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는 배우 김수현은 '복제'다

[서평] 인문학 기초지식을 강의하는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등록 2012.11.04 11:08수정 2012.11.04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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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표지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표지스마트북스
"오늘날 직면한 인문학의 위기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진정성을 황폐화시킬 수 있음을 자각한다."

2006년, 전국 80개 대학의 인문대 학장단이 참여한 선언이다. 이후로 '인문학의 위기'는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도 같다.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정의란 무엇인가>로 드러나듯, 우리 사회의 '인문학 갈증'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요인으로 인문학과 기술의 접목이 주목받으면서, 기업에서도 인문학 바람이 거세다.


심지어 어떤 재벌 총수는 '인문학 경영'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 물론 지금의 재벌들을 보면 무슨 이유에서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인문학을 향한 관심은 분명해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문학의 위기는 자연스레 끝난 걸까.

하지만 학계의 설명은 좀 다르다. 지난 10월 26일 '한국인문학총연합회'가 설립되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응하는 학계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서다. 이 단체 대표회장인 김혜숙 교수(이화여대 철학과)는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인성이 황폐해지고 자살과 폭력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인문학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지만, 인문학의 위상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며 그 '여전한' 우려를 전한다.

이 간극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스마트북스 펴냄)의 저자인 최진기는 인문학의 상업화를 지적한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에도 그 상업적 성공만 조명되었지, 인문학 전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인문학 자체가 지닌 어려움도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도 몇몇 사례가 재미있을 뿐 온전히 이해한 독자는 소수일 거라 꼬집는다.(관련기사: <"인문학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 깨고 싶었다">)

실제로 책의 머리말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읽기조차 버겁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전을 통해서 인문학에 첫걸음을 내딛다가 좌절하기 일쑤다.

일상과 멀지 않은 인문학


저자는 인문학 기초지식에 대한 쉬운 접근이 하나의 해결책이라 말한다. 첫발을 가볍게 내딛으면 우리 사회의 인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가 높아지리라는 판단이다. 그가 온라인강의 <최진기의 인문학 특강>을 '오마이스쿨'에서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그 강의를 묶은 결과물이다. 장 보드리야르부터 장자에 이르기까지, 동서양과 시대를 아우르는 서른여덟 개의 꼭지가 독자를 인문학으로 안내한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어려운 서술. 우리가 인문학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어쩌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법도 하다. 예를 들어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는 '현실을 대체하는 모방된 이미지, 실존하지 않으나 생생히 인식되는 복제'라고 정의된다. 이 문장을 읽고 우리들이 그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인문학이 깊은 사유로 완성되어나가는 학문이라지만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개념의 구체화'가 그 해답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광고, 연예뉴스에서 만나는 김수현은 실재가 아닌 시뮬라크르에 불과합니다. 시뮬라시옹된 김수현은 섹시, 소년미와 남성미가 모두 있는 미남이라는 '기호'를 획득합니다. 여러분은 그 시뮬라크르를 소비하는 '소비자'에 불과하죠. (줄임) 김수현의 시뮬라크르는 미디어나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고 쏟아져나와 실제의 그와 구분하기 힘들어집니다. 어느 순간 원본은 없고 원본과 모사물의 구별도 없는 것입니다. - 24쪽

책은 인문학을 일상적인 대상과 연결시킨다. 연예인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도서, 언론보도 등 풍부한 사례들이 제시된다. 그 개념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이해될 수 있는지, 쉽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도는 인문학이 일상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불어 딱딱한 개념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격려한다. 구어체의 문장과 풍부한 시각자료 등 책의 친절한 구성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의 출발과 끝은 현실문제

 '개념있는 스타 강사' 최진기 JK COMMERCE 대표
'개념있는 스타 강사' 최진기 JK COMMERCE 대표오마이스쿨

때때로 인문학은 현실문제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는 140년 전 영국의 노동현실을 바라보며 <자본론>을 썼고, 칼 포퍼는 1930년대 전체주의의 광풍을 비판하려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내놓았다. 인문학의 출발과 끝은 현실문제다.

"역사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막대한 부도 갖지 못했으며, 어떤 전투도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하고, 소유하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인간, 실제로 살아 있는 인간이다."

자주 인용되는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여기서 '역사'라는 단어를 '인문학'으로 바꾸어도 괜찮을 듯싶다. 모든 학문은 살아있는 인간, 즉 현실문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주체가 인간이기에 인문학은 현실문제와 동떨어질 수 없다.

예를 들어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를 통해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좀더 살펴볼까요? (줄임) 하버마스는 이 촛불시위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을 표했을 것입니다. 일단 촛불시위는 안전한 삶이라는 '공통의 사회적 목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공론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줄임) 정부정책을 실질적으로 바꾸지 못했더라도, 권위적인 권력에 도덕적 문제제기를 했으며, 시민들이 정치, 사회 면에서 민주적 참여를 통해 '저항'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죠. - 51쪽

막스 베버가 오늘날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를 본다면, 아마 '천민 자본주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입니다. 천민 자본주의란 근대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근대 이전의 비합리적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말인데, 베버가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줄임) 부동산 투기, 정경유착, 빈부격차 등…. 노동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없이 욕심으로 가득 찬 부에 대한 집착, 그에게 오늘날 우리의 자본주의는 매우 천한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 221쪽

책은 매 꼭지마다 현실문제에서 인문학의 역할도 고민한다. 촛불시위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이, 천민 자본주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고리를 맺는 방식이다. 단순히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을 바라보는 유효한 해석도구이자 관점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문학을 '인간을 정말 인간답게 만드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세상과 사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을 통합적·유기적으로 보고, 그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라는 것이다. 앞선 과정은 인문학이 살아있는 학문으로서, 독자들에게 다가서게 만든다. 인문학은 '상아탑 철학'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유임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인문학의 가치는 그렇게 새로워진다.

각박해진 사회, 인문학이 필요할 때

흔한 말이지만, 점점 세상이 각박해진다고들 말한다. '힐링'이 우리시대를 관통하는 열쇳말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지난 9월에 실시된 한국정책방송(KTV)의 여론조사는 이러한 분위기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각박해진 사회 때문에 힐링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우리사회의 논리 중심에 '인간'이 없어서 발생한 결과다. 철저하게 자본, 경쟁 따위의 논리가 만연하면서, 인간의 배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구성원의 대다수가 정신적인 치유를 원하는 사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하다. 책은 강의를 시작하며 "언제 어디서나 너와 다른 사람을 결코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칸트의 말을 소개한다. 저자가 인문학 강의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학문'인 인문학이, 우리 사회의 논리에서 인간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리라는 기대다.

서평을 쓰다가, 아주 막연하게, 이 책을 대통령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는 데 그의 역할이 작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비인간적인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보고픈 소망도 있다. 물론, 안타깝지만 그에게는 때가 늦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아직 기회가 많이 남았을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서 더 나은 우리 사회를 고민해보자.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를 그 첫걸음으로 삼아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최진기 씀, 스마트북스 펴냄, 2012년 10월, 17500원.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최진기 지음,
스마트북스, 2012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 #인문학 #최진기 #최진기의 인문학 특강 #오마이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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