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맛, '금상 고로케' 고맙다

[일본 가는길 88] 규슈 유후인(由布院) 맛집 기행

등록 2012.12.27 14:50수정 2012.12.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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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정감 어린 유후인(由布院)의 한 료칸에서부터 나는 아내와 함께 오늘의 유후인 여행을 시작했다. 역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유후인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섰다. 건물의 그림까지 상세하게 그려진 아주 유용한 지도다. 우리는 료칸 앞으로 난 길을 따라서 쭉 걸어갔다. 유후인은 천천히 걸어서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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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다케 유후인의 논 뒤로 장엄한 능선이 우뚝 솟아 있다. ⓒ 노시경


유후인은 해발고도가 꽤 높은 분지이지만 마을 뒤편으로 꽤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추수가 끝나 벼의 누런 밑둥만 남은 논 뒤로 유후다케(由布丘)의 높은 능선이 전혀 가림 없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유후다케는 우리나라의 여러 산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능선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 부근은 우뚝 솟아있지만 산의 아랫자락은 풍만하게 아래로 퍼져 나가고 있다.


롤 케이크는 이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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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상가 입구 유후인의 거리에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이어진다. ⓒ 노시경


작은 개천을 지나자 유후인 역 앞에서 이어지는 대로로 접어들게 되었다. 온천마을 길가의 가게들은 모두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계속 걷다보니 조그만 삼거리 갈림길이 나오고 삼거리 한 중앙에 그 이름 유명한 롤 케이크 집, '비-스피크(B-Speak)'가 나타났다.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작은 사이즈의 롤 케이크는 다 팔리고 없다고 소문난 곳이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가게 안에서는 주인 아저씨가 일을 보고 있었지만 내부가 보이는 냉장고 안에는 불길하게도 롤 케이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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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피크 유후인에서 롤케이크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 노시경


오후 시간에 왔으니 소문대로 롤 케이크는 남아 있는 게 없겠지만 이해가 되는 듯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 가게 주인의 전략이다. 오후 늦은 시간에는 롤 케이크를 사러 온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을 이 가게의 주인도 알 것이지만 그는 항상 정해진 양만의 롤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명품 케이크를 위한 가게 주인의 장인 정신이 빚어낸 결과이든지 아니면 오전에 고객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주인 아저씨는 친절했지만 판매용 케이크는 없고 견본용으로 정갈하게 포장된 케이크를 보면서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게 밖으로 나와 다른 명품가게를 찾아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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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리노 모리 미야자키 하야호 대감독의 캐릭터들이 잔뜩 모여 있다. ⓒ 노시경


유후인의 거리를 걸어 올라가면 정성을 기울여 만든 작은 가게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비-스피크'에서 긴린코 호수까지 이어지는 상점가인 '유노쓰보카이도(湯の坪 街道)'는 새로 문을 연 테마파크의 상점가보다도 더 정갈하게 정리된 상점가이다. 도토리의 숲이라는 뜻의 '동구리노 모리(どんぐりの 森)' 가게 안으로 수많은 여행객들이 들어가고 또 나가고 있다. 가게 입구에 세워진 토토루는 우리를 애니메이션의 세계 속으로 인도한다. 가게 안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이끄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창조해낸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나 어릴 적 즐겨본 <미래소년 코난>을 만든 대감독이다. 내 마음 속 미래소년 코난은 바다를 가로질러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상상속의 소년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세계는 그 후에도 계속 극장에 내걸렸다. 그가 만들어낸 토토루, 센과 치히로, 포뇨, 고양이 버스, 까만 고양이 지지가 인형이 되어 이 가게의 판매대 위에 앉아 있다. 그의 애니메이션 마니아라면 이 가게는 장이 뒤집힐만한 곳이다. 나는 강한 호기심으로 둘러보았지만 그저 눈구경을 즐겼다.


몇 십년만에 다시 만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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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고로케 일본의 고로케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차지한 고로케를 팔고 있다. ⓒ 노시경


사실 이곳 유후인의 가게 중에서 나의 호기심을 가장 불러일으키고 있는 곳은 바로 다음 블록에 자리잡고 있는 '금상(金賞) 고로케' 가게이다. 가게 이름이 '금상'인 이유는 일본의 고로케 경연대회에서 이 가게가 고로케를 가장 잘 만드는 가게로 금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게의 간판 아래에는 이 가게가 일본의 수많은 TV에서 방영되었음을 알리는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이곳은 많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전통과 스토리를 가진 맛집인 것이다. 가게 앞에는 이 가게의 명성을 확인하려는 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고로케'는 '크로켓(croquette)'의 일본식 이름이지만 이미 '고로케'가 우리말 같은 외래어가 되었고 '고로케'는 요새도 우리나라 빵집에서 가장 흔한 친근한 빵이다. 이 가게에서 파는 고로케의 종류에는 그라탕 고로케, 치즈 고로케, 새우 칠리 고로케가 있다. 고로케는 종류마다 사진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에 한국어로도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일본어 다음으로 외국어 중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어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이 가게의 고로케를 사는 사람들이 일본인 다음으로 한국인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고로케를 사자마자 가게 옆의 벤치에 앉아서 고로케를 꺼냈다. 과연 얼마나 맛있는지 조금씩 입 속에 넣었다. 튀긴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고로케가 따끈따끈했다. 고로케는 따뜻할 때 먹어야 더 맛있는 법이라서 따끈한 입속의 고로케는 아주 감칠맛이 났다. 종이 봉지에 자랑스럽게 '골드(Gold)'라고 적힌 금상 고로케는 가장 유명세를 치르는 고로케이다. 금상 고로케는 빵이 바삭바삭하고 소고기와 감자, 양파가 잘 버무러져 입속에서 살살 녹는다.

