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이 성당에서 왜 통곡했을까요?

새해에는 이 땅이 진짜로 사람 사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등록 2012.12.31 18:23수정 2012.12.3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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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저녁 서울 정동에서 언론 관련 강의를 듣고 오후 9시 넘어서 귀가하게 됐습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전철을 타는데 대한문 앞에 눈에 낯익은 천막들이 보여서 그리로 잠깐 가 봤습니다. 지난 여름과 가을에 몇 차례 그곳에서 열린 쌍용차·용산참사·강정마을과 관련된 모임과 콘서트 등에 참가했는데, 그 당시보다 천막이 더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날은 대한문 바로 앞 천막이 시작되는 쪽에 대선이 끝난 직후 귀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추모제가 적혀있는 알림판이 놓여있었습니다. 대선 결과에 절망해서, 더 이상 현재의 살벌한 노동 현실을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그들은 안타깝게도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후 이 땅의 노동자들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잃는 사건이 줄을 이어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지난 29일 <한겨레>에 인천의 한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는 신부의 글 한 편이 실렸는데, 그것이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 신부는 김포에서 사제생활을 했는데, 성탄을 맞이해서 성당 안에 구유를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성당 마당에 짚단과 나무를 이용해서 조그만 간이 판잣집을 만들었습니다. 반짝이지 않고 좀 거칠게 보였지만 예수 아기는 이런 곳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처음으로 그렇게 만들어봤답니다.

아기 예수와 그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도 조각품이 아니라 교우 가운데 갓 태어난 아기와 그의 부모를 찾아 부탁해서 정말 실감나게 예수 성탄의 의미를 교우들 모두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거룩한 성탄 미사가 끝났지만 그 판잣집은 교우들이 성탄의 참뜻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얼마동안 그냥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뜻하지 않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노숙자가 헌 이불을 두르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노숙자인데, 그는 그곳에 석유난로와 냄비, 양재기 등을 갖다놓고 있었는데, 거기서 있게 해달라고 신부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는 노숙자의 말을 듣고 그것은 말이 안 된다면 음성 꽃동네에 연락을 해서 그를 데려가게 했습니다. 꽃동네는 전국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침식을 제공하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간 그 노숙자는 얼마가 지난 다음에 또 그 헛간으로 왔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그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신부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고 화재 위험도 높기 때문에 다시 그에게 잘 설명하고 꽃동네에 보냈습니다.

신부는 꽃동네로 그를 보내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뿌듯하고 흐뭇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신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번에는 그의 짐을 다 싸서 헛간 밖으로 내놓고 나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가 이곳을 떠나 어디를 간다 하더라도 이 헛간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축 처진 상태로 그곳을 떠나갔습니다.

그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요? 신부는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됐을까요? 그가 그 헛간을 떠난 지 며칠 후에 그의 시체가 언 상태로 동네에 있는 농수로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신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그 신부는 통곡했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살면서 쏟은 눈물보다도 몇 배는 더 흘렸을 겁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그곳에 살겠다는 사람을 잘한답시고 내쫓아 결국은 얼어  죽게 만들었다고 그 신부는 참회의 눈물을 쏟고 또 쏟았을 겁니다.

자신이 겪은 20년 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신부는 지금의 현실을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습니다. 성탄이 되면 구세주가 기쁘게 오셨다며 큰 소리로 노래하는데, 온갖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꾸민 구유 앞에서 성가정 조각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데 과연 현실이 그렇게 기뻐할 상황이냐며 우리들에게 맹성을 촉구했습니다.

20여 년 전 농수로에서 얼어 죽은 노숙자 앞에서 통곡했던 그 신부는 지금까지 노동과 환경,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깊이 관여하면서 민중들의 아픈 현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꼭 그 사건만은 아니겠지만 그 일이 그에게 그러한 일을 하는 데에 틀림없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말대로 지난 성탄 때에도 아니 올해 마지막 날인 오늘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부당한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이 엄동설한에 그 높은 철탑에 올라가서 제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8일인가요, 나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한광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 위원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노동자 자살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당선인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노동자와 함께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집회에 참가해 봤지만 노동자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여당에서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언급도 하지 않았기에 나는 나의 귀를 의심했던 것입니다. 정말인가요? 그의 말대로 박근혜 당선인이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했으면 다 된 것 아닌가요?

이 춥고도 추운 한겨울에 대한문 앞에 죽 줄지어 쳐져있는 천막들의 주인공들, 그리고 높은 철탑이나 옥상에 올라가서 눈보라를 직접 맞으며 기약 없는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 불행하게도 쌍용에서 23명이나 죽어나갔는데도 여전히 죽음을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이름 모를 노동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다 같이 살자고, 정리해고 없이 마음 편안하게 살게 해달라고, 어떤 것이라도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여당이 달라질 거라고 감히 믿어봅니다. 아니 반드시 과거와 달라졌다고, 이제는 노동자의 적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벗이 될 거라고 믿어봅니다. 언젠가 박근혜 당선인이 텔레비전 연설에서 말한 바와 같이 10명 되는 식구들에게 배고프지 않게 하면서 골고루 사랑을 주는 어머니의 자비로운 모습을 이번에는 꼭 보여줄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이번에 발생한 일련의 노동자 자살 사건이 자신과 자신이 속해 있는 여당이 노동 문제에 관한 한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변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유명한 정치가인 간디가 말한 바와 같이 국민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할 수 있겠지요? 절망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지요?

이제 하루가 지나면 2013년 새해입니다. 매년 새해를 맞이하면 모두가 복을 많이 받고 건강하게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덕담을 주고받지요. 새해에 우리는 과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그런 덕담을 형식적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을 담아서 나눌 수가 있을까요? 철탑 위에서 노동자들이 환한 얼굴로 내려와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안기고, 더 이상의 자살 행렬이 일어나지 않고, 농성 중인 크고 작은 천막들이 즐거운 휘파람 속에서 거두어지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새해 2013년에 그런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이 진짜로 사람 사는 곳이라고 누구나 다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랍니다.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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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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