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박근혜 당선자가 얻은 득표율이다.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가 오버랩 되면서 미묘한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문재인을 지지했던 48%. 그들에게 이번 18대 대선은 무능하고 부패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과 정의롭지 못한 과정으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역사인식과 인간적인 감정이 그 출발점이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의는 어떠했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대변되는 불공정과 비상식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었던가. 고위 정치가나 공무원, 재벌들의 죄는 사법부와 대통령의 은혜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생존을 외치는 힘없고 나약한 서민들의 촛불은 명박산성에 갇혀 공권력에 짓밟혔으며 사지로 내몰려 어쩔 수 없이 공장을 검거하고 철탑을 기어올라야 했던 절박한 마음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했다.
국민 상당수의 머리 속엔 정의와 상식보다는 그 과정이 어떠하든, 비리와 부패를 저지르더라도 돈과 권력을 얻으면 성공한 사람이라는 삐뚫어진 생각이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과 그 일직선상에서 지속되어온 군사독재. 그들의 편에 서서 뇌물을 상납하며 승승장구하는 재벌들을 보며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상식과 정의를 위해 싸우다 또는 아무런 이유없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이들을 보며 당시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식인들은 지금의 48%가 느꼈던 절망과 분노를 경험했을 것이며 다수의 서민들은 독재권력의 공포정치에 몸을 움츠리고 권력의 시녀가 된 언론의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권력에 순응하는 것이 선이며 맞서는 것은 악라는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완성했을 것이다.
과정보다는 결과, 나라를 팔아먹고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들이 단죄받기는커녕 오히려 더 잘 사는 세상, 정의 보다는 먹고 사는 일이 더 다급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치관은 무엇이었을까? 그 답이 오늘의 51.6%다.
그 빗나간 역사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아보려했던 사람들의 열망은 48%의 희망사항으로 그치고 말았다. 정의와 상식의 매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예선전에도 출전하지 못했을 선수가 본선까지 올라 우승까지 거머쥐었으니 그 분노와 상실감을 어떻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무거운 감정은 단지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의 낙선 때문만은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과 독재자의 딸에게 합법적인 절차로 다시 힘을 모아준 51.6%에 대한 실망감 이며 대한민국의 의식이 아직도 1960년대에 머물러 있음에 대한 비통함이다.
얼마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계엄군으로 참전해 시민군과 전투를 벌였던 분의 참회록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 역사의 현장에 있었으나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보다도 진실을 몰랐다고 했다. 진실을 알기 전까지 폭도들로 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나서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괴롭다고 했다.
51.6% 박근혜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힘겨운 시대를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어르신들이 있다. 이런 말 하면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너희들이 뭘 안다고 까불어?" 라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그 분들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 보다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 만큼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모른 척 외면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전도 된 가치관으로 인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 시대의 48%가 지지한 것은 문재인이 아니다. 그들은 상식과 정의에 투표한 것이다.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 건강보험 같은 복지 정책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48%에게 더 중요한 가치는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세상이었고 그것이 그들에겐 가장 큰 복지다.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 언론이 자유롭게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세상, 권력도 법 앞에 평등한 세상, 권력이 국민을 사찰하지 않는 세상, 공권력이 권력의 시녀가 되지 않는 세상,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이 마땅히 심판받는 정의사회, 상식과 정의가 상식인 세상, 48%에게 죄가 있다면 너무도 간절히 그것을 염원했다는 것 뿐이다.
선거는 끝났고 이제 냉엄한 현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잠시동안만 마음껏 슬퍼하고 절망하고 분노하자. 그러나 우리의 열정을 되살릴 만큼의 약간의 불씨는 남겨두자. 그 남겨두었던 슬픔과 절망과 분노를 이정표 삼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비추자. 적어도 2명 중 한명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5년 후 48%의 가치가 51%의 가치가 될 수 있도록 전진 또 전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