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사봉공 기사“멸사봉공”이 쓰인 동아일보 1940년 7월 7일 기사(왼쪽), 박정희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멸사봉공”의 헌신을 요구했다는 1972년 6월 6일 기사
이윤옥
훈시 가운데 '멸사봉공의 정열에 불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때의 멸사봉공이 누구를 위한 멸사봉공인지는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것이다. 일본 <위키피디아>의 멸사봉공 뜻을 보면 "자기 자신에게 마이너스결과를 가져오더라도 주인이나 천황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여 봉사하는 정신. 1945년 이전 수신교육(修身教育)의 기본 사상 중 하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1945년이라면 패전 이전을 말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 극에 달할 때 일본의 교육 방침은 첫째도 둘째도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국주의 실현이었다.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아야 할 시절에 쓰던 말이 멸사봉공인 것이다.
중국에서는 멸사봉공 대신에 '극기봉공(克己奉公)'이란 말을 쓴다. 한국에서도 예전 문헌에는 '멸사봉공'이라 쓰지 않았다. 고려 말 학자인 권근(權近, 1352~1409)의 시문집인 <양촌집(陽村集)> 33권에 '배사향공(背私嚮公)'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를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뛰어난 선비와 충성을 다하는 대신과 우뚝한 호걸과 위대한 영웅과 산림의 처사(處士)와 초야에 묻힌 인재들도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에 민첩하고 공을 세우며, 임기응변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며, 간사한 자를 내쫓고 완만한 자를 물리치며, 아첨하는 자가 나오지 못하고 질투하는 자가 용납되지 않아서 법령이 수행되고 도리가 융성해졌습니다.(卓犖之傑。瑰偉之雄。山林之逸。草野之窮。莫不躍鱗振羽。趨事儳功。迎機應變。背私嚮公。斥逐邪佞。拔去頑兇。讒謟不進。媦疾不容。令修弊革。理道惟豐。)"
또한 조선 중기의 문인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문집인 <우계집(牛溪集)>에 나오는 '지봉공(只奉公)'을 요즘 사람들이 멸사봉공이라고 번역을 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