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캠프 대표된 빵집 주인, 달라진 건 없다

[대선 관전 포인트] 동네 빵집주인 고재영이냐 VS 재벌빵집 사장 정유경이냐

등록 2012.10.09 19:55수정 2012.10.0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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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영빵집 주인이 문재인 시민캠프 공동대표단에 뽑혔다. ⓒ 조호진


동네 빵집주인 고재영(42)씨가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시민캠프 공동대표로 뽑혔다. 공동대표에 임명된 지 사흘째인 지난 6일 경기도 군포시 오금동 3단지 퇴계 1차 상가에 위치한 '고재영 빵집'을 찾았다.

유력 주자의 대선 캠프 공동대표가 됐으니 처지가 달라졌을까? 양복을 입고, 어깨띠를 두르고, 유세하면서 정계 진출을 꿈꾸고 있을까? 빵집주인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날도 평소와 같이 오전 7시 무렵에 빵집 문을 연 고씨는 빵 만들고, 주문받고, 배달하고, 빵을 파는 등 밤 11시까지 무려 16시간 동안 장시간 일하면서 분주하고 힘겨운 하루를 보냈다. 

2012 대선의 최대 이슈는 경제 살리기 곧, 경제민주화다. 문재인 시민캠프는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골목 상권 침투를 저지하고 재벌의 탐욕에 희생된 중소 상인과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면서 동네빵집 주인 고재영씨를 공동대표로 영입했다.

대선 관전 포인트로 동네빵집과 재벌빵집의 대결을 잡아보았다. 그것은 한국 경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동네빵집의 상징 인물로 등장한 고재영 공동대표와 재벌 빵집의 상징 인물이 된 정유경(40) 신세계그룹 부사장을 비교 분석하면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돕기로 했다.

농민의 아들VS재벌가의 딸

시민캠프 공동대표가 됐지만 동네빵집은 여전히 불이 켜져있었다. ⓒ 조호진


고재영씨는 1970년 전북 김제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제 농고를 졸업한 고씨는 부산의 제빵업체인 기린에 입사해 제빵 기술을 배웠고, 서울의 63베이커리와 압구정 올리브베이커리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서울보건대학(현재 을지대학교) 전통조리과에 입학해 주경야독하며 식품제조기능사, 제과․제빵사, 양식조리사, 한식조리사, 일식조리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정유경씨는 1972년 재벌가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인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딸이자 이건희 회장의 동생이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정씨는 이화여대와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 조선호텔에 입사해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조선호텔 상무로 있다가 2009년 신세계그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경기도 군포의 서민아파트 상가에 들어선 고재영빵집. ⓒ 조호진

고씨는 빵쟁이의 외길을 걸었다. 제빵 기술자로 17년 동안 일하던 그는 2007년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0만 원짜리 6평의 동네빵집 주인이 됐다. 빵집 오너가 됐지만 삶이 달라진 것은 없다. 한 달에 두 번 쉬는 그는 종업원 없이 아내와 둘이서 빵집을 운영하며 하루 16~17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한다. 골목 상권까지 침투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공세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고재영 빵집'을 "대기업 빵집을 이긴 동네빵집"이라고 칭찬하지만 그는 "이긴 게 아니라 재벌과 대기업 틈바구니에서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03년 초에 1만8000개였던 동네빵집이 2011년 말 현재 4000곳으로 대폭 줄었다고 지난 1월 밝혔다. 신세계, 삼성, 롯데 등 재벌들과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초토화 공세로 인해 1만개의 동네빵집이 사라진 것이다.


정씨에게 빵집은 할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문어발식 확장의 수단이다. 청담동 귀부인으로 불리는 정씨는 빵집만 손댄 것은 아니다. 고씨와 달리 빵을 굽지 않는 정씨는 호텔, 명품 패션, 백화점 사업 등에서 경영 수완을 탁월하게 발휘했다. 특히, 강남 청담동의 수입 명품거리를 장악하면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통해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해외 명품 패션을 직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정씨는 16년간 빵 사업을 했다.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조선호텔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정씨는 일개 사업부였던 베이커리를 따로 떼어내서 (주)조선호텔베이커리를 차렸다. 2011년 (주)'신세계SVN'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는 '베키아앤누보'와 '페이야드' 등의 브랜드로 베이커리 사업을 하면서 동네 피자가게들을 초토화시킨 '이마트 피자'까지 내놓았다.

조선호텔베이커리는 2006년 매출액 867억 원에서 2010년 1677억 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신세계SVN으로 이름을 바꾼 2011년엔 2565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정씨의 베이커리 사업방식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정씨의 매출액 90% 이상이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등에서 발생했다. 이마트 피자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오빠(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다 시중 피자보다 30% 가량 싼 '이마트 피자'는 출시 2년 만에 업계 4위로 급성장했다. 이로 인해 동네 피자가게의 매출은 34%나 줄었다.

상생의 동네빵집VS독점의 재벌빵집

고재영씨는 동네 영세업체의 홍보 도우미다.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너도 나도 잘사는 상생의 동네를 꿈꾼다. ⓒ 조호진


'고재영 빵집'은 매우 좁다. 3평은 매장이고, 3평은 빵 굽는 작업장이다. 그 좁은 공간조차 이웃 자영업자들과 나누었다. 빵집 메인 위치에는 샌드위치, 햄버거, 핫도그 등의 메뉴가 붙어 있다. 하지만 고재영 빵집에서는 이 메뉴를 팔지 않는다. 주변 영세업체의 메뉴이기 때문이다. 계산대에는 씽크대, 가전아웃렛, 커피점 등 10여개 주변 영세업체의 명함이 진열돼 있다.

