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만 남기고 세상을 떠난 남편, 어찌 하오리까

[제대로 이혼 도와주는 남자 8] 부부와 상속 ① 상속, 받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등록 2012.10.14 20:11수정 2012.10.1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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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이도남'님, 안녕하세요. 이 세상 유일한 가족인 아들(8)과 함께 사는 정은교(가명, 30대 여성)라고 해요. 제 기구한 사연 좀 들어보실래요. 약 10년 전 결혼을 했죠. 남편은 신혼 초부터 외박을 밥 먹듯이 했어요. 사업한답시고 돌아다니는데 실은 허구헌 날 술과 유흥으로 보냈던 겁니다. 남편은 돈을 벌어오기는커녕 제가 임신한 몸을 이끌고 몇 푼 벌어온 돈마저 갖다 쓰기가 일쑤였죠.

남편을 향한 분노와 눈물로 지새운 밤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어느 순간에 제가 아예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차라리 남편이 눈에 안 보이는 것이 편할 정도였지요. 남편도 몇 년 동안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렇게 우리 부부는 법적으로는 부부였을지 몰라도 거의 남남처럼, 아니 남보다도 못하게 지냈어요. 이미 이혼상태나 다름없었네요. 더이상 같이 살 이유가 없어서 남편에게 이혼 얘기를 꺼냈더니 무심하게 "이혼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고만 하더군요. 얼굴도 보기힘든 남편과 이혼소송을 벌이는 것도 만만치 않게 느껴졌고, 또 아이를 키우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니 10년이라는 세월이 후딱 지나가 버렸네요. 

그런데 최근에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남편에게 정도 없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에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보내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장례를 치렀고요.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어요. 남편에게 어마어마한 빚이 있다는 소식 말이에요.  

각종 카드회사와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캐피탈', '△△머니'와 같은 금융권과 사채업자까지 독촉장을 보내오기 시작했어요. 법원에서도 소장이라는 서류가 날아오더군요. 아마도 다 합해보면 몇 억은 될 것 같아요. 눈앞이 깜깜하네요. 

남편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 가는군요. 남편이 저와 아들에게 남긴 유산이라곤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을 빚더미밖에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까요.

① 제가 남편과 장기간 별거상태였으니 이제라도 이혼을 하는 방법이나, 아니면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②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이라는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린 아들과 제가 남편의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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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재산보다 빚이 많은 것이 확실하다면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내 상속포기를 해야 합니다. 상속포기란 상속재산에 따르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입니다. ⓒ sxc


사실상 이혼 상태인 남편, 사망 후에도 이혼 가능할까

정은교님, 먼저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결혼 후 10년 넘게 힘들게 살아오셨을 텐데,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시련을 남겨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들을 위해서라도 살 길을 찾아봐야 합니다. 착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법은 결코,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알아서 배려해주지 않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부터 풀어나가보죠. 사망한 남편과 이미 부부 사이가 깨졌으니 이제라도 이혼을 확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질문하셨는데요.

결혼한 부부가 부부의 인연을 끊게 되는 길은 2가지가 있습니다. 2가지란 이혼과 사망을 말합니다. 이혼은 법원을 통해야 하고, 협의이혼과 재판이혼 2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연재를 통해 수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이혼하게 되면 배우자의 친족(인척)과도 남남이 되는 반면, 배우자가 사망하면 재혼을 하기 전에는 인척관계가 유지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사연처럼 남편이 가출하여 집에 들어오지 않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면 넉넉히 이혼사유가 되고도 남습니다. 재판상 이혼 사유 중 '배우자의 악의의 유기'에 해당합니다. 남편은 정당한 이유없이 부부의 의무인 동거·부양·협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판사 앞에서 협의이혼을 하거나 이혼 판결을 받았을 때 비로소 이혼이 인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상 이혼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신분상 변화가 있거나 어떤 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망한 사람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하거나 이혼 확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현행법상 불가능합니다. 설사 부부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별거 중이었거나 이혼 소송 중이었더라도 사망 전에 이혼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이상 부부 관계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의 판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정씨가 이미 이혼소송을 제기했더라도 판결 전에 남편이 사망했더라면 이혼 소송은 종료됐을 겁니다. 판사는 이혼이 필요한지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지요. 사망으로 이미 부부관계는 끝이 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망한 배우자와 이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입니다. 안타깝게도 정씨가 사망한 남편과 법적으로 갈라서는 길은 없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오히려 남편의 상속인이 되었으니 그 문제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군요.  

'재산' 뿐 아니라 '빚'도 상속된다

자연스레 두 번째 질문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원만한 부부 사이였거나 별거중이었거나 혹은 사실상의 이혼상태였거나 가리지 않고 법적으로 부부관계가 유지된 상태에서 배우자가 사망하면 상대방은 상속인이 됩니다.

상속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보통 재산을 물려받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법조항을 통해 단서를 찾아보겠습니다.

