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은 '교실이데아'를 통해 신세대에게 최신 경향을 따르면서 저항을 표현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했다.
서태지컴퍼니
그들의 음악을 통해 세대적 연대감을 느꼈던 X세대들은 포크와 진군가, 트로트 음계에 머물러 있던 당시 민중가요의 음악적 관습을 거부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자본주의적 소비와 정치적 저항을 구분짓기 원하지 않았다.
1996년 12월 20일 노동문화 월례포럼 실행위원회 주최로 종로성당에서 열린 <민중가요는 죽었다?!>포럼은 당시 문예 활동가들이 느낀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며 새로운 실험들을 시작한 때에는, 이미 자본을 앞세운 대형 음반사들이 유통망을 완전히 장악한 뒤였다.
"80,90년대는 대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민중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민중가요 음반을 팔던 시절이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앞 헌책방들이 사라지면서 CD유통 회사들과 직접 거래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겨났죠. 민중가수들 스스로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가 없었던 게 아니에요. 민중가수들끼리 독립 레이블을 만든 적도 있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기에는 자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유통망에 한계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비교적 자유로운 인디 레이블에 들어가 활동하는 게 정치적 저항과 음악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지씨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인디 레이블도 결국 수익을 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고 했다. 그녀는 음악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투사이기도 했다. 그녀의 앨범을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는 이유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민중가수들이 앨범을 홈페이지와 이메일을 통해 직접 판매한다. 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됐다. 물론 이익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앨범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 1~2천만 원 가량이다. 앨범 판매 수익은 대개의 경우 앨범 제작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도 앨범 제작은 포기할 수 없다.
"작가가 작업을 안 하면 존재 의미가 없잖아요." 그녀의 말이었다.
여기에 노동 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문예 활동가들끼리 연대하고 고민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IMF사태는 그 시작이었다. 급격하게 진행된 자본시장 개방과 노동 유연화 정책은 비정규직 비율을 폭발적으로 늘렸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심각한 임금 및 복지 격차는 노동운동 진영 내의 갈등의 불씨가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 노총과 노조의 문화부는 예전만큼 문예 활동가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조직 내 문화부를 아예 공석으로 남겨놓거나 문화부장을 조직 내 오락부장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만큼 전문 문예 활동가들이 노조에서 차지하는 입지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예 활동가들 일부에서는 "우리를 행사 뛰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예전처럼 문예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미래를 도모할 만한 정기적인 모임도 조직도 없다. 이제 남은 건 각개격파뿐이다.
민주화 이후 급격히 달라진 정치, 사회적 지형 역시 그들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다. 민주화와 노동해방이 제1의 가치였던 80년대와 달리 현재의 사회적 현안은 인간의 미시적 삶 전체를 아우른다. 대학 등록금, 육아복지, 일자리, 대형마트 입점규제 등의 경제적 현안들이 가장 뜨거운 화두가 됐다. 세상은 변했다. 다양한 의제, 다양한 계층들을 상대로 어떻게 소통을 시도할지가 현재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사회적인 지형 자체가 변했어요. 예전만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건 상상도 못했죠. 고문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운동이라는 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구나' 했는데 지금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잖아요. 노동만이 아닌, 삶의 여러 부분에서 계층적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정치와 삶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고 있죠. 인디밴드가 강정 마을에 들어오기도 하고. 문화지형이 점점 바뀌고 있는 걸 느껴요." 이러한 흐름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건 인디밴드들이었다. 자신들의 의견을 당당히 표현하며 소외 계층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2011년 7월, 강정 해군기지 건설 강행 사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을 때, 인디밴드들은 홍대에서 <나의 강정을 지켜줘>라는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3일간 열린 이 행사에는 이스턴사이드킥, 시베리안 허스키, 킹스턴 루디스카 등이 참여했다. 수익금 전액은 강정마을 투쟁 후원금으로 전달됐다.
출구가 없는 고민, 투사와 음악가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