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는 딸에게

등록 2013.01.14 15:03수정 2013.01.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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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춥던 날씨가 오늘은 많이 풀렸구나. 이 풀린 날씨 속에서 너의 지나온 길을 유추해보고 아빠는 잠깐 행복에 젖는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의 긴 터널을 지나온 뒤 밝은 햇볕을 맞이한 너, 학교 공부가 모두 입시에 맞추어져 힘들다며 부모에게 호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잖니. 하지만 네게 주어진 좋지 않은 조건을 뛰어 넘어 네가 바라던 대학 학과에 당당히 입학하게 된 지금 겨울 혹한 뒤에 찾아온 포근한 날씨와 어두침침한 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한 뒤 맞는 햇볕을 네게 견주어 보는 것이 내겐 무척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대학 진학은 작은 매듭 하나를 짓는 것과 같다. 어떻게 보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요즘 교육이라는 것이 '온전한 인간(全人)'을 기르는데 있다기보다 '기능인'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비판이 있다. 아빠도 일정 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따라서 제도라는 형식이 변화되어야 교육의 실제 내용도 바뀔 수 있을 텐데, 그것을 기대하기엔 현실이 너무 난망(難望)하기만 하구나. 너도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드셨다. 다른 사람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희생시키고 혼자만 살아남는 제도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짐승들의 세계에서나 필요한 생태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렇다고 해서 네가 제도에 그리고 사회에 쉽게 동화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사랑을 나누며, 내 것 양보하며, 약한 사람 손잡아 주고, 이웃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자에 '역린(逆鱗)'이라는 말이 있는데, 세상에 돋아난 거꾸로 된 수염을 건드려서라도 세태에 저항하는 몸짓이 요구된다. 나는 감히 나의 딸인 너에게 이런 몸짓을 기대한다. 삿된 것이 아무리 큰 힘을 행세한다고 해도 생명력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이다. 반면 진리와 정의는 처음엔 미미하나 끝내는 창대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막 대학 신입생이 될 너에게 너무 큰 것을 요구한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빠는 너를 알기 때문에 이런 주문을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그것도 농촌 목회를 하는 가난한 부모 밑에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작은 목표를 달성해낸 너이기 때문에 주문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다. 아빠는 한 때 네가 큰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세상을 호령하며 대중의 조명을 한 몸에 받는 그런 위인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세상 보통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지는 바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난 사람'보다는 속이 꽉 찬, 그래서 주위에 말없이 선한 영향을 주는 '된 사람'이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크리스천이 아니니. 난세엔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 큰 위로가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되잖아. 예수님의 삶이 '난 사람'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철저히 '된 사람'의 삶을 살고 가셨잖아. 당시 서기관과 율법학자를 비롯한 바리새파 사람들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주류 계층을 이루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었지. 그들에겐 율법이 곧 지배 수단이자 통치 장치였고 나아가 생명과도 같았어.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주류 집단의 바람을 저버리고 복음과 사랑으로 낮은 자를 찾아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일 거야. 편한 삶을 거부하고 가시밭길을 스스로 택하신 예수님의 생애.

사랑하는 나의 딸아, 아빠는 앞에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을 했다.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가 너를 책임지는 보호자였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면 성인 대우를 받게 된다. 기분 좋아할지 모르지만 성인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아니 삶의 전반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유가 많아지는 만큼 책임의 양도 비례해서 많아진다고 보면 된다. 이런 점이 자칫 매사에 지나치게 신중한 소인배를 만들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가능한 덜 수고하고, 덜 희생하며, 덜 손해 보는 삶에 젖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젊음은 그렇게 안주하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현실에 안주한 사람이 아니라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나아가 인류 공영을 위해서.


여러 모로 어려운 조건을 안고 있는 너에게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닐 줄 안다. 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염려하지 않는다. 너의 곧은 정신과 불타는 열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 진리 위에 바로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빤 너의 대학 생활에 대해 큰 걱정하지 않고, 네가 '난 사람'이 아닌 '된 사람'으로 나아가는 데 몇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딸에 대한 조언이기도 하고, 너와 같은 또래 젊은이들에게 주는 권면이기도 하다. 절대 진리의 관점이 아닌 조언과 권면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참고해 주면 좋겠다.