민법에 따르면 "상속은 사망으로 인하여 개시"(민법 997조)되고 "상속인은 상속 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민법 1005조)합니다.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만, 상속의 법적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본다면 이렇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의 배우자나 자녀, 부모처럼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재산상 권리와 의무를 모두 이어받는 것."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권리와 함께 나오는 '의무'입니다. 상속은 재산만 받는 것이 아니라 빚도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상속이란 가진 자에게는 합법적으로 부의 세습을 안겨주고, 없는 자에게는 빚과 가난을 대물림하게 만드는 제도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좋은 쪽으로 해석해보면 고인이 재산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가족들이 함께 기여했을 것이고, 그 가족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속제도가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정은교씨와 아들도 빚더미를 물려받은 실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의적으로는 부모나 배우자가 남기고 간 빚을 남은 사람들이 정리하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사연처럼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빚을 평생 떠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잔인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상속의 3가지 모습 : 단순승인, 상속포기, 한정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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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의 3가지 형태 ⓒ 김용국


그래서 상속에는 상속받을 권리·의무와 함께 상속 자체를 포기할 자유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상속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상속을 받느냐, 마느냐로 나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3가지 길이 있습니다. 즉 ① 상속을 받느냐(단순승인), ② 상속을 받지 않느냐(상속포기), ③ 상속을 받되 채무는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만 부담하느냐(한정승인), 이렇게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단순승인입니다. 말이 어려운데 그냥 상속을 받는 것입니다.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의 재산과 빚을 아무런 조건이나 제한없이 받는 것으로, 가장 일반적인 상속의 형태를 말합니다.

단순승인을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상속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사용하거나 피상속인이 사망하고 3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상속이 됩니다. 고인 명의의 부동산에 상속등기를 하거나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간단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재산뿐만 아니라 빚도 그대로 상속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법은 상속인에게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3개월이라는 '고려기간'동안 상속 재산이 얼마인지 빚이 얼마인지 알아보고 상속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라는 말이지요.

3개월의 기산점은 언제일까요. 바로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인데 피상속인의 사망과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알게 된 날로 해석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고인의 사망일을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둘째, 상속재산보다 빚이 많은 것이 확실하다면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부터 3개월 내 상속포기를 해야 합니다. 상속포기란 상속재산에 따르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입니다. 상속포기를 하면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상태가 됩니다. 만일 상속포기를 하지 않은 다른 상속인이 있다면 그에게 다시 상속재산과 채무가 돌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상속받을 재산과 채무 중 어느 것이 많은지 불분명할 때는 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한정승인이란 상속을 받되, 채무는 상속 재산 범위안에서만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로 상속인에게 가장 유리한 절차입니다. 이것도 상속포기와 마찬가지로 3개월 내에 법원에 청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단순승인을 한 뒤에 뒤늦게 채무자가 나타나 상속인과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분쟁이 생기는 일이 잦게 되자 법으로 한정승인 신청 기준 시점을 한 가지 추가했습니다.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없이 알지 못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한정승인은 ▲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또는 ▲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없이 알지 못한 경우에는 초과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는 점은 상속인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상속포기건 한정승인이건 최대한 빨리 결정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한정승인은 상속포기보다 절차가 복잡합니다. 법원에 상속재산목록과 함께 한정승인 청구해서 법원이 한정승인을 받아주면, 상속인은 5일 안에 신문에 공고를 내야 합니다. 이 공고를 통해 상속채권자(고인에게 돈을 받을 사람) 등에게 한정승인받은 사실과 일정한 기간 내에 채권을 신고하라고 알려야 합니다.

상속인들은 신고한 채권자들에게 상속재산으로 채무를 변제해야 합니다. 만일 재산이 부족하면 금액 비율에 따라 똑같이 나뉘야 합니다. 만약 신문 공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채무 변제를 잘못해서 손해를 본 채권자가 있다면 상속인이 손해를 배상해주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정승인은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에 빚이 많은 것이 확실하다면 상속포기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반드시 유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받더라도 상속재산을 함부로 처분하거나 몰래 빼돌렸다가 채권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빚까지 모조리 책임져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상속재산과 채무 중에서 재산이 확실히 많다면 단순승인을, 채무가 확실히 많다면 상속포기를, 빚과 재산이 비슷하다면 한정승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빚과 재산이 비슷하다면 한정승인이 바람직   

글이 길어졌습니다. 정은교씨에게 조언을 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정씨는 두말할 것 없이 상속을 포기해야 합니다. 다만 남편이 사망한 지 3개월이 지나면 자동으로 상속을 받게 되니 서둘러 법원에 서류를 내셔야 하겠습니다.  

상속포기는 정은교씨와 아들 두 사람 명의로는 반드시 해야 하고, 남편의 부모형제나 4촌까지도 상속포기를 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상속포기는 포기한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고, 나머지 상속인에게는 상속이 진행됩니다. 최종적으로 4촌까지 이어지게 됩니다(상속인의 범위와 순위에 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연재에서도 상속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소개할 사연은 두 아이를 두고 아내가 사망했는데 남편과 아이들, 장인, 장모 중 누가 상속을 받게 되는지, 상속 순위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이혼없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이도남'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생활법률 책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썼습니다.
#이도남 #이혼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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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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