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 유세에서 유권자와 지지자들에게 대선승리를 다짐하며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첫째, 박 후보는 닥쳐오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잘 챙기겠다고 한다. 하지만, 박 후보가 과연 민생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혹자의 지적대로 "평생을 제대로 된 직장 한 번 가져본 적이 없이 빼앗은 재산으로 살아 온" 사람이 과연 민생의 애환의 본질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남들은 다 독립해서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헤쳐 나갈 나이에 "살 길이 막막해 아파트 서른 채를 받은" 사람이 과연 젊은이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짐작이나 할까?
박 후보는 민생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경제민주화를 단순히 선거를 위한 광고 카피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필요하면 써먹고, 다 써먹었다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버리는 것을 봐도 박 후보가 민생경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줄·푸·세'가 경제민주화라니, 박 후보가 말하는 민생에서 '민'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재벌과 극소수 부자들, 그리고 부동산 투기꾼들을 말하는 것인가?
둘째, 민생은 잘 못 챙기더라도 닥쳐오는 경제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이 또한 박 후보의 전공은 아닌 것 같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 시절 당이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쓰고 위태로울 때 대표를 맡아 당을 구했고, 괴한의 '면도칼 테러'도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내세우며 자신이 '위기에 강한' 리더임을 과시하는 듯하다. 개인으로서는 자랑할 만한 무용담이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를 덮쳐오고 있는 위기는 '차떼기 위기'도 '칼부림 위기'도 아니다. 박 후보에게는 생소한, 그리고 박 후보가 이해하기에는 좀 어려운 경제위기다.
박 후보의 그동안의 언행이나 발표된 정책을 보면 국가경제위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만큼 박 후보가 경제문제에 대한 이해력이나 경제위기 관리능력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박 후보의 '집걱정 덜기 대책'은, 그중에서도 특히 그 유명한 '목돈 안 드는 전세대책'은, 거짓으로 가득 차있고 실현 가능성도 없는 조롱거리가 됐다. '가계부채대책'은 힘없는 가계보다는 금융기관들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돼 있어 '가계부채'를 위한 대책인지 아니면 '금융기관 먹튀지원'을 위한 대책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그리고 마치 국민들의 세금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위장 재정투입'을 하면서 그것을 해결책이라고 자랑스럽게 국민들에게 내놓는 것을 보면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정직하지 않은 건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금융을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금융문제에 관한 한 박 후보는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않은 것 같다. 심히 우려스럽다. 경제위기의 핵심이 금융문제인데 어찌 박 후보에게 위기관리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셋째, 박 후보는 위기의 본질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에게 닥쳐오는 위기는 단순히 가계부채 위기만도 아니고 글로벌 경기침체 위기만도 아니다. 외교·안보적 위기도 올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위기는 우리 내부의 양극화와 갈등의 위기다. 내외의 위기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증폭되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을 수 있는 위험한 상태다. 박 후보는 위기 마케팅을 하면서 외부에서 거대한 위기가 몰려오고 있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바빴지 내부 위기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가오는 글로벌 경기침체 위기, 그로 인해 한층 더 심각해질 가계부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갈등을 해소하는 국민 대통합이 필요하다. 그러나 박 후보의 소통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다"는 경직되고 신경질적인 사고방식은 여성 대통령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섬세함이나 국민들을 푸근하게 감싸 안는 어머니 같은 따뜻한 마음씨도 아니다. 윤여준 전 장관의 말처럼 박 후보에게는 '국민 통합'이라는 것도 '유신체제 시대의 동원'을 의미하는 데 불과하지 국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한 진정한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민주화, 입맛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넷째, 수첩공주가 '수첩여왕'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박 후보의 정책에 대한 이해력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은 박 후보의 측근이나 새누리당에서도 다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토론을 기피하고 만들어진 연설원고 읽는 것만을 좋아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평가가 과히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경제위기라는 것이 어디 정해진 대본대로만 가나? 그러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각도로 들어가면서 정책입안자들이 만들어온 방안을 평가해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새누리당 내에서도 직언을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고 주변에서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참모가 거의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지금 박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제3공화국이나 전두환의 5공화국 구태 인사들 아닌가.
위기를 맞으면 서민과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위기를 경험하면서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위기극복 방안도 서민·중산층 위주로 만들어야 하고 위기극복 과정에서 세심하게 서민과 중산층을 배려해야 할 텐데, 박 후보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이 또다시 친재벌·친부자 정책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할 테니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다. 외부위기를 극복한다고 내부위기를 더 키우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매우 크다.
다섯째, 그동안 박 후보의 언행을 보면 박 후보가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는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을 하여 비명에 간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박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의 꿈이 민주화이고 복지국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역사를 잊으면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고도 했다.
그러면 과연 박 후보에게 우리의 역사란 무엇인가. 박 후보에게 국가의 미래비전이 '박정희 부활'이라면 박 후보에게 "잊어서는 안 될" 역사란 박정희 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러면 경제위기를 넘어서 끌고 갈 우리나라의 방향은 어디인가. 정말 무섭고 걱정된다. 심적·지적으로 박정희로부터 탯줄을 끊지 못하고 있는 박 후보의 지향점은 자유와 창의가 만발한 민주주의적 자유시장은 아닌 것 같다.
내외의 경제위기를 맞아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이 경제민주화다. 그런데 박 후보는 표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경제민주화를 삼켰다, 내뱉었다 하면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는 얘기고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얘기다.
박 후보에게 경제위기론은 그의 집념이 투여된 선거 상술, 즉 또 다른 정치 광고 카피인 게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단지 광고 카피로만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자칫 우리 경제를 갈등과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정치 슬로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박근혜표 '경제위기관리'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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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후보님, '경제민주화'가 단물 빠진 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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