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009년 7월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정현 의원과 얘기를 나누다 나경원 의원의 인사를 받고 있다.
남소연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의심하게 하는 행보는 과거에도 있었다. 미디어 관련법 처리 당시 '말 바꾸기'가 대표적이다.
2009년 7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개정안 직권상정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데
7월 15일, 박근혜 후보(당시 한나라당 의원)는 "가능한 여야 간에 합의해서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라며 "정말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동을 걸고 나섰다.
나흘 뒤인
19일,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결정하자 박 후보는 "만약 (본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며 강행처리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에 한나라당 내부는 발칵 뒤집혔고, 야당은 이를 환영했다.
하지만 사흘 뒤인 22일,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한다. 표결에 참여하기 위해 본회의장을 찾았던 박근혜 후보는 여야 충돌로 본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한다. 미디어법 통과 이후 박 후보는 "합의처리가 됐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다"고 하면서도 "이 정도면 국민들이 공감해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미디어법 처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야합의 없는 직권상정'을 반대하던 박 후보의 의견이 사흘 만에 뒤바뀐 것을 두고 '박심삼일'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가 미디어법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박 후보는 신문이나 통신의 방송진출을 허용하되, 구독률 20% 이상의 신문사는 방송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규제'와 신문과 방송의 점유율을 합산한 '매체 합산 시장 점유율'이 전체 여론 시장 점유율의 3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사후규제' 방안이 포함된 자신의 수정안을 관철시키고자 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러한 절충안을 수용했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의 최종안과 관련 "사전규제 진입과 사후규제 진입을 다 할 수 있게 했고 여론독과점도 해소할 수 있는 장치를 도입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날 통과된 미디어법은 2011년 12월 '조중동 종편' 출범의 근거가 된다. 박 후보는 종편 개국 당시 이들 방송사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 정책인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박 후보의 '원칙'도 모호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 후보는 이명박 당시 후보의 '대운하 공약'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강바닥 파고, 토목공사 일으킨다고 경제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민생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집 앞에서 대규모 공사가 벌어져도 정작 돈은 개발정보 미리 챙긴 사람들이 벌어가지 않았습니까. 저는 땅이 아니라, 땀으로 돈 버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진정한 경제 지도자는 미래를 준비하고 사람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올바른 국가관을 갖고 있어야 경제도 살릴 수 있습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대운하'와 다를 것이 없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며 "강바닥을 파고,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하지만 박 후보는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며 침묵을 지켰다.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은 자신의 저서 <박근혜의 거울>(시대의 창)에서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박근혜가 정치적으로 급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하지만 미디어법 처리, 4대강 사업 등에서 보듯) 과연 그의 원칙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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