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통이 비해 맛은 좀 떨어지네

1시간 발품 팔아 찾아간 맛집, 반찬 가짓수만 많더라

등록 2012.10.29 14:30수정 2012.10.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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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씩 지방에 가게 되면 그 지역에 있는 맛집을 찾는 것은 제가 즐기는 사치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도 지난 몇 년 전부터 이곳에 가게 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음식점의 맛이라고 한다면 그 기대가 더 크겠지요.


온갖 수산물이 풍요로운 다도해 해안과 함께 '황토'로 상징되는 비옥한 땅을 자랑하는 남도의 전남 해남군. 지난 26일 집안에 일이 있어 이곳에 내려간 뒤 저녁에는 맛집을 찾아 입의 즐거움을 느끼고자 했습니다.

아이폰으로 해남에 있는 유명 맛집을 검색 하노라니 우선적으로 나오는 게 바로 '천일식당'입니다. 90년 전통을 자랑하고 '떡갈비 정식'으로 유명한 집입니다. 그동안 몇몇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유홍준의 '남도답사 1번지'에서도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유명세 때문에 서울 서초동 법원가에도 분점 비슷한 가게가 천일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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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읍내에 위치한 천일식당의 상차림 입니다 ⓒ 추광규


분위기는 좋은데 음식 맛은 어떨까?

해남읍 내에 있는 천일식당은 수십 년 전 지방의 낯선 동네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여인숙의 모습과 그 외관이 비슷했습니다. 실제 천일식당 내부는 'ㄷ'자로 배치된 방은 천장이 낮고 문지방 등의 모습이 전형적인 옛날 여인숙의 모습입니다.

이 집의 메뉴는 단출합니다. '떡갈비 정식'과 함께 '불고기 정식'이 그 전부 입니다. 여기 까지는 맛있는 음식점의 특징과 일치하기에 기대를 품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메뉴가 많은 집일수록 정작 맛있는 음식을 접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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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두 가지가 전부 입니다. ⓒ 추광규


한두 가지 음식에 그 승부를 거는 게 맛으로 유명한 식당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해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저녁 식사 시간으로는 조금 늦은 오후 8시 30분 남짓의 시간에 방문한 이날 무척이나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메뉴판을 딱 한번 살펴보고는 두말 할 것 없이 '떡갈비 정식' 2인분을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한지 10여분 만에 음식상이 들어 왔습니다. 종업원 2명이 상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여느 식당들처럼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음식을 날라 오는 것과는 약간 다릅니다. 즉 주문하면 음식을 주방에서 차린 후 이 상을 방으로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 가짓수는 많지만 한정식의 단점을 고스란히...

전남 해안 지방을 차로 지나다니다 보면 많은 싼 가격의 백반 정식 집을 접할 수 있습니다. 주로 기사식당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넓은 주차장과 함께 손님을 맞고 있어 여러 가지로 장점이 많은 식당들입니다. 가격은 물론 저렴합니다. 6~7천 원 선에서 가격을 받고 제철 음식을 위주로 꾸밈으로써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남도땅 백반정식의 경우 반찬 수가 보통 십 수 가지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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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게 제 입맛을 당긴 건 토하젓이 전부 이었습니다. 1시간 이상의 시간을 들여 굳이 이 집을 찾은 이유에 대해 그나마 만족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추광규


천일식당의 떡갈비 정식의 경우에도 두 사람이 들고 들어온 상 에는 24가지 이상의 반찬이 놓여 있었습니다. 메인요리인 떡갈비는 나중에 들어오는데 이 상 차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젓갈류. 어리굴젓 벤뎅이젓 그리고 토하젓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밖에 나머지 반찬으로는 호박전 잡채 김 마늘쫑 꽃게장 숙주나물 톳무침 계란찜 멸치조림 등등 이면서 그저 그런 수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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톳 무침 인데 맛은 그저 그런 수준 이었습니다. ⓒ 추광규


