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대륙 침략 나선 이유는 '곰' 때문?

일본 제국주의 시대 인기만화, 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등록 2012.11.23 17:14수정 2012.11.2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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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곳이 적은 대륙으로 와서 반도 동포와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이리 기쁜 일은 없다." (頼りの少ない大陸へ来て半島の同胞と友達になれてこんなうれしいことはない)

일제 강점기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일본 만화가 발굴됐다. 타가와 스이호(田川水泡)의 작품 <노라쿠로'(のらくろ)>시리즈가 그것이다.


<노라쿠로>는 1936년 당시 발행부수가 75만부에 달했던 잡지 <소년구락부> 최고의 인기작품이다. 당시 이 만화는 일본 소년층에서 '모르는 이가 극히 드물다고 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노라쿠로>는 우리 어르신들도 일제 강점기였던 유년시절 한 번쯤 접했을 법한 어린이 만화이다.

이런 <노라쿠로>를 두고 새삼 '발굴'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나는 <노라쿠로>가 우리(대한민국) 언론에 조명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이 만화를 통해 당시 평범한 일본인의 동북 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노라쿠로의 새로운 측면을 지적한 김웅기 홍익대 교수(국제경영-일본전공)와 함께 <노라쿠로>에 대해 알아봤다. 

내무반 희극이었던 <노라쿠로>, 조선인을 '반도동포'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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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노라쿠로>는 검은 떠돌이 개(노라쿠로)가 군대에 '이병'으로  입대한 후, '대위'가 될 때까지 부대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줄거리로 다뤘다. 처음에는 단순한 내무반 희극이었지만 이후 성격이 변화되어,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제국주의 시대의 굴곡을 만화 안에 담아냈다.


1931년부터 1941년까지 <소년구락부>에 연재된 <노라쿠로> 속에는 1930~40년대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만화 내용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인을 상징하는 캐릭터 금강(金剛)을 일본인 노라쿠로와 같은 동물(개)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해방 전(1945년 8월15일) <노라쿠로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 <노라쿠로 탐험대>에 등장하는 조선인 금강은 노라쿠라에게 '반도 동포'라고 불려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 <노라쿠로>는 당시 경직된 일본 군부에게 있어 눈엣가시였다. "제국군인을 개로 비유하다니 괘씸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일본 내무성(內務省) 관료들은 한발 더 나가서 "이 전시 하에 만화 같이 장난스러운 것을 게재하다니 용납할 수 없다"는 시비를 걸어, <노라쿠로>는 1941년 10월호를 끝으로 연재 자체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감안할 때, <노라쿠로>는 당시 일반 대중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 꼽힌다. <노라쿠로>를 통해 당시 일본 대중의 조선, 중국, 구소련에 대한 생각, 그리고 만주 진출에 대한 생각을 알아보자.

<노라쿠로>가 만주로 떠나는 이유는 '대륙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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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노라쿠로 탐험대>에는 만주사변(1931년) 이후, 제국주의로 흐르던 일본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군인이었던 노라쿠로는 <노라쿠로 탐험대>에서 맹견부대(猛犬聯隊)를 제대하고 만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은 다른 군인(연대장)의 동조를 얻는다.

"저는 군인을 그만두고 대륙 개척을 위하여 힘을 써보고 싶습니다." (노라쿠로)
"대륙이라. 과연 대륙 개척은 우리나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연대장)
"지금은 소년, 소녀 모두 대륙으로 대륙으로 나서야 할 때니까 말입니다." (노라쿠로)

<노라쿠로 탐험대>에서 특징적인 것은 일본을 비롯해 조선, 중국, 만주, 소련을 동물 나라에 빗댄 점이다. 개(일본)를 비롯해 돼지(중국), 염소(만주), 양(조선), 곰(옛소련)으로 표현했다. 돼지, 염소, 양은 자신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국가로 묘사하는 반면 곰나라를 이들을 노리는 막강한 적의 이미지로 규정했다.

