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던져야 하는 비통한 현실"... 참담한 울산노동계

24일 오후 6시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추모집회

등록 2012.12.24 14:28수정 2012.12.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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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5시 30분 울산 동구 아파트 19층에서 투신 사망한 현대중공업 해고노동자 이운남씨의 소식을 듣고 오후 10시쯤 시신이 영치된 동구 울산대병원 영안실 앞에 지역노동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 박석철


현대중공업 하청 해고노동자 이운남(42)씨가 지난 22일 오후 투신 사망한 후 해당지역인 울산에서는 노동계가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는 등 암울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운남씨가 마지막 남긴 글에서 "무기력한 일상은 심각한 감정의 동요를 가져왔다. 확신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 분명하다"고 했듯, 현재 지역에서 진행 중인 하청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사투에 가까운 몸부림에도 정작 노동자의 도시라는 울산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괴감이 이씨의 투신으로 더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씨의 장례를 지역노동자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24일 오후 6시 그가 안치된 울산대병원 맞은편에 있는 울산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연다.

"생의 마지막을 자결로 항거해야했던 현실이 비통하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운남씨 사망 후 추모성명을 내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이운남 열사의 자결소식에 피눈물이 흐른다"며 "비정규직노동자의 고통을 온몸에 안고 살아온 동지가 생의 마지막을 자결로 항거해야했던 현실이 비통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자본의 살인과 같은 해고를 겪으면서도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바꾸려 앞장섰고, 생계가 막혀 택배노동자로, 택시노동자로 연명할 때도 주변의 동지들을 먼저 생각했다"며 "자본의 폭력경비에 당한 폭행 후유증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늘 하청노조와 지역의 노동자들을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씨가 투신하는 날까지 "폭력을 당하는 모습에 안타깝다"고 했다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도 성명을 내고 "이운남 동지가 괴로워하며 스스로 몸을 던진 것은 여전히 정권과 자본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삶이 동지가 살아왔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가 생전에 무수히 외쳤을 민주노조 사수,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는 더이상 입에서 맴도는 구호가 아니라 온몸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실천해야 할 시대적 숙제"라고 밝혔다.


누가 이운남씨를 투신으로 내몰았나? 

1960년대 말 조선·자동차 공업단지로 지정된 울산에는 이후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며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로 넘쳐났고, 곧 노동자의 도시로 불렸다. 산업역군의 기치아래 어느 업종이던 열악한 노동환경이던 암혹한 시절을 거쳐 노동자들은 1987년 6.10시민항쟁에 고무돼 그해부터 노동자대투쟁을 벌인 후 수없이 해고되고 투옥당했다.

이 같은 노동운동가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후 노동자의 도시 울산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익이 급속도로 향상되어 갔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지난 199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라는 미명아래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한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 빈곤과 열등에 시달려야 했고 그들 속에서는 노조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유니온샵(회사에 입사하면서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되는 제도)제도로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가 막강한 힘을 갖기 시작한 데 반해 하청·비정규직은 노조설립·노동운동=해고와 투옥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들에게는 노동자대투쟁 이후 찾아온 노동의 봄이 더이상 오지 않았다.

하청·비정규직은 따라오는 불이익으로 노조조직율과 노조가입율이 낮았고 그만큼 노동운동가들은 사지로 내몰렸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두 조합원이 두 달 넘게 혹한속에 철탑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대법 판결마저 이뤄지지 않는 것에서 보듯 현재진행형이다.

스스로 19층에서 몸을 던진 이운남씨의 경우도 1997년 현대중공업 하청에 입사한 후 2003년 노조를 만드는데 앞장서면서 하청노동자의 권리향상을 외치다 투옥되고 소외된 단적인 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운남 열사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겪어온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 했다"며 "하청노조가 첫발을 떼었을 때부터 막중한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2004년 2월 14일 '하청노동자도 사람이다. 노동법을 지켜라'고 절규하며 분신했던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온몸으로 껴안았다"며 "박 열사 분신 후 현대중공업 내 크레인에 올라 농성을 했던 것도, 폭력경비의 집단폭행을 연거푸당하면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은 것도 생의 마지막을 자결로 항거해야 했던 비통한 현실 때문"이라고 했다.

이운남씨가 최근까지도 철탑농성장을 찾아 촛불을 들며 응원했던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는 "자본의 가혹한 노동탄압과 비정규직 착취에 죽음으로 항거한 노동 열사들과 동지들의 한 맺힌 절규를 기억할 것"이라며 "온 몸으로 투쟁하는 것이 열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산자들이 짊어 지고가야 할 몫"이라고 애도했다.
#울산 노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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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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