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쪼개 장학기금 마련,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학생부장 일기 34] 자식을 가슴에 묻으며 조성한 장학금

등록 2012.11.22 10:45수정 2012.11.2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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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증서 수여식을 하다가 하마터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수혜자도 아닌, 그저 증서에 적힌 내용을 대독해 주는 입장인데도, 마치 내 일인 양 가슴이 뭉클했다. 자상한 얼굴의 중년 부부는 장학증서를 수여하면서 마치 수혜 학생들이 자기 아들인양 어깨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많이 겪게 될 것이다. 힘들면 언제라도 연락하렴. 제2의 부모라 생각하고 기꺼이 도와주겠다. 너희들의 수호천사가 돼주고 싶다."

그들은 몇 해 전 학교를 졸업한 민석(가명)이의 부모님이었다. 직접 가르쳐본 적은 없다. 하지만 동료 교사들을 통해 듣자니, 민석이는 매사 성실한 데다 공부도 곧잘 한 진짜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민석이를 알고 있는 교사들은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그는 졸업한 후 명문대에 진학해 또래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는 가족과 친구뿐만 아니라 학교의 자랑이기도 했다.

학교가 그의 근황을 다시 듣게 된 건 그로부터 몇 해 뒤였다. 꿈 많은 대학생이던 그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 청천벽력 같은 사고에 부모가 받은 충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금쪽같은 자식을 먼저 저 세상에 보낸 부모의 고통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슬픔이기에.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허공에 대고 그리운 자식의 이름을 불러가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간 그의 부모님은 못 견디게 힘들었을지언정 세상을 원망하진 않았다. 외려 부모로서 생전에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함을 자책하고, 아들의 이름이 지워지듯 잊혀가는 게 괴로웠다고 한다.

아들 이름이 지워지듯 잊혀가는 게 괴로워... '유민석 장학금' 마련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냉정하고 꿋꿋해져야 했다. 비록 쓰라린 기억은 세월이 약이라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되레 커지는 법이다. 오랜 고민 끝에 그들은 어려운 결심을 했다. 아들의 이름을 따 '유민석 장학금'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민석이가 재학 때는 물론 졸업한 후에도 집에만 오면 학교 자랑을 늘어놓았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학교에 기금을 조성하고, 재학 중인 후배들에게 아들의 이름으로 지속해서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자식을 저 세상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을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비록 장학금으로 맺어진 관계일지언정, 해마다 제2, 제3의 '유민석'들이 아들이 되어 자신들 앞에 나타나리라는 바람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건 따로 있다. 만만치 않은 장학기금을 부모님의 월급을 쪼개 적금을 넣듯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된 '죗값'이라는 듯, 최소한의 생활비를 빼고는 월급을 모두 장학기금으로 적립하고 있다고 했다. 생면부지 남의 자식을 위해 월급을 고스란히 내놓는다는 건 결코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담담하게 말한다.

"민석이가 객지에서 생활하고 공부하자면 어차피 들어갈 돈이고, 정성이고, 시간입니다. 민석이가 너무나 좋아했던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쓰이는 것이고, 그로인해 그들이 유민석이라는 제 아이의 이름을 평생 기억하게 될 테니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외려 감사하고 기쁠 따름입니다."

학교마다 장학금은 있다. 일반 기업체나 관공서가 주는 것부터, 정치인과 기업인 등 명망가가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학생들에게 '살포'하는 장학금까지 그야말로 차고도 넘친다. 하나같이 '생색내기'용이다. 그런 장학금들은 액수는 많을지 몰라도 '감동'이 없다. 주는 이도, 받는 이도 그다지 감사해 하는 마음 없이 그저 관행으로 여긴다.

장학금이든, 기부금품이든, 수혜자는 기부자의 '마음'을 받는다. 해마다 연말연시만 되면 카메라를 대동하고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하는 높으신 분들을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은 것도, 어느덧 관행이 돼버린 학교의 연말연시 불우이웃돕기 모금 행사를 아이들은 그저 '삥뜯기'라며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마음'이 담기지 않아서다.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또 있다. 모든 장학금이 몇몇 학생에게 쏠려 애초 남의 일로 여기는데다, 정작 수혜자 대부분은 장학금이 필요하지 않은 여유 있는 집안의 자녀인 까닭이다. 경제적 여건과 성적이 정비례하는 현실과 대부분의 장학금이 관행대로 수혜 자격을 성적 우수 학생으로 규정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석이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다. 착실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칭찬하려는 취지도 좋지만, 그보다는 형편이 어려워 공부할 여건이 안 되거나, 또 그로인해 일탈의 우려가 있는 아이에게 자신들의 장학금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장학금이 많은 아이들에게 '예방 교육' 차원에서 활용되었으면 한다는 취지였다.

장학금, 많은 아이들에게 '예방 교육' 차원에서 활용되었으면...

학교도 부모님의 숭고한 뜻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민석이의 기일이 되면 그가 잠들어있는 공원묘지를 찾아가고, 그가 태어난 생일에 맞춰 장학금 수여식을 하도록 했다. 이는 학교가 그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는 다짐의 의미이자, 해마다 찾아오는 생일과 기일 때만이라도 부모님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그런가 하면, 학교장을 비롯해 당시 민석이를 가르쳤던 교사와 함께 생활했던 동급생 친구들도 장학금 마련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교사들은 월급을 일부를 떼어 적립하고, 친구들은 동창회나 친목회 같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회비 일부를 장학금으로 꾸준히 보내오고 있다. 민석이 부모님이 뿌린 선한 씨앗이 이렇듯 가지를 치고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간다는 건 적당히 세상에 길들고 때 묻어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주위 한 번 둘러볼 여유 없이 바쁘게만 살아온 이 땅의 기성세대들은 어쩌면 '닳아지지' 않고서는 이 삭막한 사회를 견뎌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선의조차 끊임없이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보란 듯 이름을 내세운 수많은 학교 장학금의 취지를 지금껏 조롱해왔다. 우리나라는 매명(賣名)에 환장한 사회라는 '삐딱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나름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그들치고 사실 존경할 만한 이름을 찾기는 어려웠다. 누군가는 말했다. 주변에서 역할모델을 찾을 수 없다면 바로 그곳이 절망적인 사회라고.

그러나 민석이 부모님을 뵙고 난 후 그런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만 하는 고통과 슬픔을 타인에 대한 사랑과 베풂으로 치유하려는 그들의 숭고한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어제까지 일면식도 없던 학부모였지만, 오늘 이 순간 그들은 교사인 나를 일깨워 준 참스승이다.
#학생부장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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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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