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폭군 연산에게 왜 왕관을 씌워줬을까

[서평] 강기희의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 연산>

등록 2012.12.26 09:00수정 2012.12.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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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 표지 ⓒ 화남출판사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 연산>. 강기희 작가가 6년 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다. 제목만 본다면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에게 '대왕'이란 왕관을 씌워주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1494년 19살의 나이로 조선 제10대 왕에 오른 연산은 1506년까지 12년 동안 최고의 권력자였다. 결코 짧지 않은 동안 권력자로 살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권력 이동을 보면 절대로 길지 않은 기간이었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아서 왕위를 물려준 것도 아니었다.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에 의하여 왕위에서 폐위되고 궁에서 쫓겨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태평성대를 누린 권력자는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산은 재위 중 무오사화(1498년), 갑자사화(1506년), 병인사화(1506년)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숙청했고, 그로 인하여 폭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하들에게 존중받지 못한 연산군

폭군 하면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가 떠오르고, 중국의 진시황을 언급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역사에서는 단연 연산군이다. 네로는 자기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진시황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여불위를 죽였다. 다행히 연산군은 죽일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어 패덕을 범하지 않았지만, 19살에 즉위하여 12년 동안 치세하면서 폭정을 펼쳤다.

그런 그를 작가 강기희는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이란 왕관을 씌워 세상에 내놓았다. 왜 그랬을까? 강기희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체 무엇이 연산을 폭군이요 패륜의 왕으로 만들었을까. 그렇게 만든 근원은 다름 아닌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연산군일기>는 역사적 사료라고 믿어도 될 정도로 사실을 기초로 하여 기록된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5쪽)


이 대목에서 필자는 강기희가 무엇을 부정하려고 하는가 의문을 품어보았다. 뒤에 서술하고 있는 내용에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의견을 말한다. 그래서 강기희가 말하는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 연산>을 숨가쁘게 쫓아가봤다. 

조선은 왕과 대신(의정부·육조)을 간쟁하는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가 국정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연산군이 즉위했을 때, 삼사의 위상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 작가 강기희가 부정하는 <연산군일기>를 보면, 연산군이 가장 많이 내뱉은 말 중에 하나가 "능상(凌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윗사람을 능멸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신하들로부터 왕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소설의 시작은 중종반정(1506년, 연산군 12년에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유순정(柳順汀) 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는 시점부터이다. 연산은 이때 덤덤하게 모든 것을 받아드리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서술하고 있다. 다만 안타깝다는 마음을 표현한 장면이 있을 뿐이다.

"저들의 반란을 막아줄 신하가 없단 말인가…."(15쪽)

그리고 연산은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신하들의 입은 늦가을에 부는 바람처럼 차고 맵구나
낮에는 충신인 척하던 신하가 밤이 되면 간신으로 돌변하니
임금도 백성도 깜박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던가!
가을밤 신하들이 반역을 일으켜 임금을 갈아치우려 하니
이제 어느 임금이 백성을 찾을 것이며
이제 어느 신하가 충성을 다 할 것이고!(19쪽)

연산군이 절대 권력으로 실현하고자 한 뜻은 무엇이었을까?

연산군은 재위 중반부터 왕권을 절대화하겠다는 욕망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를 위해 연산이 벌인 것이 무오사화이다. 조선 최초의 사화이다. 왕이 대신들과 함께 삼사를 공격한 사건이었다. 조선시대는 혈연·가문 사회였다. 훈구대신과 사림세력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무오사화는 원로 대신과 젊은 대간 즉, 세대 간 또는 직능 간 대결이었다.

연산군은 무오사화를 계기로 왕권을 강화했지만, 정치적으로 강화된 왕권을 쓴 것이 아니라 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왕권을 사용했다. 주색잡기로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로인하여 결국 무오사화로 앙숙 관계였던 대신과 삼사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연산군은 요즘 말로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대신과 삼사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숙청에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갑자사화가 벌어졌다. 그 사화가 바로 조선 최대의 비극으로 평가되고, 연산군이 폭군이었다는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건이 되었다.

