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학교 2013>은 기간제 교사 정인재(장나라 분)가 담임을 맡은 2학년 2반 학생들을 통해 현 교육현장의 실태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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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살이 흔하게 일어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는 걸 온몸으로 깨닫는 순간, 나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그 아이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중학생 첫째 아이 학교에 공개수업이 있는 날 가서 보면 시장통에 온 듯 학교는 정신이 없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첫째도 그리고 아이 친구들도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선 오로지 공부만으로 평가받고 공부를 잘해야 칭찬받는다.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받는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이 자존감을 잃지 않을 뿐이었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자존삼을 갖기 쉬지 않은 현실이다.
한 겨울밤에 다리 아래에 중학생 아이들이 대여섯 명 모여 종이상자를 깔고 컵라면 먹는 모습을 보며 걱정도 되고 안타까웠다. PC방 노래방 아니면 놀 곳이 없는 아이들. 그나마도 돈이 떨어지면 갈 곳이 없다. 아이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학교는 다양한 아이들이 다닌다.
공부 못하는 아이도 학교가 재밌어야 한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학교에 다닐 재미가 있어야 한다. 학교는 그런 아이들까지도 품어 안아야 한다. 아이들이 적어도 '나는 안 돼. 나는 뭘 해도 절대 안 돼'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각인하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 오로지 공부만으로 평가받는 학력중심의 교육을 바꾼다면 아이들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 그리고 청소년 자살률도 줄어들 것이다.
학력중심의 교육은 사실 학부모들에게도 경제적 고통을 안겨준다.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는 근방의 아이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아이 중 하나란다. 이유인즉, 가장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 적어서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란다. 물론, 아이 친구 엄마가 알려 준 이야기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학습지를 신청해 해 달라고 무척 졸랐다.
물론 요즘도 "엄마, 나도 수학학원이랑 독서논술 학원 보내 줘"하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첫째 학원비와 막내 유치원비와 생활비와 대출금 걱정에 선뜻 수학학원이나 독서논술학원을 보내 주겠다 답을 못하고 있다.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인 나도 적은 월급이라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9년 전, 맞벌이했던 일이 생각나면서 그런 생각들이 싹 날아가 버렸다.
그때, 둘째는 주중엔 친정에서 지냈다. 퇴근길에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 손만 씻고 양말도 벗지 못한 채, 졸려 자려는 아이 깨워가며 급하게 저녁을 차려 주었다. 아이에게 저녁 먹여 재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조바심내던 시간들. 그때는 나이라도 젊었지 지금 다시 돌아가려니 자신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부모로 무력감이 들 때마다 내가 어쩌다가 아이는 셋이나 낳게 되었을까 하는 후회감이 든 적도 솔직히 있었다.
얼마 전엔 연달아서 아동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들 때문에 아름다운 성과 사랑을 가르치기 전에 성폭력에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예방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참담했다. 엄마들은 어느 동네에 몇 명의 아동성폭력범죄자가 사는지 수군거렸다.
몇 해 전 야심차게 시행했던 대책들 '아동 안전지킴이집'이나 '어머니 폴리스' 어느 것 하나도 대책으로 역할을 하는 거 같지 않았다. 사실 뻑 하면 대책이라 내놓는 '엄마를 동원'해서 해결하려는 그런 방식 또한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아동성폭력 사건 예방을 위해 국가나 사회는 어디서 무얼 하는지 보이질 않는다.
결국, 대비책임은 엄마와 개별 가정이 알아서 풀어야 할 문제인 듯 느껴졌다. 새로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새로운 대책들이 나오지만, 과거의 대책으로 보아도 기대감은 생기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겨우 생각해 낸 방법은 아이가 평소 다니는 길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가능한 짧은 거리도 버스를 타고 다니라 일렀고 좁은 길이나 인적이 드문 길로는 다니지 못하게 했다. 조금만 아이가 늦게 와도 걱정이 됐다.
친구들과 한참 놀러 다녀야 할 아이를 집에다 가둬 키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 없을 때 아이들이 '야동'이라도 볼까 무서워 외출 때마다 컴퓨터 마우스를 들고 나갔다.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셋인데 세 아이를 다 쫓아다닐 수도 없기에 무력감이 더 들었다. 사실 아이는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할 존재이다. 사회는 부모와 함께 아이들을 키울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을 나눠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함께 키우고자 하는 사회의 노력을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다.
참 안타까운 뉴스를 종종 접한다. 엄마나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동반 자살하는 사건 등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생각에서 그 부모가 그 엄마가 그런 선택을 하였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부모가 떠난 뒤 성인이 안 된 아이들이 남겨진다면 이 사회에서 어떤 어려움이 겪을지 우리는 어렴풋이 예상한다. 만일 부모가 떠난 뒤에도 사회가 그 아이를 보호하고 보살펴 줄 것이란 확신이 선다면, 떠나기 전에도 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우려 노력했다면 그런 선택을 하는 부모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한 아이를 온전히 키워내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은 더 커졌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나 죽으면 끝인데 사회가 어찌 되는 무슨 상관이야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한 아이를 온전히 키워내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 깊이 공감을 했다. 좋은 기운이 아이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부모의 노력은 무력할 뿐이다.
그러니 부모들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사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데, 우리 사회가 점점 살기 힘든 사회가 되어 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적어도 아이에게 깊은 책임감을 가진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꼭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한 사회를 살게 하기 위해서 소중한 투표권을 버리지 말자. '엄마, 왜 이렇게 이상한 사회에 나를 살게 하는거야!' 하는 원망을 듣지 말기 위해서라도. 내 삶은 길어야 50년이면 끝나겠지만 내 아이들은 삶을 이어갈 것이다. 엄마를 생명줄 삼아 세상에 내려 온 아이들의 삶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어떻게든 지금보단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5년에 겨우 한 번 하늘 문이 열린다. 잠깐 열린 문틈으로 하늘이 우리에게 묻는다. "살 만하냐고? 누굴 원하냐?"고. 놓치지 말고 외치자.
"제발 우리 아이들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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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겨우 열린 하늘 문 "엄마들아,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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