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박근혜 자본주의', 경제 위기 극복할까?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밀고 가는 것이 위기대책

등록 2012.12.28 16:00수정 2012.12.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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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할 나이에 퇴출시키는 이런 고용 형태는 앞으로 자제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기업은 글로벌 해외 기업을 상대로 경쟁해야지 중소기업, 골목상인의 삶의 영역을 뺏으면 안 된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저는 오래전부터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저의 중요한 경제 정책의 기조로 삼아왔다."

박근혜 당선자가 투표 이후 사실상 첫 공식 외부행사로서 지난 26일 재계와 회동에서 한 말이다. 5년 전 이명박 당선자가 친기업(business friendly) 정책을 공공연하게 내세우며 재계를 격려했던 것과는 적어도 겉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앞으로 구체화될 박근혜 경제를 예상해볼 수 있는 하나의 암시를 주고 있다.

허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수년간 힘겹게 싸워온 노동자들이 연이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처절한 상황에 대해 박근혜 당선자는 전혀 반응이 없다. 박 당선자에게 투표하지 않은 48%에게는 삶의 끈을 놓아버릴 정도의 좌절을 안겨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데, 100%국민행복을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당선자에게 이들은 보이지 않나 보다. 이것 또한 박근혜 경제를 예상하게 하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이명박 경제와 또 다른 박근혜 경제

박근혜 경제정책에서 공식적인 표현과 정책 실행의 불일치, 앞과 뒤의 부조화, 억압과 시혜의 인위적 조합과 같은 모습이 나타날 개연성이 상당히 커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선명하게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당당하게 내걸고 당선되었고, 그 이후에도 그대로 실천에 옮겼던 이명박 정부와 여러모로 비교된다. 정책적 선택의 결과가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는 컸지만, 적어도 이명박 정부는 어떤 정책적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없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도 2009년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바꼈다. 2008년 촛불시위와 경제위기의 여파에 따라 '중도 실용', '공정사회'를 거쳐 '상생과 동반성장'으로 수렴했다. 그러나 국정 운영 구호가 바뀌는 와중에서도 대형할인마트의 골목상권 진출은 계속되었고 한미 FTA도 통과되었으며 인천공항과 KTX 등을 포함하여 공기업 민영화 시도 역시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경제는 정책 구호와 실행 내용이 따로 노는 수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경제 정책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경제 가치와 철학, 정책기조 그리고 개별적 정책들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체계와 논리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실체와 원칙이 불분명한 자본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정책의 불명료성이라는 큰 위험을 내재한 박근혜 경제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장기침체 터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경제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 될 더욱 중요한 압박 요인은 경제 환경이 더욱 변해가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가 6년이 경과 됨에 따라 회복에 대한 기대보다는 비관적 전망이 더 굳어지고 있고, 특히 국내 내수 동력은 거의 소진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이명박 경제정책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조기에 파산선고가 내려지고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음도 일찍 판명되면서 '중도실용' '동반성장'으로 구호를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초기 재정투입으로 2010년 6%가 넘는 성장을 일시적으로 회복했고 '중국효과(China Effect)'에 힘입어 수출이 그럭저럭 유지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기보다는 나은 여건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좀 다르다. 이미 예견된 장기침체가 변수가 아니라 거의 상수로 기다리고 있다. 장기화되는 유럽이 특히 그렇다. 연말까지 재정절벽위험 회피를 위해 씨름하는 미국도 크게 낫지 않다. 일본까지 포함하여 선진국 전체가 여전히 중앙은행의 계속되는 양적완화로 버티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영향은 중국 경제에도 이미 전달되고 있고 더 이상 이전 같은 '중국효과'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가계부채 대책, 새 정부의 첫 번째 시험대 될 것

국내경제 여건은 더욱 쉽지 않다. 현재의 소득 분배구조로는 1% 수준으로 바닥을 기고 있는 민간소비가 살아날 수 없다. 소득이 억제되는데 가계부채가 본격적으로 민간 소비에 제약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채를 끌어들여 소비를 촉진시키는 경향보다 부채 상환으로 소비가 억제되는 측면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저소득층, 50대 자영업자, 하우스푸어 등 부채 취약계층에서의 가계부채 부실화 위험 증가는 박근혜 정부 첫 해의 중대한 경제 위기관리 대상이고, 첫 경제정책 능력 시험대가 될 것이다. 18조 원 국민 행복기금을 조성해서 320만 채무자의 부채 탕감을 하겠다든지 지분매입 방식의 하우스푸어 대책을 세우겠다는 식의 급조된 공약들로 인해 첫 단추부터 위기관리가 쉽지 않다.