<노라쿠로 탐헝대>에서 노라쿠로의 대대장은 대륙으로 진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곰나라(옛소련)로부터 타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었다. 출간 당시 일본은 이미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돌입했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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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돼지나라(중국)도 양나라(조선)도 염소나라(만주)도 모두 우리나라의 보호가 없으면 곰나라(소련)에게 먹혀버릴 테니까 잘 지켜 주거라." (대대장)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노라쿠로)

만화에서는 '(만주로 향할 때 얻는) 여행허가증'은 '행동이 바르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고 정의하며, 만주 진출의 당위성을 부여했다. <노라쿠로 탐험대> 속에서 만주는 이상향 같은 곳으로 표현된다. 이는 당시 일본이 자국민에게 만주 이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상황과 맥락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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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만주에는 지진이 없다. 일본 섬나라가 넓지는 않다. 만주 대륙은 좁지 않다. 비옥한 대지도 나쁘지 않다. 개척하지 않을 수 없다. 추운 것이라니 겁도 많으셔. 약한 소리 하는 것도 끝이 없다. 건강하게 일만 하면 춥지 않다. 모두 함께 하니까 외롭지 않다. 그게 싫다면 어쩔 수 없으니 좁은 내지에서 울며 부러워만 하거라. (중략) 왕도락토에서 고생이란 없다."

여기서 말하는 왕도락토(王道樂土)란 1932년에 일제가 괴뢰국가로 세운 '만주국'의 건국이념이다.

태양에 대한 경례, <노라쿠로> 금강에게서 그들이 스친다

만화 속 노라쿠로는 만주에 도착한 이후에도 일왕(천황)에 대한 경례를 잊지 않는다. "아침에는 반드시 태양을 향하여 경례를 하는 게 나의 습관"이라고 말하며, 다른 동물들에게도 같이 하자고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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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이런 <노라쿠로 탐험대>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주인공 노라쿠로를 비롯하여 일본인을 상징하는 개로 묘사되는 '금강'의 존재가 그렇다. 금강은 노라쿠로의 만주 탐험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인이다.

"의지할 곳이 적은 대륙으로 와서 반도동포와 친구가 될 수 있다니 이리 기쁜 일은 없다."

노라쿠로는 금강에게 반도동포, 친구라는 표현을 쓰며 친근감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선전을 잘하는' 것으로 묘사된 돼지(중국)는 노라쿠로(일본)와 금강(조선인)의 사이를 이간질한다. 당시 일본인 사이에 팽배했던 '중국에 대한 편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라쿠로 탐험대>에서 돼지의 이간질을 알게 된 노라쿠로와 금강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만화 속에서 돼지의 이간질은 오히려 노라쿠로와 금강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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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앞으로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어! 남의 말에 환혹 당하지 말고 합심 잘합시다." (노라쿠로)
"둘 사이가 나빠지지 않아 다행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신뢰하며 친하게 지내며 사이 깊은 친구가 됩시다." (금강)

<노라쿠로 탐험대>는 노라쿠로와 금강이 돼지, 양, 염소를 뒤로 한 채 끝까지 협력해 모험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즉 일본과 조선이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유독 조선만 이런 묘사를 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시 역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만 보더라도 만화에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라쿠로>가 인기를 끌던 1930~40년대, 일제는 조선에 전쟁 협력 강요를 위해 새로운 통치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1937년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내선일체를 들고 나왔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노라쿠로 탐험대>속에서 조선인 금강은 "우리 반도 3000만 명은 모두 당신 편입니다"라고 말하는 일제의 협력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이는 일제의 착취와 멸시에 시달리던 실상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1930, 40년대 일본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노라쿠로와 금강이 "동양의 텍사스"로 불린 만주 땅에서 만났다는 점 또한 하나의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박정희, 최규하라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해방 후에 대한민국 요직을 차지한 이들 중 상당수가 만주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노라쿠로 탐험대>라는 만화에서만큼은 조선은 일본과 운명을 같이하는 동반자였다.

1930년대 말, 일제에 의한 전쟁협력 강요의 슬로건이던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만화 <노라쿠로>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주권을 잃었던 우리민족의 서글픈 현실도 담겨 있었다. 만화 속 노라쿠로의 한마디가 아직도 내 머릿 속을 맴돈다.

"아침에는 반드시 태양(일왕)을 향하여 경례하는 게 나의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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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가와 스이호의 <노라쿠로 탐험대> ⓒ 타가와 스이호


#노라쿠로 탐험대 #노라쿠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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