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벽화인데, "뭐 볼 게 있어?"라니...

[아버지와 떠난 여행] '한국의 나폴리' 통영

등록 2012.12.12 10:58수정 2012.12.1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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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에서 내려다본 통영. 정지용 시인은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표현했다. ⓒ 전용호


12월 1일. 아버지와 경남 진주를 가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다 삼천포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삼천포로 가려고 했는데 그냥 진주로 가기로 했다며…. 아버지는 통영이 TV에 나왔다며, 볼 만하더라고 한다.

"통영을 안 가보셨어요?"
"거제 갔다 오는 길에 지나가기는 했는데…."
"그럼 통영 가요."


통영 여행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디를 구경해야 할지 생각도 안 했다. 관광지도를 얻어 보려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통영 지도는 다 떨어졌단다. 난감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얼른 세병관, 케이블카, 동피랑마을 정도가 떠오른다.

통영으로 들어서니 낮 12시가 넘어간다. 언뜻 들은 말로는 케이블카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점심을 조금 늦게 먹을 생각을 하고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통영 시내를 가로질러 다리를 건넌다.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해서 표를 사니 바로 탈 수 있다고 한다. 예감이 맞아 떨어져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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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마을에서 내려다본 통영시내. 동양의 나폴리라는 이름이 헛말이 아니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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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산 한려수도케이블카. ⓒ 전용호


케이블카를 타려고 들어서니 곤돌라라고 쓰여 있다. 곤돌라? 케이블카가 아닌가? 단순하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탑승장에서 차체(車體)가 회전하면 곤돌라고, 되돌아가면 케이블카다. 통영케이블카는 탑승장에서 회전을 하니 곤돌라가 맞다.

안전요원은 원래 8명씩 타야 하는 건데 점심시간이라 두 명만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내려올 때는 여러 명이 타고 올 수도 있다고 사전 안내를 한다. 곤돌라를 타고 두둥실 뜬다. 기분이 좋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소나무 숲이 속이 훤히 보인다. 점점 올라가니 바다가 보인다.

둥실둥실한 기분을 안고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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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본 한려수도. 바다가 아름답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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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정상. 461m로 한국 100대 명산 중 하나란다. ⓒ 전용호


너무 쉽게 올라와서 서운한 기분이 든다. 머리 위로 '한산대첩전망대'가 보인다. 아버지는 무릎이 안 좋으신데, 올라가 보고 싶어 하신다. 난간을 잡고 나무계단을 서서히 올라간다. 소나무 숲 사이를 벗어나 전망대에 서니 통영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통쾌한 기분? 이 맛에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는가 보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표현한 정지용시인의 글귀가 새겨진 작은 표지석이 있다. 역시 시인이다. 이곳에 서서 바라본 풍경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

전망대에서 한참을 둘러본다. 또 다른 전망대가 머리 위로 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또 올라가신단다. 정상을 향해 서서히 올라간다. 빙 둘러 보이는 바다와 섬.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배. 파란 하늘 아래 미륵산 정상. 감동이다.

미륵산 정상 표지석 앞에는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긴 줄이 섰다. 우리도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아버지는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찍기 싫어하신다.

"늙은 사진 뭐하려고."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지 표지석 앞에 선다. 고맙다. 사진 한 장 또 남길 수 있어서.

미륵도를 나와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 충무(통영) 왔으면 충무김밥을 먹어야 하는데 노인네가 회를 너무나 좋아한다. 통영까지 와서 회 안 먹고 가면 서운해 할 것 같다. 횟집을 찾는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차를 댈 만한 곳에 주차하니 아주머니가 나와서 친절하게 안내한다. 호객행위지만 기분이 좋다.

자리를 잡고 생선회를 시키니 사전에 나오는 음식으로 상을 가득 채운다. 초무침, 해삼, 생굴 등. 맛있게 먹고 있으니 회가 나온다. 싱싱하다. 통영에서 먹는 생선회 맛이 좋다. 마지막으로 나온 매운탕까지 비우고 나온다.

통영 세병관은 여수 진남관과 비교되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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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영 중심건물인 세병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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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크기가 2m가 넘는 세병관 현판. 두보의 시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유래했으며 은하수를 끌어다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 전용호


관광지도를 구해서 다음 목적지인 세병관으로 향한다. 통제영 객사로 엄청 큰 건물을 자랑하는 세병관은 통영 오면 꼭 보고 싶었다. 골목길을 찾아 들어간 곳은 한참 공사 중이다. 세병관 앞은 땅을 파헤쳐서 정문을 통해서는 들어갈 수가 없다. 감동이 깨진다.

여수는 전라좌수영이고 통영은 경상우수영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이 수군통제영으로 승격되었고, 통영으로 이전을 하였다. 진남관(鎭南館)은 남쪽을 진압한다는 뜻을 가졌고, 세병관(洗兵館)은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중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유래했으며 '은하수를 끌어다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진남관 앞에는 망해루(望海樓)가 있다면 세병관 앞에는 망일루(望日樓)가 있다. 진남관은 바다를 제압하고, 세병관은 하늘을 움직인다. 둘 다 우리나라 지방관아 중 가장 큰 건물이라는 데, 진남관 기둥은 68개고 세병관 기둥은 50개다. 하지만 세병관은 엄청 큰 현판을 달아서 훨씬 웅장하게 보인다.

세병관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현판 앞에 선다. 어떻게 저렇게 큰 현판을 걸 생각을 했을까? 대단한 기대다. 주변으로 통제영 건물들이 복원이 되었지만 들어가는 문이 없어 담장너머로 기웃거리다 나온다.

통영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동피랑벽화마을로 향한다. 동피랑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힘들다. 동피랑마을 입구 안내판을 잘 찾아야 보인다. 골목길로 들어가는 입구에 따로 안내판이나 조형물을 설치하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동피랑마을은 관광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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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마을 풍경. 많은 사람들이 담장에 그려진 벽화에 즐거워한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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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마을 벽화. 담장에 벽화만 그렸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동피랑은 관광지일까?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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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마을 가장 높은 곳에는 커피쉼터가 있다. ‘GOOD LUCK COFFEE' 한잔 마시며... ⓒ 전용호


많은 사람들이 동피랑마을 골목길로 들어서고 나온다. 골목을 들어서서 모퉁이를 돌아서면 찻집 벽에 동피랑 입구를 알리는 벽화가 그려졌다. 벽화마을 시작이다.

가파르게 올라간다. 아버지는 경사진 길을 무척 힘들게 올라가신다. 다시 모퉁이로 돌아서니 다행히 긴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다. 의자에 앉아서 쉰다. 아버지는 더 이상 올라가기 힘드실 것 같다.

"보고 싶으면 얼른 갔다 와."
"그럼 여기 앉아 계셔요."

좁은 골목 계단을 따라 동피랑마을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커피쉼터라는 간판이 붙었다. '스타벅스'를 닮은 'GOOD LUCK COFFEE'라는 상표를 붙였다. 커피 한잔 마시고 가고 싶은데. 혼자?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다시 내려온다. 사람들은 벽화에 기대어 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골목에 그려진 벽화가 이렇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한 바퀴 돌아서 온 곳에는 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있다.

"여기에 뭐 볼 게 있어?"
"철거가 되려는 마을에 벽화를 그렸는데, 소문이 나고 마을이 보존되고 관광지가 되었대요."

아버지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다. '벽화가 관광지야?'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가파른 길을 내려온다. 여전히 북적거린다. 통영은 아름다운 도시다.
#통영 #케이블카 #미륵산 #세병관 #동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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