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 임신도 하나님 뜻"...막말하고 이렇게 당했다

[해외리포트] 미 공화당 '여성을 향한 전쟁' 역풍... 여성 의회 진출 사상 최다

등록 2012.11.16 14:52수정 2012.11.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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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미국 정치에서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오바마의 재선때문만은 아니다. 미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들이 미 의회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17명이었던 여성 상원의원은 20명으로, 73명이었던 여성 하원 의원은 최소한 81명(13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른 수치로 일부 구역에서 개표결과가 확정되면 하원 의원의 경우는 조금 더 늘어날 수  있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113회 의회에 새로 합류하게 될 여성 상원의원들은 총 5명으로 이 중 4명이 민주당, 1명은 공화당 소속이다. 네브래스카의 뎁 피셔(공화당), 위스콘신의 테미 볼드윈(이하 민주당), 노스다코다의 하이디 하이트캠프, 하와이의 메이지 히로노, 그리고 매사추세츠의 엘리자베스 워렌이 그 주인공이다.

동성애자 커밍아웃한 최초의 상원의원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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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C뉴스에서는 "위스콘신의 테미 볼드윈이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공개한 최초의 상원이 됐다"고 보도했다 ⓒ NBC


이 중 위스콘신의 볼드윈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미국 최초의 상원의원이 됐다. 또 하와이의 히로노는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상원의원이 됐다. 전 하버드대학 법대 교수이자 미국 소비자 금융 보호국(CFPB)의 산파였던 엘리자베스 워렌은 현 스콧 브라운 공화당 의원을 물리치며 매사추세츠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이 됐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 재선에 도전한 6명의 여성 상원의원들 모두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으로 워싱턴의 마리아 켄트웰, 캘리포니아의 다이앤 페인스테인, 뉴욕의 커스틴 길리브랜드, 미네소타의 에이미 클로버차, 미주리의 클레어 멕카스킬, 미시간의 데비 스타베노우 등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뉴햄프셔에서는 두 명의 상원의원과 같은 수의 하원의원, 그리고 주지사 모두가 여성들로만 채워지기도 했다. 새로운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의 메기 하산으로 그녀는 미국 유일의 민주당 출신 여성 주지사가 됐다.


럿거스 대학의 미국 여성정치센터에 따르면, 20년 전 6명의 여성 상원이 탄생하자 미국 사회는 이 때를 '기록적인 한 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캠페인 펀드(Women's Campagin Fund)의 시옵한 베네트 대표는 "여성의 해(1992년 지칭) 이후 여성의 문제가 마법처럼 스스로 풀릴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녀는, "우리가 고무되긴 했지만 화요일(11월 6일 선거일)이 지금 우리의 현실을 진정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며 여성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주장했다.

'여성을 향한 전쟁'이 실패한 이유

민주당을 지원하는 정치적 단체로 특히 의회로 보낼 여성들을 발탁하여 교육시키고 당선을 돕는 '에밀리 리스트(EMILY's List)'의 스테파니 스리옥 대표는 "공화당이 여성을 향해 벌인 전쟁에서 민주당 여성 상원의원들은 최전방에서 싸웠다. 유권자들은 이들의 역할을 보았고, 여성과 가족을 위해 이들이 앞장서 왔다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이번에 재선에 나선 여섯명의 민주당 여성 상원의원들이 모두 당선된 것이다"고 얘기한다.

'에밀리 리스트'가 이번 선거만을 위해 512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자금을 모으고, 회원수도 5배나 더 늘릴 수 있었던 데에는 2011년부터 공화당이 반(反)여성적인 법안들을 일제히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같은 공화당과 보수세력의 일련의 움직임을, '여성을 향한 전쟁(War on Women)'이라고까지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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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더데일리비스트(The Daily Beast)> 9일자에서 "여성을 향한 전쟁이 역풍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 더데일리비스트


2011년부터 공화당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법안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거트마허 연구소(Guttmacher Institute)에 따르면, 2011년에 미국의 여러 주 의회에서 임신, 출산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법조항이 약 1100개나 입안됐다. 2012년 1/4분기에는 944개의 새로운 법조항이 생겼는데, 이 중 절반이 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제약하는 조항이었다.

예를 들자면 버지니아의 주의회는 여성이 낙태 시술을 받기 전에 울트라 사운드(초음파기계)를 찍어 태아의 사진을 보게했고, 루이지애나에서는 나아가 심장소리까지 듣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텍사스의 릭 페리 주지사는 일반 울트라 사운드로는 잘 보이지 않은 태아의 이미지를 얻어내기 위해 봉처럼 생긴 울트라  사운드 기계를 여성의 자궁으로 집어넣어 촬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2년에는 미 보건부가 보험회사가 피임약에 보험 적용을 해야 한다고 방침을 내린 것에 맞서 미주리의 로이 블런트 공화당 상원의원은 피고용인에 대한 피임약 보험 적용의 여부를 고용주가 정할 수 있도록 법안을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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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의 주 상원의원인 민주당의 뎁 버틀러는 공화당의 주 상원의원인 톰 굴스비의 법안을 비난하기 위해 봉처럼 생긴 울트라 사운드 기계를 들고 나와 그 법안을 반대했다. ⓒ 허핑턴포스트


특히 공화당은 2011년부터 여성 치료 전문 기관인 플랜드 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에 대한 연방 및 주정부 차원의 지원을 대폭 삭감하는 법안들을 연이어 상정했다. 유방암과 자궁암 진단과 함께 피임법을 교육시키고 낙태시술을 한다는 점 때문에 이 기관은 공화당과 보수진영의 공격 목표가 되기도 했다.