오징어 초무침의 경우 남도 땅이기에 갑오징어로 무쳐 냈더라면 훨씬 더 맛이 뛰어 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오징어 초무침은 만든 지 오래 되었는지 오징어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맛이라고는 식초 맛뿐 입니다. 향긋한 미나리에 부드러운 오징어 살의 조화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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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굴젓인데 이 또한 그저 그런 맛이었습니다. ⓒ 추광규


계란찜 또한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보통 새우젓을 갈아서 기본 간을 하게 되는데 이곳 계란찜의 경우 짜게 느껴지면서 감칠맛의 새우젓 간을 한 부드러운 맛의 계란찜은 아닌 듯 했습니다. 또 양파를 썰어서 고명으로 얹어 있어 부드러운 식감을 즐기기에는 무리였습니다.

또 나머지 기본 반찬 맛 또한 일일이 평가를 할 필요가 없게끔 그저 그런 평범한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굳이 이렇게 많은 반찬을 상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정식이 맛 평론가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는 그런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많은 가짓수에 신경 쓰다보니 만든지 오래되어 맛이 떨어지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단점입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많은 가짓수에 불구하고도 거의 대부분의 반찬에는 손길이 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더해 반찬그릇이 담겨 있는 그 양에 비해 너무 커서 상을 불필요하게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즈음 예쁜 찬 그릇이 많은데도 이렇게 큼지막한 하얀색 플라스틱 반찬 그릇을 써야 했는지 의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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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통의 천일식당은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어 친숙함을 더했습니다. ⓒ 추광규


메인 요리 '떡갈비' 그 맛은 .....

반찬을 이것 저것 젓가락으로 한두 점씩 집어서 맛을 보고 있는데 10여분쯤 경과한 다음에야 메인요리인 떡갈비가 나오더군요. 떡갈비를 처음 보고는 웬 시루떡? 인가 생각 했습니다. 보통 떡갈비의 경우 동그랗게 전을 부치듯 만들어져 있는 걸로 알았는데 이곳 천일식당의 떡갈비는 사각형으로 생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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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갈비 입니다. ⓒ 추광규


큰 기대감을 안고 한 점 떼어서 맛을 보았는데 첫 느낌은 제 입맛에는 너무 달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어른의 입맛에는 너무 달짝지근해 한우 소고기 특유의 맛을 전혀 즐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입맛이 결코 까다롭지 않은데 이 정도를 충족 못한다면 '90년'이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한참 뒤진 맛이라고 할 수 밖에요.

다만 부드럽게 다져서 만드는 떡갈비이기 때문에 치아가 부실해 고기를 뜯을 수 없는 분들이나 한번씩 별식으로 즐길 만하지, '명품 맛'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해 90년 전통이라는 점을 듣고 한 시간 이상의 공을 들여 찾아온 그 시간이 아깝게 여겨집니다.

뭐 그렇다고 천일식당의 명성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달짝지근한 음식을 좋아하는 일본관광객의 경우에는 그 입맛에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가격이 서울의 유명 한정식 집에 비해서는 한참 싸다는 점이 이 머나먼 해남까지 내려와 한끼 식사를 위해 이 집을 찾아간 수고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나 할 것 같습니다.

다음날 서울로 돌아와 가족끼리 모인 가운데 얘기를 나누는데 저희 누님도 그 집을 알고 있더군요. 누님도 몇 년 전에 가보았다고 하는데 음식이 별로여서 굳이 발품을 팔아가면서 찾아갈 이유는 없다는 평가에 저 또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일식당 '떡갈비 정식' 과도하게 단 맛을 줄이고 몇 가지 밑반찬에만 정성을 기울인다면 다시 찾을 마음이 생길까? 또 다시 그런 상을 1인분에 2만5000원을 지불하면서 까지 다시 접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애써 위안 한다면 옛 정취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던 식당 분위기와 함께 오랜만에 토하젓을 맛본 정도라고나 할까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떡 갈비 #천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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