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여성 노동자 성폭행 혐의 업주, '무죄' 판결 논란

대전지법 논산지원, 강간·감금 등 혐의 업주에 '무죄'.. 이주노동자 단체 '반발'

등록 2012.10.16 20:44수정 2012.10.16 20:44
0
원고료로 응원
 중국인 여성 종업원을 강간 및 감금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 아무개 씨에 대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제1형사부의 판결문.

중국인 여성 종업원을 강간 및 감금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전 아무개 씨에 대한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제1형사부의 판결문. ⓒ 대전지방법원


취업비자로 입국해 음식점에서 일하던 중국인 여성이 업주에게 수차례의 성폭행과 성추행, 감금 등을 당한 뒤 업주를 고소했지만, 법원이 업주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화용)는 지난달 26일 강간과 강제추행, 강간미수, 감금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아무개(43)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양아무개(35)씨는 중국인(한족)으로 본국에 남편과 11살짜리 딸, 그리고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고관절과 노환 등으로 시달리는 시부모의 치료비로 인해 빚이 늘어가자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한국행을 결심하고 2011년 5월 취업연수생으로 입국했다. 입국 후 충남 계룡시의 C중국음식점에서 홀써빙을 하던 양씨는 일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음식점 업주인 전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업주인 전씨는 양씨가 혼자 있는 틈을 타 강제로 몸을 만지며 추행했다. 양씨는 반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일이 있을 후 2주 후 전씨는 신발을 사주는 척하며 양씨의 숙소를 찾아와 강제로 옷을 벗긴 후 강간했다. 한 달 후에도 전씨는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오후 11시께 홀로 뒷정리를 하고 있는 양씨를 강간했고, 그 후 1주일 간격으로 총 7회에 걸쳐 양씨를 강간하거나 강제 추행했다.

견디다 못한 양씨는 그해 8월 12일, 3개월 동안 일한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서울로 도망쳤다. 그리고는 인력업체 관계자를 만나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양씨는 갈 곳이 없었다. 한국에 오기 위해 더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업주의 사과'를 조건으로 해당 식당에 다시 돌아가 일하기로 했다.

일터로 돌아온 양씨는 이번에는 업주와 양씨와의 일을 알아차린 업주의 아내 이아무개씨에 의해 강제출국 위기에 놓였다. 이씨는 양씨를 대전출입국관리사무소로 데리고 가 고용계약을 해지하고 인력업체 관계자를 통해 강제출국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대로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양씨는 죽기 살기로 매달려 저항했다. 결국 인력업체 관계자는 공항까지 양씨를 데리고 갔다가 다시 계룡시에 있는 해당 업체로 데려다 줬다.

이렇게 돌아온 양씨는 음식점 내 방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자신이 감금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음식점 정문과 후문이 모두 쇠줄로 잠겨 있었던 것. 두려움에 떨던 양씨는 이곳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7미터 높이의 2층 창문에서 앞치마를 엮어서 내려오다가 떨어져 허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약 10주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중상이었다.

치료를 받던 양씨는 전씨를 고소했고, 전씨는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다. 전씨는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으며, 검찰은 전씨에게 7년 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징역 7년' 구형... 법원, "양씨 진술 믿기 어렵다" 무죄 선고

재판부는 지난달 26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전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있어야 유죄로 인정할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양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해 ▲ 양씨가 수차례 강간과 강제추행을 당했음에도 고소하기 이전에 법적조치를 취하거나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 함께 일하던 중국국적의 종업원(남성)에게 피해사실을 말하지 않은 점 ▲ 인력업체 관계자에게 전씨의 사과를 요구하면서도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성희롱을 당했다고만 말한 점 ▲ 법적조치를 취하지 않고 강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간 점 등을 볼 때 양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 양씨가 1차 경찰조사에서는 구체적인 성추행 사실을 진술하지 않다가 3차 조사에서야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 ▲ 경찰조사에서와 검찰에서의 진술이 상이한 점 ▲ 강간을 당한 날짜의 CCTV와 카드사용 내역 등을 조사한 결과, 양씨가 특정한 시각이 정확하지 않은 점 ▲ 양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점 ▲ 스스로 돌아온 양씨를 감금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살펴볼 때 전씨가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을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내용이 알려지자 외국인노동자 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대전이주노동자연대 서민식 대표는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외국인노동자라는 특수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파렴치한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주장했다.

서 대표는 이어 "상식적으로 어떤 사람이 감금당하지도 않았는데, 2층 건물에서 혼자 뛰어내리고, 어떤 산업연수생 신분의 외국인노동자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사업주를 고소하고, 대체 어떤 여성이 자신이 스스로 수차례 강간을 당했다고 하겠느냐"고 개탄했다.

서 대표는 또 "한국 여성들도 강간을 당한 후 주변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여성 이주노동자가 그 험한 일을 당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한 것이 '무죄'의 이유가 된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재판부를 비난했다.

한편, 대전이주노동자연대는 오는 17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진보신당연대회의 대전시당(준) 등과 함께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판결을 규탄할 예정이다.
#성폭행 #강간 #이주여성 #외국인노동자 #대전지방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3. 3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