고씨는 "나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 자영업자들과 함께 잘살기 위해서 홍보 도우미를 자청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고씨가 빵 배달을 가면 그들이 와서 가게를 잠시 봐준다. 공존공생 전략인 것이다.

고재영 빵집의 슬로건은 "사랑을 파는 빵집"이다. 헌혈증을 가져오면 2000~3500원짜리 빵으로 바꾸어준다. 그렇게 모은 800장의 헌혈증은 필요한 환자들에게 전달됐다. 군포의 노인복지관 2곳에 어르신들의 생신 케이크를 매월 지원하고, 공부방에는 매월 2차례 간식과 빵을 지원한다. 선거철이 되면 가난한 진보정당 후보 캠프에까지 빵이 전달되는 등 다양한 곳에서 빵을 요청하면 무시로 빵을 나눈다.

고재영 빵집의 월 매출액은 1500만원. 6평 빵집의 매출로는 상당한 수입이다. 고재영 빵집의 성공 포인트의 핵심은 성실성이다. 고씨 부부는 한 달에 두 번 쉬면서 매일 16~17시간을 개미처럼 일한다. 두 번째 포인트는 고객 만족이다. 고객이 원하는 빵과 즐거워하는 빵을 만든다.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며 정을 나누는 방식의 특화된 빵을 만드는 것이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불가능한 시도다.

세 번째 포인트는 SNS의 적극 활용. 그의 온라인 친구는 농민, 변호사, 교수, 마케팅 전문가 등 2만 명이나 된다. 그들은 재벌 빵집의 TV광고와 물량공세에 감히 맞설 수 없는 동네빵집의 홍보요원이 되어준다. 고씨에게 최고의 영업 전략은 상생이다. 자원봉사와 기부활동 등을 통해서 함께 사는 세상을 지향한다. 그의 선한 전략은 매출과 홍보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도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다. 현미 미강과 해바라기 씨 등 웰빙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래서 고재영 빵은 전국에서 주문한다. 

정유경씨의 신세계그룹은 재벌 초유의 과징금을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신세계그룹이 신세계SVN을 부당 지원했다며 40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최근에 부과했다. 하지만 신세계는 공정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정씨는 재벌과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침해하면서 국민 여론이 악화될 때에도 자신의 빵집과 피자는 골목상권 침해와 관련이 없다며 버틸 정도로 빵집에 대한 애정과 자존심이 강하다.

정씨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자신의 빵은 동네 빵과 달리 럭셔리한 빵이다. 동네 사람들이 사먹을 수 없는 고가의 명품 빵인 것이다. 상권이 엄연히 다른 것이다. 99%의 고객을 상대로 하는 시장 전략도 있지만 1%의 고객을 만족시키는 사업 전략도 필요한 것처럼 명품 취향의 고객을 위한 베이커리 사업이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무슨 죄냐고 반발할 수 있다.

"아직도 파이를? 동네 빵으로 경제 살리자"

KBS 강연100'C 8월3일 11회에 출연한 고씨는 91도의 감동 온도를 받았다. ⓒ KBS

대선의 핵심 이슈는 경제민주화다. 이명박 정권의 친기업 정책의 최대 피해자인 서민들의 분노가 담긴 이슈다. 죽어버린 골목 상권을 살려달라는 영세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절박한 요구에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등 세 후보 모두 골목상권을 살리는 등 경제개혁을 하겠다고 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경제민주화 이슈를 선점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가장 빨리, 많이 얻었다. 하지만 그 재미가 내분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면서 새누리당이 시끄럽다. 경제민주화 주창자인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재벌 옹호론자인 이한구 원내대표의 충돌이 그것이다.

빵집주인이자 문재인 시민캠프 공동대표인 고재영씨는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정치권은 이슈가 된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쇼를 벌인다"면서 "영세업체 카드 수수료 인하 때도 그랬지만 이슈가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서민들의 생존권을 외면했다"고 아픈 경험을 떠올렸다.

빵집주인이 대선 캠프의 공동대표가 됐다. 그의 고민은 '언제나 그때뿐인' 정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다. 고씨는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 우선 법적, 제도적 장치를 해야 한다"면서도 "유권자들이 강자만 살리는 재벌 지지 정당과 후보보다 골목 상권인 동네를 살리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씨는 빵집주인답게 골목 상권 살리기와 일자리 확대 등의 경제민주화 논리를 이렇게 빗대어 말했다.

"파이를 키워서 나누자는 경제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서민들은 파이는커녕 부스러기만 먹어야 했다. 빵은 파이처럼 그렇지 않다. 밀가루 그 양대로 하면 5명밖에 못 먹지만 반죽과 성형을 거쳐 발효가 되고, 이를 굽으면 10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빵이 탄생한다. 부자 1%만을 잘살게 하는 후보보다 자영업자를 비롯해서 99%의 국민들이 함께 잘살게 하는, 동네 빵집주인 같은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문재인 시민캠프 #고재영빵집 #박근혜 새누리당 #정유경 신세계 #공정위 과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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