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원 나랏빚 내서 복지? 오만한 점령군 같은 발상"

새누리 '박근혜 예산' 6조원 증액 요구 논란... '재원방안 없는 복지공약 물타기" 비판

등록 2012.12.24 17:03수정 2012.12.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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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줄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서울 관악구 난향동 난곡 사랑의 밥집을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이 이른바 '박근혜표 예산'을 위해 국채 발행 등을 통한 6조 원 예산 증액에 나서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번 대선과 지난 4·11 총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약속한 민생·복지공약 관련 예산을 위해 적자재정 편성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예산안 처리는 12월 말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할 것"이라며 오는 27일 본회의 처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적자예산 편성을 밀어붙이려는 것은 오만한 점령군 같은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는 구체적인 재원 방안 없이 내놨던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 실체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빚을 내서 복지를 하겠다는 것은 국민에 대한 협박이고, 실상 복지공약을 실현하지 않으려는 물타기"라는 지적이다.

이한구 "6조원 국채 발행까지 생각"... 민주 "국가 빚내는 적자 예산 안 돼"

민주당은 24일 이한구 원내대표가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새해 예산을 6조 원 증액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취지가 어떻든 간에 매우 오만한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민주당 예결위 간사인 최재성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브리핑에서 "이한구 원내대표가 6조 원이라는 액수까지 특정해서 국채발행을 해서라도 지출을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발언"이라며 "국가 빚을 져서라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은 점령군과 같은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균형재정은 이명박 정부의 흔들림 없는 기조였고 야당도 이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면서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국가 빚을 져서 내년도 예산 지출을 늘리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언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 의원은 "내년도 경제위기가 예상되는 만큼 실탄을 아껴 경제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면서 "빚을 져서 예산을 짜겠다는 이 원내대표의 얘기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빚은 단 한 푼도 지지 않고 예산을 짤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 달라"고 덧붙였다.


최 의원은 "내년도 예산은 정부 안을 대폭 삭감하고 삭감 폭만큼 필요한 사업을 채워 넣어야 한다"면서 "지출도 합당하게 하고 재정건전성도 유지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내년도 예산안에 관한 주문은 케이블TV 채널수보다 많은 것 같다"고 꼬집은 뒤, "우후죽순 격으로 아무 얘기나 내놓는 것은 책임 있는 집권여당의 모습이 아니다, 국민의 살림살이가 중요한 만큼 정제된 의견을 내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이한구 원내대표는 박근혜 당선인을 뒷받침하기 위해 6조 원 예산 증액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필요할 경우 국채 발행까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6조원 반영은 예산안의 삭감 규모와 상관없이 추진하겠다"며 "국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국채 발행까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당선인 예산'이라고 이름 붙인 예산은 박 당선인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공약한 사업들이다. 저소득층 복지 사각지대 축소(1조1758억 원), 일자리 창출 및 나누기(1조2279억 원), 0~5세 무상보육(6779억 원), 하우스·렌트 푸어 대책을 포함한 부동산시장 정상화(5000억 원), 대학생 반값등록금(1831억 원) 등에서 6조 원가량을 정부 예산안에 신설 또는 증액하겠다는 것이다. 민생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예산안 편성까지 고려하겠다는 게 이 원내대표의 생각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자 이한구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예산안 심의든 법안 심의든 야당과 합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야당이 기어코 안 된다고 하면 무리해서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는 이어 "필요하다면 정부 예산 중 사업을 줄여서 (재원 마련을) 할 수도 있고 야당이 요구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며 "타협해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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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유성호


이명박 정부도 난색... 균형재정 플랜 새로 짜야 하나?

이한구 원내대표는 "내년 예산 감액과 차입을 통해 마련하되 안 되면 국채를 발행하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6조 원 증액의 현실적인 방법이 국채 발행뿐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이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부채가 늘어갈 경우 이명박 정부의 균형재정 달성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342조5000억 원으로 4조8000억 원의 적자 편성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제적 관례를 내세우며 내년 예산안이 '사실상 균형재정'이라고 강조해 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입주식에서 "내년도 예산안은 원안대로 가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이미 확장적 기조 하에서 경기 대응에 최선을 다해서 작성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올해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감액된 금액만큼만 증액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여야는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원안 대비 1조4000억 원가량의 감액에 의견 접근을 본 상태다. 하지만 '박근혜표 예산'으로 정부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여야도 다시 협상을 벌여야 한다. 정부 방침대로 '감액 범위 내에서의 증액'만으로는 '박근혜표 예산' 반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제출 예산안 감액만으로 부족할 경우 결국 이한구 원내대표 발언처럼 국채 발행까지 해야 한다. 국채 발행은 그만큼 국가의 빚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균형재정 플랜을 통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올해 34.0%에서 차차 줄여나가 2015년에는 30% 밑으로 떨어뜨리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박근혜표 예산' 때문에 이 계획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할 판이다.

과거 대선을 치른 해의 예산안 처리는 대부분 선거일 이전에 이뤄졌다. 다만 2007년 17대 대선 때만 당시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을 예산에 반영하자고 주장해서 4천억 원가량을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 신에너지 연구기반 구축 예산 10억 원 신설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계획대로 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이한구 원내대표처럼 예산안도 통과되기 전에 6조 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한 사례는 없었다. 대신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때는 새 정부 출범 후 공약을 총 점검해 취임 1차 연도에 추경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새 사업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 2003년 6월과 10월, 이명박 대통령 때는 2008년 6월 각각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지금은 총체적으로 상황을 재점검하고 재정건전성 같은 것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내년 2분기쯤에나 추경을 편성하는 방안이 더 합리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한구 원내대표는 오히려 복지공약 재원조달을 위한 2013년 추경 편성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추경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다시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지금 단계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내세운 '박근혜표 공약의 신속한 추진' 주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복지공약 재원 방안 있다더니... 결국 국가 빚으로 충당?"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증액해 적자 예산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강조했던 약속과도 위배된다. 박 당선인의 공약은 5년간 131조4천억 원 규모의 재원이 소요된다. 그는 이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 세제 개편과 세입 확충, 복지 행정 개혁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안에 국채 발행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평소 '신뢰'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내세웠던 박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말을 뒤집은 셈이다. 게다가 새 정부 시작부터 빚을 내는 것은 향후 다른 공약 실천을 위해서도 빚을 내는 길을 터주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박 당선인은 대선 후보 TV토론 등에서 정부 씀씀이를 줄이고, 세수 확대를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당선되자마자 국채부터 발행해 재정적자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도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 기간 동안 국민들에게 증세 등의 추가부담 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며 "그런데 재정 개혁 없이 국채를 발행하겠다는 것은 대선 공약을 전면 위반하는 것은 물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은 복지보다 국가가 빚을 지는 것을 더 무서워한다"며 "그럼에도 국채 발행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복지공약을 실현하지 않겠다는 것이거나, 재원 방안이 불투명하고 결함이 있는 자신의 복지공약을 물타기 하기 위한 말 바꾸기가 시작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이미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는데, 너무 일찍 드러났다. 앞으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박근혜 당선인이 직접 말하기 어려우니까, 최고 실세인 이한구 원내대표가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당선인 #이한구 원내대표 #국채 발행 #박근혜표 예산 #박근혜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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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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