또 강간의 정의를 바꾸고 이에 대한 수사 관련 정부 예산을 줄이며, 강간범에 대한 처벌의 내용을 축소하고 피해자를 위한 지원금도 삭감하려는 움직임이 공화당에서 나왔다. 이를 지원했던 미주리의 토드 아킨 하원의원은 "강간이라면 여성의 몸은 다 알아서 작동하지 않게 되어있다", "처벌은 강간범이 받아야지 아이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며 강간에 의한 임신 낙태도 반대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역시 이를 지원했던 공화당의 리차드 머독 인디애나 상원 후보는 "끔찍한 강간 때문에 생명이 시작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것이다"고 말해 역시 물의를 일으켰다.

이밖에도 공화당은 정부 적자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저소득층 임산부와 엄마들의 영양 공급을 위한 윅(WIC) 프로그램도 대폭 삭감하는 법안을 2011년에 제출했다. 2012년 위스콘신의 스캇 워커 공화당 소속 주지사는 동일노동에 대해 남녀가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6일 선거 직전까지 공화당과 보수 세력은 "'여성을 향한 전쟁'은 소설에 불과하다"며 그같은 민주당과 진보세력의 주장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엔엔(CNN)>은 출구 조사에서 투표한 여성의 55%가 오바마를, 44%가 롬니를 찍었고, 오바마에 대한 이들의 지지가 오하이오와 같은 격전지에서 위력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강간과 낙태에 대해 막말을 일삼은 미주리와 인디애나의 공화당 상원 후보자들은 처음의 예상과는 달리 모두 낙마했다.

여성 정치인들의 잠재력

미주리의 클레어 멕카스킬은 2011년 정부 부채 상한선을 늘리는 문제로 민주, 공화 양당이 극심한 갈등을 겪을 때  "양당의 여성 의원들이, '우리가 이 문제를 넘겨 받아서 해결해야겠다'는 순간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그녀는, "내 생각에 우리는 천성적으로 양육자고 협상자다.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잘 어울리기를 원하고 해결책을 찾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일부 남자들은 때때로 싸우기 위해서 싸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여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뉴욕의 커스틴 길리브랜드도 이런 일화를 들려준다. 그녀는 "여성 의원들이 상대당 의원들과 더 잘 협력하곤 한다"며, 메인의 수잔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이 자신에게 "크리스틴, 만약 당신하고 나하고 예산 문제를 협상했다면, 우린 벌써 일주일 전에 끝냈을 거다"고 말한 것을 소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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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워렌의 중요성'이라는 제목으로 MIT의 경제학 교수인 사이먼 존스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 뉴욕타임스


매사추세츠의 엘리자베스 워렌 민주당 초선 상원 의원은 월가와 공화당의 반대로 자신이 세운 미국 소비자 금융 보호국의 수장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올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월가의 CEO(최고 경영자)는 우리 경제를 망치고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없애놓고도 여전히 의회 주변을 활보하는, 수치심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리고 상원 후보 토론회에서 "월가 사람들이 이 나라를 파산시켰다. 그것도 엉터리 모기지 하나로 단 한번에. 이 일이 3년 전에 일어났지만, 진정성 있게 책임지는 모습을 찾을 수 없고, 문제를 고치려는 진짜 노력도 없었다"고 용기있는 발언을 쏟아냈다.

역시 처음 상원의원이 된 위스콘신의 테미 볼드윈은 "나는 영광스럽게도 위스콘신의 첫번째 여성 상원의원이 된 것을 잘 안다. 또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공개한 최초의 미 상원의원이 됐다는 것도 매우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역사를 만들려고 선거를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일자리를 찾아 먹고 살려는 가족들의 삶에,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의 삶에,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준 군인들의 삶에, 기업가들의 삶에, 그리고 노동자들의 삶에 변화를 만들려고 선거에 나온 것이다"고 당선 소감을 말했다.

하와이의 메이지 히로노 초선 상원은 "내 엄마가 건강 보험도 안정적인 일자리도 없이 세 명의 자녀를 키워냈다. 여성이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잘 안다. 여성의 경제적 문제가 정말 매우 중요하다. 여성이 꾸려가는 가족을 돕기 위해 나는 계속 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기록적으로 많은 여성 의원들이 탄생한 것은 여성 유권자들이 같은 여성 후보자들을 뽑아줘서가 아니다. 상원 의원직에 도전했던 공화당 여성 후보자들은 하와이와 뉴욕, 캘리포니아 등에서 민주당 소속의 여성 후보자들에게 패했다. 이번에 재선에 도전하지 않은 텍사스의 케이 베일리 허치슨과 메인의 올림피아 스노우, 두 상원의원이 퇴임하고 나면 공화당에는 단 네 명의 여성 상원 의원들만이 남는다. (반면에 민주당에는 16명) 오히려 공화당과 그 후보들의 반 여성적이고 반 가족적인 정책에 대해 미 유권자들이 심판을 내린 결과로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여성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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