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들은 걸까요? 나귀가 웃었습니다

호랑이 '크레인'이 떠난 동물원 드림랜드...그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등록 2013.01.16 19:02수정 2013.01.16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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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크레인(호랑이)'이 떠난 이후 드림랜드를 방문했습니다. 남아있는 동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크레인은 사실 운이 좋은 편입니다. 동물권에 호의적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있을 테니까…. 크레인이 어찌 지내는지도 궁금하지만, 서울대공원은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고 서울시에서 예산을 받아 운영하니 나름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이제 먹을 것 걱정, 아파도 치료받지 못할까 걱정 이런 것은 덜었죠. 사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남아 있는 동물들입니다(관련기사: '목줄' 잡고 울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시장에서 사과와 고구마를 사서 깨끗이 씻었습니다. 그리고 드림랜드에 남은 동물들을 위해 동물원측에 전달했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원은 이제까지 수십 번 방문했지만, 가장 조심해야 하는 행동 중 하나가 관람객이 함부로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먹이는 반드시 전문사육사가 줘야 하고, 적정한 양과 영양분을 계산해서 일정한 시간에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음식 때문에 허다하게 장염에 걸립니다. 요즘 먹이를 직접 주는 이른바 페팅주(petting zoo)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먹이 급여량에 제한이 없어 사실상 동물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행위입니다.

나귀가 세 번이나 운 사연은?

1월 초 드림랜드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준 당근을 나귀가 잘 먹길래 사육사에게 당근을 주어도 되는지 사전에 여쭤보았습니다. 당근을 준비해 나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데 나귀가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드림랜드를 세 번째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나귀가 서럽고 슬퍼서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오늘(15일)은 다가설 때 한 번, 당근을 하나 먹고 두 번 나귀가 있던 곳에서 떨어져 사슴이 있는 우리로 가고 나서 한 번 더 저를 쳐다보며 냈습니다. 마치 '조금만 더 있다가 가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나는 사슴 우리에 있다가 뒤돌아서 다시 한번 나귀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처음으로 나귀와 눈을 마주친 날. 나귀는 이날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어떤 현장을 가든 동물들이 처한 환경을 조사하러 갈 때, 나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동물과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감정의 소통이 시작되면 서로 애정을 주고받게 되고 그 이후 이별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죠. 내가 다녔던 현장은 대부분 동물이 행복하게 사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프거나 병들거나 외롭거나 버려졌거나 죽음이 임박한 동물들.


아마 많은 사람이 저를 처음 봤을 때 오해했을 것입니다. 동물보호활동가라는 여자가 사진만 몇 장 '띡띡' 찍고 휑하니 가더라. 그러나 슬픈 감정에 휩싸여 중요한 일을 망치지 않으려는 나만의 노력이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슬프고 괴로운 감정에 잠겨버리면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상황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동물을 위한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고, 사람이 변화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감정에만 빠진 사람처럼 보여서는 제대로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노에 휩쓸리지 말자.' '냉정해지자.' 혼자 수십 번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우곤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고, 동물은 동물들만의 고유의 소통방식이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나 표현 방식을 섣불리 인간 중심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되지만, 느낌상 나귀가 매우 격한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세 번째 정도 갔을 때 눈도 서로 마주치고 말도 걸기 시작했을 때였으니까….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 이후 내가 나귀에게 주로 했던 말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안녕 나귀야~너 너무 이쁘구나. 발 좀 봐. 너무 귀여워~' 나는 만날 때마다 나귀에게 인사하고 이쁘다고 칭찬해주었더랬죠.

나귀가 웃는 표정을 발견했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나귀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귀가 울음소리를 내는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다. 나귀는 밥이나 던져주면 그만인 짐승이 아니라 외로움도 느끼고 무언가 표현하고 싶어하고…. 당근을 먹을 때 살짝 웃는 표정, 나만 느꼈던 것일까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부모는 매일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누굴 닮아 이렇게 못생겼니? 넌 잘하는 게 도대체 뭐니?"

또 다른 아이가 있습니다. 그 부모는 반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공부는 별로지만 운동을 잘하잖니. 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야."