첫째, 바른 역사의식을 갖기를 바란다. 역사는 지나온 과거를 반추해서 정리하는 일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역사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모든 것을 현실에 맞추어 살아가기 쉽다. 시각이 그만큼 제한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시키지도 못하고 역사 속의 자아를 발견해 내지도 못한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도 사회와 역사와 동떨어진 자기 자신 중심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역사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는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민족 공동체 나아가 인류 공영과 연결지어 생각하고 살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을 넓디넓은 세계까지 고려하면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지.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겠지. 전문가 수준의 깊이 있는 역사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한국사와 세계사 개론서 정도는 꿰뚫고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읽고 있다는 것은 나를 역사의 수레에 동승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이 역사 속의 한 인자(因子)로서의 그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 역사는 많은 시행착오의 산지식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역사에 정통한 사람은 모든 것을 역사에서 배우기 때문에 실수와 착오가 줄어들게 된다. 역사에 기초해서 글을 쓰면 무궁무진한 소재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게도 된다. 역사를 읽되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보는 눈, 즉 사관(史觀)이 될 텐데 이 정도 되면 자신이 인생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둘째,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21세기를 정보화 시대라고 말한다. 정보화 시대는 사이버 시대와도 일맥상통한다. 인터넷이 세계를 점령해 나가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다보니 모든 것이 시각(視覺)에 집중되어 있다. 시각과 사고(思考)는 각기 다른 특장들을 가지고 있다. 시각이 찰나적(刹那的)이라면 사고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고, 시각이 화려하다면 이성(理性)에 기초하는 사고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정보화 시대 사이버의 강한 영향 아래 있는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나 찰나적이고 감각적이다. 너무 외모 지향적이다. 물론 자라나는 젊은이들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 사회가 이런 풍조를 부추기는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아빠는 네가 이런 외형적인 것보다는 내면을 채우는데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런 점에서 권하고 싶은 것이 고전을 읽는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은 교양의 보고이다. '고전'이 왜 좋으냐 하면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검증을 받고 영향을 주어온 책이기 때문이다. 고전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같은 감동을 사람들에게 준다.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고전 읽기는 당위의 말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조건이 전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 시절엔 시간을 잘만 배분한다면 고전을 독파할 시간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는 대학생들에겐 고등학문을 접한 사람다운 말들이 입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의 입에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이야기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고, TV 연속극 이야기가 주 대화거리가 된다면 국가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없을 것이다. 대학생의 입에서는 문사철(文史哲)에 대한 이야기에 민족과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말이 나와야 하며, 이 사회의 약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의 일단이 토로되고 함께 할 마음이 일어야 정상이다.

셋째,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다. 지구촌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세계는 좁아졌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와도 옆집에서 통화하는 것처럼 소통할 수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어느 곳, 누구와도 의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각국의 나랏말을 모두 할 수 있으면 그것같이 좋은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만국 공통어로 통하는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그것이다. 이 영어는 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용될 수 있는 언어이다. 대학생 시절에 이 영어를 확실히 마스터해 두면 앞으로의 삶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글로벌 인재는 영어를 얼마나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욱이 너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기로 했으니 더 그러할 것이다. 시각디자인은 만국 공통 학문이다. 학문의 선진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세계 광고계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 영어 공부는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영어 교육이 독해와 문법 중심이었다.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요즘은 회화의 비중이 커졌다고 하나 아직도 부족하다. 회화를 중심으로 열심히 익히되 토익과 토플도 일정 수준의 성적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영어는 네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꼭 필요한 생활 도구이니 익히는 데 게으르지 않기 바란다.

넷째, 늘 이웃을 생각하는 삶을 준비하기 바란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만 아는 시대이다. 이웃 사람이 죽든 살든 신경 끄고 자기 목적지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19세기 근대자본주의가 한창 발흥(發興))할 때 성행했던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다시 도래했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문제,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의 위기감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가 오늘의 한국 사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상아탑으로 일컫는 대학에도 그대로 흘러들어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친구'의 관점보다는 '경쟁자'의 관계로 인식되는 현상이 팽배해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공부한 것을 친구들과 공유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네가 가진 것을 친구들과 맘껏 나누는 딸이 되기를 바란다. 자기 것을 나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혼자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눈다는 것은 경쟁에 뒤쳐지기를 자원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라고 염려들을 한다. 그렇더라도 너는 네 것을 친구들과 맘껏 나누기를 바란다. 이럴 때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분은 자기 목숨까지 죄인들을 위해 내놓으시고 십자가 죽음을 택하신 것을 네가 잘 알 것이다. 판단이 서지 않을 때에는, 이럴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를 묻고 처신한다면 선한 판단이 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주문하자. 건강이다. 육신적 건강은 정신적 건강과 영적 건강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일정 시간을 할애해서 스포츠를 즐긴다면 그것같이 좋을 수 없겠지만, 아빠의 경험 상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가능한 웬만한 거리는 걷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전문가들에 의해면 걷기보다 좋은 운동도 없다고 하더구나. 대학 들어가면 새로운 친구들이 생길 것인데, 마음을 같이 하는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서 이런 약속(웬만한 거리는 걷기로 하기)을 하고 함께 실천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런 일상적 생활에서의 운동 그룹도 사랑을 나누고 인정을 주고받는 사회관계의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네가 가는 곳마다 너로 인해서 모임이 활성화되고 사랑이 넘쳐나며 젊음의 끼를 맘껏 발휘해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네 것을 많이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가진 너이니만큼 돈으로 베풀 수는 없을 터인데, 대신 마음으로, 지식으로, 사랑으로, 신뢰로,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풍성하게 베푸는 네가 되면 좋겠다.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뛰어 갈 때,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나의 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딸에게 주는 편지 #대학 신입생 #더불어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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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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