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여성 커밍아웃'이 불편한 이유

[게릴라칼럼] 그는 여성 대변하는 대통령 될 수 있을까

등록 2012.10.31 16:24수정 2012.10.3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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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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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열린 여성혁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를 선포합니다' 행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파이팅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고 쇄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큰 변화를 강조해도 이것보다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27일 일부 여성단체들이 주최한 '대한민국 여성혁명 시대 선포식'에 참석해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이자 정치 쇄신"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지난 28일 박 후보는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본부 출범식에서  "집권한다면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여성들이 맘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확실하게 힘이 될 것"이라며 "먼저 여성들을 정부 요직에 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육아 문제를 비롯해 현실적으로 여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 그런 여성정책들을 국가 정책의 핵심으로 둘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대선 유력후보 3인 중 유일한 여성후보이면서도 스스로 여성후보임을 의도적으로 내세우지 않은 박근혜 후보의 행보로 볼 때는 '여성 대통령'을 강조한 발언은 이례적인 일로 보인다.  박근혜 후보는 그동안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권의 보수적인 표심을 고려하여 '여성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의 여성 커밍아웃에 대해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간 애써 여성후보라는 점을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등 강한 리더십을 내세우던 박근혜 후보의 변화가 매우 생경하게 느껴진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꾼다면 여성 정책에 대한 남다른 비전을 제시해야 했음에도 선거 코 앞에 이르러 부르짖는 '나도 여성이오! 표를 주시오!'라는 외침은 너무나 공허하여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군복 입었던 박근혜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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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9월 25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21사단 유해발굴현장으로 이동하며 북한지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후보는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유모차 걷기대회'에 참석해서도 육아문제 해결을 강조했다. 박근혜 후보는 "아기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 키우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면서 일하는 어머니를 지원하기 위해 시간제 보육 서비스 도입, 국공립 보육시설 30% 증설 등을 정책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가 지원하는 '일하는 어머니'의 범주가 사실상 매우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미쓰마마>는 미혼이라는 뜻의 Miss와 엄마라는 뜻의 Mama의 조합이 가져오는 부조화가 말해주듯이, 한국 사회에서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이다(영화 주인공 지영은 '미혼모'의 '미未'자는 미성숙한, 그러니까 결혼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의해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모'라는 말을 사용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애를 낳았다는 것은 과거나 현재나 여전히 추문거리다. 여자 혼자 벌어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애까지 딸린 여자는 단박에 사회적 최하층으로 떨어지기 일쑤이다. 게다가 혼자 애를 낳아 기르겠다는 기특한 결심은 부모형제의 지지를 얻기보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기 쉬우며, 당차게 집을 나와서 미혼모 지원시설에서 시작한 새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하다.


영화 <미쓰마마>는 아이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 판결문에 대고 유학갈 학원비를 내느라 돈이 없다고 답하는 아이 아버지의 철없는 문자에 악다구니를 퍼붓고, 엄마가 거북이처럼 너무 천천히 일해서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는 아이의 투정에 성마른 짜증을 담아내고 있다.

미혼모이지만 아이에게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은 아이 아버지의 무성의한 태도에 잘 차려입은 트렌치코트 위로 흐르는 눈물이 되고, 느닷없는 아이 아버지의 결혼 소식에 만감이 교차하는 소주 한 잔이 된다. 미혼모가 아이에게 묶여서 '엄마'로만 머무르는 사이에,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아무런 족쇄도 없는, 소위 '잘 나가는 싱글'이 된다.

미혼모는 아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으면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한 교회관계자의 말에 영화 주인공 형숙은 벌떡 일어나 이의를 제기한다. 결혼으로 이루어진 정상가족만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사회적 편견의 높은 벽은 정상가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많은 어머니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고도 포기하게 만들거나, 낙태 등을 통해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보지 않도록 한다.

미혼모 이야기를 다룬 잡지 <빅이슈코리아> 기사에 따르면  미혼모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입사하려 했던 대학생 엄마가 오히려 미혼모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떨어지는 쓰라린 경험을 소개한다. 이는 과연 아기를 낳아 키우는 것이 누구에게나 축복이며 기쁨이 될 수 있는지, 일하는 어머니는 누구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질문한다.

미혼모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쓰마마> ⓒ 프로덕션 공방


야심차게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표방하는 박근혜 후보는 과연 미혼모의 문제에, 혹은 일하는 어머니의 문제에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표방한다면 적어도 본인이 '여성'이라는 점 이외에 양육이나 육아, 가족을 구성하는 권리에 대해서 보다 여성친화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으로 승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 받지 못할까

박근혜 후보는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사람임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여성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냉랭한 상태이다. 왜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가장 유력한 여성 후보임에도 여성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할까?

한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서 알파걸 현상이 크게 주목받았다. 남성과 동등한 능력 및 스펙을 갖추었거나 더 나아가 남성을 위협할 정도로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 알파걸은 성차별시대를 마감하게 만드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의 논의들은 왜 알파걸이 알파맘, 혹은 알파우먼이 되지 못하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알파걸은 부모, 특히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과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면서 사회에 나온다. 그러나 시험점수나 봉사활동 등 수량화할 수 있는 비교적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학교와 달리 사회는 학연, 지연을 비롯한 온갖 연줄과 줄서기 등 여러 가지 복합적 기준이 난무하는 정글이다. 알파걸은 대학의 문턱을 넘어서 취업하는 순간 더 이상 사회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유리천장의 높은 벽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

특히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험난한 고개에서는 그동안 야근과 주말특근으로 버텨오던 대부분의 알파걸들은 쓰러지고 만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며 같은 대학원 동기였던 남편보다 좋은, 소위 글로벌한 S기업에 취직했던 후배도 결혼과 출산의 고개에서 쓴 잔을 마셨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봐줄 사람이 없어 한동안 지방 시댁에 아이를 맡겼으나, 결국 연봉이 거의 천만원이나 깎이는 것을 감수하면서 칼퇴근하는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겨야했다.

한국의 알파걸이 알파맘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한국경제연구원은 육아 및 자녀 교육에 있다고 분석하였다. 한국경제연구원이 7월 17일 발간한 '저출산 시대에 대비한 기업의 인력활용' 보고서에서 '고학력 엄마'일수록 자녀의 연령대가 올라가더라도 경제활동에 복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고학력 여성에겐 자녀 교육이 경제활동 결정에 중요한 요인임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미혼모에게나 알파맘에게나 모두 힘겨운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여성대통령'으로서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후보가 아이를 출산해서 키워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단순한 논박이 아니다. 사실 아이를 출산하지 않은 것은 문재인, 안철수 두 남성 후보 모두 마찬가지이며 박근혜 후보와 다를 바 없다.

안철수 후보가 밝힌 바 있듯이,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는 정치적 혁신은 단지 성별이 여성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성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소외되는 여성의 경험과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는 더 나아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반영한 정책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사회적 기득권을 대변하는 정책을 지지해왔으며,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차별을 해소하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혁신은 단지 한 두 명의 여성 고위직 관료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삶의 전반적인 질이 개선되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입고 가신그룹의 보호를 받으며, 사회에 갓 나온 알파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가 알파걸을 벗어나 미혼모나 알파맘을 도울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는 아버지의 후광 뒤에서 '여왕'으로 군림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공주'에만 머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미쓰 마마 #박근혜 #알파걸 #알파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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