 '늑장 보도'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한 방송 3사의 보도를 점검하고자 합니다.

피해 발생 열흘째 되던 날 머리기사로 보도한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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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8일 KBS <뉴스9> ⓒ KBS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단지 공장에서 불산가스 유출사고가 발생한 건 9월 27일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범정부 차원의 차관회의를 열고, 정부합동조사단 파견을 결정한 것은 지난 4일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일 주일이 지난 뒤에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얘기죠. 정부가 이 사건에 얼마나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정부가 이렇게 불산가스 유출사고를 '나 몰라라' 하는 동안 피해지역 주민들은 어떤 상황에 놓였을까요. 지난 8일 <연합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피해 주민은 크게 늘어났고, 농작물은 고사했으며, 가축은 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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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2년 10월 8일 치 보도 화면 갈무리 ⓒ 연합뉴스


한심한 것은 '피해 규모가 확산되며 2·3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피해 규모를 축소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4일 공장근로자·주민·경찰 등 1000여 명이 병원에 다녀왔지만, 정부는 가스누출 공장 직원 5명이 사망했고, 18명이 경상을 입었다고만 발표했습니다. 사망자 5명, 입원 7명을 포함해 이미 치료를 받은 환자가 3000명가량이 되는 상황에서 나온 정부 발표가 이랬습니다. 구미 불산누출 사고와 관련해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언론, 특히 방송 뉴스는 어땠을까요. 방송 뉴스도 정부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째가 돼서야 KBS <뉴스9>에 머리기사로 등장한 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부가 구미 사고현장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지난 8일, 방송 3사는 메인뉴스에서 머리기사로 이를 보도했지만, 이전까지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는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 사고 가운데 하나였을 뿐입니다. 방송 3사의 뒤늦은 '정부 질타'를 제가 불편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방송사, 사실상 구미 외면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송도 문제지만 조중동과 같은 수구언론이 방송보다 더 심하게 구미 불산가스 누출을 외면하지 않았느냐'고. 맞습니다. 조중동은 거의 외면하는 수준의 보도 태도를 보였고, 대다수 언론이 정부가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기 전까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언론이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상파 방송3사가 져야 하는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피해 지역주민들이 피해 상황과 정부 대책 등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신문이나 인터넷보다는 방송이 절대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고 발생 직후 방송 뉴스가 제대로 된 보도를 통해 피해 상황을 면밀히 보도하고, 정부의 안이한 대응을 강도 높게 질타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KBS·MBC·SBS 방송 3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 사고 가운데 하나로 '구미 불산가수 누출사고'를 전했을 뿐입니다. 정말 그랬냐고요? 한번 보시죠. 방송사들이 이번 사고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 9월 27일(목) 사고 발생 당일
- KBS <뉴스9> 11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 <뉴스데스크> 4-5번째 리포트로 보도
- SBS <8뉴스> 9번째 리포트로 보도 (단신 수준)


▲ 9월 28일(금)
- KBS <뉴스9> 6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 <뉴스데스크> 11째 리포트로 보도
- SBS <8뉴스> 8번째 리포트로 보도


▲ 9월 29일(토)
- KBS <뉴스9> 7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SBS는 리포트 없음


▲ 9월 30일(일)
- 방송3사 보도 없음


▲ 10월 1일(월)
- 방송3사 보도 없음.
* 이날 KBS는 <뉴스9>에서 싸이 열풍을 머리기사로 배치했으며 관련 리포트를 머리기사 포함 세 꼭지나 보도했음.


▲ 10월 2일(화)
- KBS <뉴스9> 9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 <뉴스데스크> 11째 리포트로 보도
- SBS <8뉴스> 5번째 리포트로 보도


▲ 10월 3일(수)
- 방송3사 보도 없음


▲ 10월 4일(목) : 피해주민 환자 수 900명, 정부 재난지역 검토
- KBS <뉴스9> 6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 <뉴스데스크> 10-11번째 리포트로 보도
- SBS <8뉴스> 5~6번째 리포트로 보도


▲ 10월 5일(금) : 피해지역 주민 1000명이 병원 치료
- KBS <뉴스9> 5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 <뉴스데스크> 3번째 리포트로 보도 (관련기사 4번째 배치) 
- SBS <8뉴스> 10번째 리포트로 보도


▲ 10월 6일(토) : 피해주민, 집단 이주 시작
- KBS <뉴스9> 머리기사로 보도(두 꼭지) 
- MBC <뉴스데스크> 5번째 리포트로 보도
- SBS <8뉴스> 2번째 리포트로 보도


▲ 10월 7일(일) : 피해환자 3000명 넘어, 3차 피해 우려
- KBS <뉴스9> 6번째 리포트로 보도
- MBC <뉴스데스크> 5번째 리포트로 보도
- SBS <8뉴스> 10번째 리포트로 보도


▲ 10월 8일(월) : 정부 구미피해지역,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
- 방송3사 일제히 머리기사로 보도


불산가스 누출사고,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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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4일 SBS <8뉴스> ⓒ SBS


피해주민 환자 수가 900명을 넘어서고, 정부가 '구미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을 때도 방송사들은 이번 사건을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만에 피해지역 주민 1000여 명이 병원을 찾았을 때(10월 5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민들이 집단 이주를 시작했을 때(10월 6일)에야 비로소 '잠깐' 머리기사로 등장했지만(KBS <뉴스9>) 피해 환자가 3000명을 넘어서고, 3차 피해가 우려되는 시점(10월 7일)에서는 다시 '사건 사고기사'로 돌아갔습니다.

불산가스 누출사고의 심각성을 방송사들이 몰랐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미 방송사들이 전한 리포트에 이번 사고가 얼마나 심각한지 언급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산은 독성이 강한 자극성 액체이고, 피부에 닿거나 공기 중에서 흡입해도 치명적일 수 있다"(10월 4일 SBS <8뉴스>)라는 보도가 나올 만큼 이번 사고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방송사들 또한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에 비해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는 안이했습니다. 피부에 닿거나 공기 중에 있는 불산을 흡입해도 치명적일 수 있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피해 환자가 3000명을 넘어선 상황에서도 메인뉴스 머리기사로 등장한 것은 단 한 번뿐입니다. 정부의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나오자 방송 3사는 그제야 일제히 메인뉴스 머리기사로 다룹니다. 뒤늦은 호들갑, '뒷북 보도'의 전형입니다.

저는 방송사들의 이런 보도태도를 볼 때마다 완고한 '서울 중심주의'의 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혹자는 '구미 지역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지지기반이어서 언론이 주요하게 보도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정치적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언론의 '서울 중심주의'가 낳은 폐해라는 해석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만약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서울 주변이나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면, 언론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였을까요. 저는 그 가능성은 '0'이라고 생각합니다.

피해 실태 및 역학조사에 대한 감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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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2년 10월 9일 치 4면 ⓒ 경향신문


마지막으로 하나 덧붙일까 합니다. 언론 보도, 특히 방송 뉴스의 경우 현재 피해 지역의 상황 전달에만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해 지역 주변에 대한 실태조사, 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를 비롯해 생태계 조사에 대한 관심 쪽으로 보도의 초점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9일 치 <경향신문>에 따르면 '불산 노출 주민과 소방관들의 외상후증후군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부가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한 날 머리기사로 다뤘으니 '할 일 다했다'는 식으로 나와서는 곤란합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책임 소재 규명과 엄중한 문책을 요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합니다. KBS·MBC·SBS가 그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태도를 보면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제발 '구미 불산가스 누출에 정부도 없었고 언론도 없었다'는 오명이 남겨지지 않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누리집에도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 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구미 #불산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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