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는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전경옥
저는 멧돼지예요. 험상궂게 생겼나요? 그런데 사실, 저는 겁이 많아요. 산에서 사람들이 저를 보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저는 너무 겁이 나서 막 도망쳐 달려버리거든요. 그런데 워낙 생김새가 험상궂고 무게가 많이 나가고 쿵쿵거려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를 괴물처럼 취급하더군요.
이제 곧 겨울이 와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음식은 든든하게 먹어둬야 하는데, 매년 먹을거리는 계속 줄어드는 거 같아요. 옆 동네에 사는 친구는 작년에 배가 고프다며 사람들이 사는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는 숲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내려간 지 하루 만에 그쪽에서 무서운 소리가 났고, 그 친구의 비명소리도 들었죠. 사람들은 우리 이빨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총이라고 하는데, 그 무기에 당한거죠.
저도 이년전쯤 인가에 내려가 고구마를 몰래 캐먹었는데, 그 집의 아줌마가 막 소리를 지르길래 무서워서 얼른 도망왔어요. 다시는 내려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요. 사람들은 우리가 무섭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더 무섭답니다. 그냥 우리가 싫으면 쫓아내면 되지 죽이거나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를 쫓을 방법은 많아요. 겁쟁이니까요. 우리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이런 우리 성격을 잘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많아서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고 하던데, 사실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가 살던 땅이 줄어들었고, 먹을거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잘 먹지 못해 건강이 나빠진 여자 멧돼지들이 새끼를 잘 낳을 수 있겠어요? 사람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니까 더 눈에 많이 띄는 거죠. 우리도 사람들과 가까이 살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잖아요. 살아야 할 공간도 다르고요. 우리가 너무 많아졌다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총을 들고 산으로 들어와 우리를 사냥하기 시작했어요. 아예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총소리, 사람말소리, 다 우리에게는 공포의 소리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숲 근처에서 사람들이 길을 만든다고 큰 기계를 가져와 작업을 하는데, 소리가 참 커요. 예전에는 그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 엄마가 제 동생을 임신했을 때 유산을 했더랬죠. 그래서 동생은 태어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더 큰 걱정은, 그 기계소리가 점점 자주 난다는 거죠. 사람들은 우리가 점점 많아질까봐 걱정인데, 그럴 걱정은 안 하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지 않거든요.
우리 길 빼앗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