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아산 닭은 참 행복합니다

등록 2012.11.21 09:41수정 2012.11.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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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월아산 국사봉 등산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님들

월아산 국사봉 등산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님들 ⓒ 김동수


큰 아이 학교에서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등산을 하는 좋은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17일, 온 가족이 행사에 함께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다들 잘 모르는 얼굴이지만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월아산 길목에 들어섰는 데 닭들이 모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A4 한장 넓이에 갇혀사는 닭들이 많은데 이 녀석들은 넓은 운동장에서 모이를 먹고 있습니다. 원래 닭들은 이런 공간에서 모이를 먹어야 합니다. 닭은 특성이 땅을 팝니다. 그런데 닭장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참 행복한 닭들입니다.

"저 닭들은 정말 행복하겠다."
"닭장에 갇혀 사는 닭들이 많은데 이 녀석들은 운동장에 살고 있네요."
"닭은 원래 땅을 파는 습성이 있어요? 닭장에 갇혀 있으면 땅을 팔 수가 없잖아요."
"그래요. 저 닭들은 땅도 파면서 운동장처럼 넓은 곳에서 모이을 먹어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닭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a  월아산 길목. 닭이 모이를 먹고 있습니다. 저 닭들은 정말 행복합니다.

월아산 길목. 닭이 모이를 먹고 있습니다. 저 닭들은 정말 행복합니다. ⓒ 김동수


그런데 행복한 닭들은 보고 마음이 편했는데 금방 상심했습니다. 소나무 암으로 불리는 '재선충' 때문에 생명을 다한 소나무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덤 하나였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소나무 공동묘지나 다름없더군요.

"여보 저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소나무 무덤 아닌가요?"
"잘 알고 있네. 소나무 무덤이 아니라 소나무 공동묘지인 것 같아요."

a  저것이 무엇인고? 소나무 무덤입니다.

저것이 무엇인고? 소나무 무덤입니다. ⓒ 김동수


재선충에 걸리면 주위에 있는 소나무는 거의 다 베어 버립니다. 지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구제역 당시 한 마리가 걸리면 몇 백미터 반경 안에 있는 돼지를 다 죽인 것처럼 말입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받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구제역에 걸린 돼지만 죽입니다. 하지만 아직 재선충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걸리면 주위에 있는 소나무는 다 베어버립니다. 소나무 공동묘지가 되는 이유입니다. 소나무 무덤을 보면서 마음 참 아팠습니다.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올라가니 한순간 가슴이 뻥뚫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정상을 300미터 앞둔 헬기장입니다. 헬기장부터 정상까지 억새풀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진주에 온지 13년 만에 월아산은 처음입니다. 집에서 20분 거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멋진 산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a  저 멀리 월아산 정상 국사봉이 보입니다. 억새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저 멀리 월아산 정상 국사봉이 보입니다. 억새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 김동수


a  국사봉에서 헬기장을 내려고 있습니다.

국사봉에서 헬기장을 내려고 있습니다. ⓒ 김동수


"여보, 억새풀 좀 보세요."
"이제 아이들 데리고 한 번씩 오세요."

"13년 만에 처음이네. 앞으로 그렇게 해야지."
"여기 올라와서 진주 시내를 내려다 보니 얼마나 좋아요."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자주 아이들하고 등산 좀 하세요."
"알았어요."


아이들과 자주 등산도 다니라는 아내 타박을 들었습니다. 아내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억새를 동무삼아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 멀리 유유히 흐르는 남강과 비닐하우스가 보입니다. 남강은 진주 젖줄입니다. 비닐하우스에는 우리들 먹을거리가 한창 자라고 있습니다. 남강과 비닐하우스 생각하니 우리 생명줄입니다. 월아산 등산 많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a  월아산 정상에서 본 남강과 하우스 들판.

월아산 정상에서 본 남강과 하우스 들판. ⓒ 김동수


#월아산 #소나무 #닭 #재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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