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찬사를 보낸 제자에게 보답하는 길

언제나 멋지고 훌륭하고 존경 받는 교사 되겠습니다

등록 2012.12.28 19:35수정 2012.12.2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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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가명)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입니다. 나와는 1학기 때에 방과후학교 수업으로 만났습니다. 정규수업이 끝난 다음에 하는 방과후학교는 희망하는 학생들이 두 과목을 선택해서 번갈아 가며 수업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정규수업이 아닌 방과후학교에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영수를 만났지만 듬직한 그의 모습과 행동이 눈에 띄어 가끔 수업 전후에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공부는 별로 잘하지 못하지만 단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수업을 들어주어 늘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성탄절인 지난 12월 25일 오후에 길고도 긴 문자를 하나 보내주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박영수입니다. 올해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내년에도 언제나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주시고 지금처럼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비록 방과후수업만 가르쳐주셨지만 저에겐 언제나 멋지고 훌륭하시고 존경 받고 싶은 선생님이십니다. 오늘은 7년만의 화이트크리스마스이라고 하네요. 오늘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 드시며 행복하고 따뜻한 하루가 되길 기원합니다. 선생님 내년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사랑합니다. ♥
- 2012년 12월 25일 박영수 올림 - "

세상에 정규수업도 아닌 방과후학교 수업만 한 학기 동안 들은 학생이 이런 문자를 보내다니요.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에 대해서 영수가 너무나 극찬해서 얼마나 행복감에 젖어들었는지 모릅니다. 그의 마음씨가 하염없이 고마웠습니다.

나는 영수가 이런 문자를 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와 늘 좋은 관계로만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수가 나한테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 문자를 보낸 것은 지난 5월 1일입니다.

"선생님 늦은 시간이 돼서야 감사 인사드립니다. 약 2개월 동안 선생님께 국어를 배우면서 참 보람과 행복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처럼 정열적이고 따스하고 힘찬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국어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향긋한 4월 잘 마무리하시고 5월 맞으시길 바랍니다.
-박영수 올림 - "

이때가 방과후학교 1차가 끝난 날입니다. 그는 겨우 13시간 가량 수업을 받았을 뿐인데 이런 문자를 보내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곧 그는 2차 방과후학교도 내 수업을 신청했는데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두 번째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문자는 아쉽게도 지워졌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 곧 스승의 날입니다. 선생님께 저의 담임선생님처럼 감사의 카네이션을 드리겠습니다. 비록 선생님은 저의 담임선생님은 아니시지만 저에게 있어서 제2의 담임선생님이시니까요. 선생님 열심히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성실하게 공부하겠습니다."

제2의 담임선생님이라! 이 구절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주위에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마치 선물을 받고 여기저기 자랑하는 어린 아이처럼 짓궂게도 영수의 담임선생님한테 그 문자를 보여줬습니다. 평소에 허물없이 나와 지내는 그 선생님도 그 문자를 보며 흐뭇해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수는 카네이션을 선물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무엇인가 바빠서 깜빡 잊었다는 것이었습니다. 2차 방과후학교가 7월 초까지 이어졌는데 1차와 마찬가지로 영수는 맨 앞자리에 앉아서 나름대로 나의 설명을 잘 듣고 문제도 곧잘 풀었습니다.

그러다 뜻하지 않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1학기 말에 영수의 친구인 우리 반 현세(가명)가 저녁밥을 신청했는데 나중에 해약하기 위해 왔습니다. 점심밥을 지원받는 아이인데 저녁도 지원받는 줄 아는 영수의 말만 듣고 신청했던 것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신청은 간단하지만 해약은 서류를 작성하고 몇 군데 다니면서 서명도 받아야 되기에 퍽 귀찮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현세를 야단쳤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당연히 담임에게 와서 잘 알아보고 해야 되는 게 아니냐며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런 잘못된 정보를 알려줘서 일을 그르치게 만든 영수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아, 악몽의 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나의 추악한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날을 말입니다. 영수는 그날 나에게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꾸중을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교사 휴게실에게 나는 그에게 있는 말 없는 말 할 것 없이 모질게 야단을 쳤습니다. 왜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며 세차게 몰아붙였습니다. 그는 잘못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해약하는 절차에 따라서 서류 작성하고 몇 군데 다니면서 서명 받으면 아무 문제없이 끝나는 것을 나를 조금 귀찮게 했다 해서 현세를, 영수를 그토록 심하게 질책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평소의 모습과는 판이한 돌변한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당황했던 그의 얼굴 표정이 생각납니다.

그날 밤의 일입니다. 영수는 나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그는 피눈물을 흘린 사연을 나에게 들려줬습니다. 이것도 지워졌는데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선생님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께 꾸중을 듣고 화장실에 가서 울었습니다. 선생님을 많이 실망시켜 드려서 저절로 눈물이 쉬지 않고 나왔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 문자를 보고 나는 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뉘우쳤습니다. 그 일은 누가 봐도 그렇게 학생들을 호되게 야단칠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현세도 영수도 평상시에 말썽 피우지 않고 착실하게 학교생활하는 학생들인데 그렇게 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 교무실에서 영수를 몇 번 봤습니다. 언제가 그에게 그 일을 회상하면서 내가 지나쳤다는 말을 지나가는 말로 가볍게 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보통 때의 표정 그대로 아니라고, 자기가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2학기 때는 그가 다른 과목을 신청해서 나를 방과후학교 시간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영수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난 성탄절에 이렇게 기나긴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나는 그 일이 일어나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나를 잘 따랐던 영수도 이제는 나를 떠날 것이라고 말입니다. 좋은 선생님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그런 속 좁고 성 잘 내는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많이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된 학생인가요? 밸도 없는 학생인가요? 사소한 것 갖고 자기에게 그렇게 심하게 호통을 친 나에게 성탄 축하 문자를 보내다니요?

그런 영수에게 배웁니다. 54세 선생님이 17세 제자에게 배웁니다. 그리고 그에게 보답하는 길을 찾습니다. 정말로 언제나 멋지고 훌륭하고 존경을 받는 선생님이 되는 길이 그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내년에는 그의 말대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올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고 학생들을 따뜻하게 사랑할 때에 비로소 영수 앞에 조금이라도 떳떳하게 설 수 있을 겁니다.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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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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