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 위치한 S고시원. 방과 방 사이가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재연
방 안으로 들어서자 뜨거운 기운이 훅 올라와 갑갑했다. 창문이 있지만 그마저도 판으로 막아놓았다. 이유를 물으니 주인은 "앞 건물과 바로 붙어 있어 창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 대신 '내창'이 있다고 했다. '내창'이란 실내 복도쪽으로 난 아주 조그만 창문을 뜻한다.
방 측면에 작은문이 보였다. 옷장인가 하여 열어보니 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발을 걷어본 뒤 경악했다. 바로 옆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옆방 사람의 사생활을 모두 지켜볼 수 있는 구조였다.
지난 9월 한 고시원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창문을 통해 방 안 여성을 지켜보며 문을 열라고 위협한 사건이 있었다. 고시원의 취약한 치안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이 방처럼 '비밀의 문'까지 있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불안할까.
방 밖으로 나왔다. 지나가는 남학생이 "방이 좁고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방은 복도 끝방이기에 창문이 있어 그나마 낫다"고 말했다. 창문이 없는 내창 구조의 방은 월 28만 원, 외창 구조는 30만 원이었다. 2만 원으로 한 줌의 빛과 어둠이 갈렸다.
두 번째로 찾은 O고시원은 여성 전용이었다. 현관을 들어갈 때부터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계단 한층을 올라가면 한 번 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그야말로 '철통 보안'이다.
'철통 보안' 여성 전용 고시원, 평균보다 비싸내부는 가정집과 다름없이 쾌적하고 빛도 잘 들었다. 방마다 창문이 있고, 도로쪽 방 창문은 보안과 방음을 위한 3중창 구조였다. 방은 13개고 화장실 겸 샤워실이 4개였다. 3명당 하나의 화장실을 쓰는 셈이다.
O고시원 주인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들은 사실 우리 집에 못 산다"며 "부모님이 전적으로 지원해주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여학생들이 많다. 고시공부는 누구나 열심히 하기에 사실 효율성 싸움이다"라며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많은 투자를 해 좋은 고시원에 사는 게 빠른 합격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O고시원의 가격은 월 45만 원에서 48만 원 사이다.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은 A고시원이었다. 고시원에 들어서자 총무는 곧바로 '내창'을 원하는지, '외창'을 원하는지 물었다. '내창' 구조는 18만 원에서 24만 원, '외창' 구조는 경우 26만 원에서 36만 원 사이였다. 18만 원짜리 방은 지하에 있다.
고시원 총무는 "고시원 건물이 언덕에 있어 창문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창문 없는 방'이 많고 값이 싼 이유였다.
이번엔 W리빙텔에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에서 빈곤이 느껴졌나? 기자가 정확한 용건을 말하기도 전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우리집은 월 50만 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리빙텔에는 각 방마다 화장실이 있다. 밥과 김치, 라면, 계란만을 제공하는 '식사'도 가격에 포함된다. 리빙텔은 고시원보다는 원룸에 가까워 가격대가 평균 50만 원이었다.
마지막으로 K리빙텔을 찾았다. 새로 지은 건물이었는데, 바닥은 대리석이었다. 역시 각 방마다 화장실이 있고, 부엌 겸 휴게실에는 대형 스크린의 텔레비전도 있었다. "화재 위험은 없느냐"고 묻자 총무는 "이 건물은 걱정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마다 화재 감지기가 있고, 복도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다. 화재경보기도 완비돼 있다.
방에서 빛을 보려면 돈을 더 내야게다가 방마다 모두 '외창'이 있다. 창문 없는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작은 소화기 하나가 전부인 다른 '저렴한 고시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K리빙텔에 거주하려면 월 50만 원에서 55만 원을 내야 한다. '저렴한 고시원'보다 약 두 배 정도 비싸다.
노량진 고시원 15곳을 둘러본 결과, 가격은 최저 월 18만 원에서 최고 55만 원까지 다양했다. 같은 고시원이라도 '창문'이 있느냐(외창), 없느냐(내창)에 따라 3만 원에서 4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밥과 김치, 라면, 계란을 등 '식사'를 제공하면 값은 더 비싸진다. 빛을 누리고, 배를 채우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