자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이미 풀릴 만한 규제는 다 풀렸음에도 부동산 가격과 거래는 더 하강하고 있다. 금융대출 여력도 확대 여지가 적고, 수도권 중심으로 여전히 미분양 아파트가 늘고 있으며, 소득에 비해 아직도 주택가격은 높다. 이러한 대내외 여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경제 민주화와 보편 복지가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것은 시효가 만료된 신자유주의 경제를 대체하는 구조개혁의 시점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만약 구조개혁 없이 위기관리를 할 경우, 노동자나 서민들의 저항이 거셀 것이고 이를 힘으로 억누를 경우 사회적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다.

박근혜 당선자의 대표적 경제 공약은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공약은 앞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우선 경제민주화를 살펴보자. 박근혜 당선자는 11월 중순 경제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최종 발표했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이 제안한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 빠진 상태였다. 이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제기된다. 하나는 재벌의 권력 남용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 권력 구조에 대한 규제 없이 사후적인 결과로 나타는 행위규제만 하려한다는 점이다. 문제의 원인을 통제하지 않고 결과만 쫓아 다니며 잡겠다는 점이 비판 대상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구조개혁 필요... 경제민주화 실현될 수 있을까?


둘째는 주요 정책에서 구체적 실행방안을 의도적으로 회피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확대와 골목상권 보호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실효성을 제고하겠다고만 했지 시민사회단체 주장처럼 특별법을 만들겠다든지 하는 것은 없다. 골목상권 보호도 마찬가지다. 아직 서울 마포 합정동 홈플러스 입점 같이 대도시 할인마트 입점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고, 일요 휴무제 문제도 해결이 안 되었다. 그런 참에 중소도시 입점 규제 등에 국한된 대책 한 두 가지가 박근혜 골목상권 공약의 거의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총수범죄 형량강화와 전속 고발권 폐지, 징벌적 손해 배상제 확대,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한도 축소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사실 경제민주화에 관해 약속한 것이 별로 없다. 박근혜 당선자는 1970년대를 회상하면서 대기업에게 '자제하라'고 얘기하면 재벌들이 알아서 처신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지금 정치와 재계의 역학관계가 1970년대와는 전혀 다르다. 재계가 대통령을 포함하여 정치권의 요구를 순순히 따라주는 시대가 아니다.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야 겨우 조금 움직이는 정도이다.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 약속을 신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다.

더 나아가서 새누리당 강령에서도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 민주화 실현"이라고 표현된 것처럼, '시장 경제의 틀 내에서'라는 절대적 제약조건을 태생적으로 걸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재벌체제의 개혁이나,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와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권한과 협상력을 높여주려는 방향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다못해 '사회적 경제 확대'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지평을 넓히겠다는 공약도 없다. 결국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경제민주화를 지켜가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민주화 공약과 함께 박근혜 당선인이 내세운 중요한 경제 공약이 '창조경제 스마트 뉴딜'이라는 엄청난 개념 조합의 성장정책, 일자리 정책이다. 이를 위한 7대 전략으로 ▲ 국민행복 기술을 전 산업에 적용하여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 ▲ 소프트웨어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 ▲ 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통해 창조 정부 만들기 ▲ 창업국가 코리아 만들기, 대학을 창업기지로 만들기 ▲ 스펙초월 채용시스템 만들기 ▲ 청년들의 해외취업기회 확대 ▲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제시했다.

그런데 사실 7대 과제 중에 앞의 네 가지는 IT산업에 대한 일상적인 정부지원 전략, 즉 IT산업 정책이고, 다섯번째와 여섯번째는 이명박 정부시기에도 등장했던 청년 취업대책 메뉴들의 일부이다. 마지막은 모든 후보들이 얘기했던 과기부 또는 정보통신부 부활이다.