어릴 적 언젠가 먹어보았던 맛이다. 언제였을까? 나 아주 어릴 적 동네 빵집의 고로케를 먹으며 느꼈던 그 맛을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났다. 맛이라는게 묘했다. 수십년간 맛보지 못했던 고로케의 속맛을 나의 미각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 고로케 맛이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이곳 유후인에서는 과거의 맛을 전통처럼 계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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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고로케 치즈 맛이 진동할 정도로 치즈 맛이 강하다. ⓒ 노시경


치즈 고로케는 이름대로 빵 속에 부드러운 치즈가 가득 들어 있다. 치즈 맛이 달달하게 진동할 정도로 치즈 맛이 진하다. 치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맛이 느끼하다고 할 것이고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치즈 고로케를 이 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고로케로 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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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인 거리 유노쓰보카이도를 따라 맛집들이 가득 차 있다. ⓒ 노시경


나는 아내와 소풍 나온 기분으로 유후인의 여러 가게와 맛집을 섭렵했다. 다이어트에 열중하고 있는 나의 음식 조심은 유후인에서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길을 걷다보니 유후인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계란을 이용하여 케이크와 과자를 만든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가게가 있다. 이 가게 '고에몬(五衛門)'은 생크림 롤 케이크, 치즈 케이크와 푸딩 등을 만들어 파는데 팥 대신 부드러운 치즈가 들어간 퓨전 만두인 '치즈 만주(饅頭)'를 개발한 가게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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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에몬 생크림 롤케이크와 치즈 만주로 유명한 곳이다. ⓒ 노시경


나는 가게 앞을 도배하다시피 사진 광고를 하고 있는 생크림 롤케이크를 맛보기로 했다. 롤 케이크 한 개를 사서 다 먹으려니 너무 커 보인다. 이미 고로케 3개를 즐겼고 앞으로도 유후인의 맛집은 계속 이어지기에 롤 케이크 한 조각만 사서 아내와 나누어 먹기로 했다. 우리는 가게 안에서 피곤해진 다리를 쉬면서 생크림이 듬뿍 들어간 롤 케이크를 즐겼다. 이 롤케이크 맛의 핵심은 생크림인데 생크림이 질릴 정도로 달지도 않고 방금 전에 만든 듯이 신선하다. 유후인의 생크림 롤케이크는 계속 먹으면 중독될 것 같은 달콤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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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크림 롤케이크 케이크 안에 가득한 치즈가 방금 전에 만든 듯이 신선하다. ⓒ 노시경


벌꿀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한 '비 허니(Bee Honey)'는 긴린코(金鱗湖) 호수 가까기에 자리하고 있다. '유노쓰보카이도'를 따라 걷다보니 자연스럽게 '비 허니'를 만나게 된다. 푸른 파스텔 톤의 지붕과 작은 발코니에 노란 벌이 그려진 간판이 예쁘다. 통통한 노란 벌꿀이 그려서 있어서 왠지 자연 친화적이고 맛있는 가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담한 가게는 바로 뒤 우뚝 솟은 유후다케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주변의 가게와는 달리 서양식 가옥 형태로 만들어져서 유독 눈에 띈다.

가게 안에는 다양한 벌꿀이 선물용으로 포장되어 여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카시아 꿀, 마누카 꿀 등 다양한 꿀 제품의 꿀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다. 벌꿀 커피, 벌꿀을 바른 벨기에 와플 등 벌꿀을 이용한 다양한 스위츠가 있다. 나는 벌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알았다.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맛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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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허니 벌꿀을 바른 아이스크림이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 노시경


벌꿀이 들어간 이 가게의 아이스크림은 유후인의 수없이 많은 아이스크림 중 최고로 쳐주는 아이스크림이다. 아내와 벌꿀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서 가게 앞의 벤치에 앉아 맛을 음미했다. 벌꿀 아이스크림은 감촉이 더 단단한데 꿀이 담뿍 담겨 있어서 입안 가득히 달달한 벌꿀의 맛이 퍼진다. 아이스크림에 벌꿀만을 첨가한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로 소문난 가게가 되었으니 이 가게의 마케팅 전략도 대성공인 듯하다.

가게 바로 앞에서 열심히 벌꿀 아이스크림을 먹는 우리를 본 여행자들이 아이스크림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평일 오후시간이라 손님이 많지 않던 가게에 우리 뒤로 여러 여행자들이 계속 가게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가게 앞에서 모델이 되어주며 본의 아니게 가게 호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 동안의 시간에 이 아이스크림 가게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가게로 변해버렸다.

많은 손님들은 이 가게에서 꿀의 달콤함 속에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유후인은 대규모 숙박시설을 짓지 않고 안락한 료칸으로만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성공한 온천도시이다. 그리고 유후인은 맛집 가게마다 집중하여 성공한 아이템 먹거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많은 여행객들이 맛집에서 장인정신으로 만든 먹거리를 먹으며 그 가게의 열정과 스토리에 공감하고 있었다.

유후인은 금상 고로케, 생크림 롤 케이크, 치즈 만주, 벌꿀 아이스크림으로 승부하여 많은 여행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었다. 마을의 특산물에 집중하고 특산물에 관련된 이야기를 잘 전개하는 것이 여행객을 불러 모으는 지름길일 것이다.

나는 벌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 작은 도시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농촌의 앞길에도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는 2012년 10월15일~10월18일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보냅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일본여행 #규슈 #유후인 #금상 고로케 #비 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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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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