갑자사화는 연산이 친모의 원한을 풀려고 했던 개인의 복수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왕인 성종이 완성한 '경국대전 체제'를 거부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연산의 실정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 결과로 인하여 조선 최초의 반정이 일어났고, 연산이 폐위된 것이다.

그런데 작가 강기희는 이러한 사화 자체를 논하고 있지 않다. 그저 연산의 퇴장을 마치 늦은 가을 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듯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중반부터 어린 폐세자 이황에게로 옮겨지고 있다. 

10살의 어린 폐세자가 정선으로 유배를 떠난다. 여기서 강기희가 왜 연산을 다른 시선으로 보았는지를 어림할 수 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정선 땅으로 유배 오는 어린 폐세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폭군으로 평가받는 연산군을 한 아들의 아버지로 혹은 한 여자의 아들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연산의 폭정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신하로부터 나오는 권력에 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산도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고, 한 아들의 아버지였다

소설의 중간부분부터는 어린 폐세자 이황이 정선을 향해 오는 길이 묘사되고 있다. 그 길에는 정선 출신의 궁녀 기생 홍림이 동행하고, 정선에서는 생원 유길만이 무리를 형성하여 폐세자를 기다리고 있다. 김팔발, 딱새, 낙중, 등등은 그 시대의 민중들이다. 여기에서 작가 강기희의 삶과 강기희가 살아오면서 보아온 시대적 관점이 이 소설에 이입되어 있다.

정선 출신 강기희는 산골 촌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중고를 정선 산촌에서 다녔다. 그런 그가 1980년대 초 춘천의 강원대로 진학하여 도시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을 20대로 살아오면서 그는 나라의 권력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30대가 되어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문학21>로 등단한 강기희는 이듬해 장편소설 <아담과 아담 이브와 이브>를 발표하고, <동강엔 쉬리가 있다>를 연달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장편소설 <은옥이>(1, 2) <도둑고양이>를 발표하고, 2006년 <개 같은 인생들>을 출간한다.

강기희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민중들의 삶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권력 독과점 시대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강기희는 소설을 쓴다. 그런 그가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 연산>을 통해 진정 그려보고자 했던 것은 권력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다.

연산은 왜 강력한 왕권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권력의 실세들과 등을 졌을까. 왜 그는 왕권을 강화해놓고 폭군으로 추락하고 만 것일까. 그것을 강기희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 강기희는 박원종, 유순정, 성희안, 신윤무, 박영문, 그리고 유자광과 같은 권력의 하수인들에 의하여 민중뿐만이 아니라, 권력자들도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연산의 어머니가 폐비가 되었고, 사약을 먹어야 했던 것과 아들인 이황이 폐세자가 되어 집에서 쫓겨나야 했던 상황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그 장면을 통해 작가는 한 어머니의 아들이고, 한 어린이의 아버지인 연산의 인간적 내면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정선 생원 유길만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산촌에 촌부로 살아가면서 자기 집 노비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한 것도, 딱새나 김팔발 같은 인물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이물 없이 지내는 것도 인간의 평등을 말하는 대목이다.

소설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 연산>은 민중 소설을 쓰는 작가 강기희의 작품이다. 그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평등을 원하는 민중들의 삶이고 간절함이다. 권력자들의 처세에 따라 상처받는 민중들의 마음을 다독여 줄 수 있는 권력자를 말하는 소설이다.

시대를 바꿔야 하는 대한민국의 지금, 권력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권력이 민중으로의 이동이 시대를 바꾸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강기희는 소설 <연산>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덧붙이는 글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 연산> 강기희 씀, 화남출판사 펴냄, 2012년 12월, 389쪽, 1만2000원

연산 - 대왕을 꿈꾼 조선의 왕

강기희 지음,
화남출판사, 2012


#강기희 #연산 #장편소설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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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아재양념닭갈비를 가공 판매하는 소설 쓰는 노동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서로가 신뢰하는 대한민국의 본래 모습을 찾는데, 미력이나마 보태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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