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라제(마케도니아), 알리나(오스트리아), 매트(호주), 데이비드(아일랜드). 마케도니아 오리드에서 머물 때 기꺼이 친구가 되준 이들이다.
홍성식
오리드 써니레이크 호스텔에 1개월 남짓 머물렀던 2011년 여름. 스치듯 만난 여행자는 대략만 헤아려도 100명이 넘을 것 같다. 대부분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살고 있는 청춘들. 그중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찰랑이는 금빛 머리칼을 가진 스웨덴 여학생 리사. 장인이 만든 수공예품 인형처럼 예쁜 북구의 미인. 리사가 꿈꾸는 사파이어빛 눈동자를 빛내며 이런 말을 했다. "몇몇 사람만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닌, 가난한 나라의 헐벗은 이들까지 모두 어울려 아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전공으로 국제관계학을 택했다"고. 농담이 난무하던 술자리에서 들려준 리사의 진지한 고백은 나뿐 아니라 동석자 모두를 숙연케 했다.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세계를 좌지우지한다. 하지만, 자연이 그 오만한 미국을 심판할 것"이란 말로 반골의 나라 아일랜드에서 왔음을 알린 데이빗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가로질러 인도까지 간 뒤 배를 타고 호주로 가 체리농장에서 일할 것이라고 했다. 거기서 돈을 모으면 다시 자전거로 멕시코를 출발, 남아메리카의 끝 파타고니아로 갈 것이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의 안정된 삶을 과감하게 버리고 방랑과 모험에 생을 맡긴 것이다.
인종과 국가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았기에 누구에게나 친절한 미소와 다정다감한 말투를 보여줬던 전정한 의미에서의 '평등주의자' 독일 은행원 잉고 역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80cm에 육박하는 키에 어울리지 않게 아기처럼 눈물이 많았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스무 살 여대생 알리나는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히피였던 자신의 부모가 젊은 시절을 보낸 인도 해변에 가면 앞으로 뭘하고 살아야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알리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네 꿈이 내 꿈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말로 그녀의 소원이 곧 이뤄지길 빌어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