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형(비형랑, 장동직 분). 사진은 비형랑이 김춘추(채상우 분)의 목에 칼을 대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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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보희와 비형이 사귀었을 가능성은 있을까? 그랬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거의 부모자식뻘이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비형과 보희의 출생 연도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정황을 통해 두 사람의 나이차를 추정할 수 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진지왕 편에 따르면, 진지왕은 재위 4년째 되는 해의 음력 7월 17일에 사망했다. 양력으로 치면, 서기 579년 8월 24일이다. 따라서 비형은 적어도 580년 이전에 출생했다.
김유신이 595년에 출생했으므로, 동생인 보희는 596년 이후에 출생했다고 보아야 한다. 비형이 580년에 출생했고 유신과 보희가 연년생이었다면, 보희와 비형은 최소 16세 차이가 난다. 유신 남매가 연년생이 아니라면, 이들의 나이차는 20년에 가까워진다.
비형이 580년 이전에 출생했다면, 이들의 나이차는 20년을 넘었을 것이다. 물론 열렬히 사랑한다면 나이차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비형이 반체제 운동가였다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전혀 없고, 보희가 비형을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현실성이 상당히 낮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동생에게 꿈을 판 보희는 어떻게 됐을까 그럼, 왕후의 꿈을 동생에게 팔아버린 보희는 어떤 남자와 결혼했을까?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는 뜻밖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보희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필사본 <화랑세기> '제18대 풍월주 김춘추' 편에서는 <문명황후 사기(私記)>라는 책을 인용하여, 나중에 가서는 보희가 문희(훗날의 문명왕후)에게 꿈을 판 일을 후회했다고 한다. 문희가 김춘추의 정실부인이 된 뒤부터 그런 감정이 생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