아이들은 서로 어떻게 다르게 자랄까요. 못생기고 몸이 약해 천덕꾸러기처럼 지방동물원으로 오게 된 크레인. 그러나 그 크레인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크레인입니다. 그동안 동물원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 중 어딜 가든 흔해 빠진 나귀에게 예쁘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라고 말해 준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나귀라는 종은 값도 싸고 별 볼일도 없어 상업적으로는 가치 없는 동물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드림랜드에 오늘을 사는 나귀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나귀입니다.

소통의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동물과 인간도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합니다. 서로 언어는 다르지만, 상대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내는 소리, 표정, 행동을 보면 됩니다. 감정의 교류란 수치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계산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열린 마음.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 생깁니다. 아마 드림랜드에 남은 동물들은 말을 못하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도 소중한 존재예요. 존중해 주세요" 외모도 별 볼 일 없고 이제 경제적으로 쇠퇴해지고 사람들도 거의 찾지 않는 곳에 사는 존재감없는 존재지만,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보일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일인지를.

되도록 자주 이제 드림랜드를 방문하고 동물들을 살필 생각인데, 벌써 걱정이 앞섭니다. 자꾸 만나다 보면 정이 들 것이고, 2015년 드림랜드가 문을 닫고 나서 동물들이 이곳 저곳으로 떠나고 나면 그 이별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유럽불곰은 현재 드림랜드가 소유권을 포기한 상태, 입양할 곳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드림랜드는 2015년 강원도와의 계약이 완료되면 운영을 접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 이후 동물들이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으나 되도록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살피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이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조롱하고 놀림감, 놀잇감으로 삼기에는 너무 놀랍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동물원을 대하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

동물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동물원 자체에 매우 분노했습니다. 지금도 원칙적으로 동물원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동물원을 방문하다 보니 그 과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과 어쩌면 동물원이 없는 세상은 우리 머릿속의 이상형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생태계는 계속 파괴되고 있고 멸종위기 동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잘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곳은 동물원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 동물원은 이런 역할보다는 외래종을 데려와 전시하는 역할에 더 치중하고 있습니다.

몸에 녹조가 낀 북극곰. 북극곰은 우리나라의 기후환경에서 살아가기 매우 힘든 동물입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원을 운영하거나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어느 정도 동물에 애정이 있다고 느낍니다. 크레인이 떠나던 날, 크레인이 들어간 상자를 착잡하게 바라보던 사육사 아저씨의 표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의견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마 앞으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논의하며 좀 더 나은 방향을 향해 가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전 세계의 다양한 기후, 생태조건에서 살던 동물을 한곳에 몰아넣고 전시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상업성도 있고 동물복지도 챙기는 방안은 현실에서 불가능합니다. 동물들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 더욱 발전하게 된다면 이 상업적 요소는 점점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짚조차 깔려있지 않은 돼지의 우리. 이는 당시 현장에서 동물원측에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한 동물체험관의 개구리잡기 체험장, 아이들의 뜰채에 밀려 개구리를 이리 쫒기고 저리 쫒기고 뜰채위에서 떨어지지 쉽상입니다. 동물체험관은 동물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자리잡게 하는 역효과를 냅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원이 상업적인 요소만 발전하면 관람객의 흥미를 끌기위한 동물쇼가 성행합니다. 동물쇼에 동원되는 동물의 사육조건은 일반적으로 훨씬 열악합니다. ⓒ 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원 동물은 과연 행복할까?'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을 타는 사자를 보면서, 끊임없이 고개를 흔들고 우리 안을 왔다갔다 서성이는 동물을 보면서 무엇을 배울까. 그런 동물을 보는 우리는 진정 행복한 것일까? 라고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저는 아직도 2005년 환경연합 친구들과 생태공원에서 야생조류를 보면서 한 시간 가량 걸어 발견했던 딱따구리를 기억합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만 원, 이만 원 같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만 주면 쉽게 구경하고 만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주 오랜 시간 땀과 노력을 바쳐서 얻게 되는 경이로운 기쁨 같은 것이라고,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시민들이 드림랜드의 동물들에게 과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덕분에 겨울 내내 동물들의 먹이걱정은 없게 되었습니다. ⓒ 고형주


#동물원 #동물복지 #드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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