창조경제란 결국 1990년대 IT 산업? 창업은 청년실업 대책 아냐

아무리 요즈음 스마트 기기가 유행이라지만 IT산업을 다시 중심육성 산업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상당히 새삼스럽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 동안 우리 산업의 무게 중심은 일련의 변화를 겪어왔다. 그런데 1990년대 말 IT산업 → 2000년대 금융 산업 → 2008년 녹색 에너지 산업 → 2013년 다시 IT산업으로 산업 정책의 중심이 회귀하는 좀 당황스런 산업정책이다.

미국이 애플과 구글을 선두기업으로 하여 정보통신분야에서 여전히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미국경제가 살아나고 있나? 소프트웨어 기반이 거의 없는 삼성이 의외로 스마트폰 하드웨어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더욱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금 한국경제를 회복시켜주고 일자리를 확충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 뉴딜이나 정보통신과 여타 산업의 융합, 창업환경 개선 등은 삼성경제 연구소에서 다루는 주제들이지, 국가경영 정책으로 제시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당초 성장전략의 차원으로 볼 수 없는 일개 IT산업 정책이지만, 이를 일자리 정책의 측면에서 보아도 나을 것이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은 위험하기조차 하다. 일자리 정책이 7대 전략 곳곳에 산만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대표적인 문제 두 가지만 확인해 보자. 우선 박근혜 후보는 '스마트 뉴딜'이란 정책에서 정보통신 기술과 여타 기술의 융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근무형태가 가능하고, 다양한 고용형태가 가능한 스마트워크(smart work)를 범국가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한다. 더욱이 "전 공무원과 전체 근로자가 대거 스마트 워크에 동참하여 업무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유형의 '유연형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또 다시 청년들에게 창업을 장려하는 정책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는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 박근혜 후보는 또 다시 요즘 유행하는 K-pop 개념을 차용해서 K-move를 하겠단다. 딱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글로벌 인재 양성'을 이름만 바꾼 것처럼 보인다. '글로벌 인재 양성'은 3년 동안 776억 원이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중동 건설인력 파견 등 2000여 명 등 실제 글로벌 인재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직종인 경우가 다수였다. 동시에 취업만이 아니라 인턴 등까지 모두 포함하여 1만 5천 명의 취업실적이 있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동아일보는 절반이 부풀려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요약하면 결국, 박근혜 당선자의 '창조경제론'은 젊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용' 선거공약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실제 불황국면에서 경제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가고 고용확대까지 기대하기에는 어림없이 부실한 정책이다. 따라서 단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박근혜 경제의 성장 전략은 다시 백지 상태로 돌아간다. 이미 실패로 공인된 이명박 정부의 '낙수 효과'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을 것이 아닌가? 초기에는 당연히 정부재정 자극정책에 의존하려 하겠지만 재정정책이 경제 체질개혁을 동반하지 않는 한 한계가 있을 것이고, 또한 증세를 기피하려는 박근혜 당선자의 조세정책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보수 정권 시즌 2' 미래는 불안하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 침체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운용을 해야 하는 박근혜 경제는 당장 가계부채 등 경제위기관리 요구부터 시험대에 오른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정확한 원인 진단아래 일관성 있게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경제정책은 가치와 철학 - 정책기조 - 개별 정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체계와 원칙이 보이지 않는다. 원칙이 불분명한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실행되는 경제 정책 방향과 내용의 불확실성은 그래서 또 다른 한국경제의 위험요소다.

만약 박근혜 정권이 대선에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경제 민주화와 보편 복지 그리고 노동권 회복'이라는 과제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면서 난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면 어렵지만 앞으로 5년 경제를 전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박근혜 당선자와 새누리당의 뿌리를 바꾸는 작업이다. 뿌리가 아닌 곁가지 수준에서 박근혜 정부가 경제개혁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진보세력이 진정한 개혁으로 압박해나가야 한다. 나아가 이제까지 매우 기초적 수준에서 제시된 '경제 민주화와 보편 복지 그리고 노동권 회복'의 과제와 범위를 확장시켜나가면서 진보 개혁 비전의 전망과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근혜노믹스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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