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청와대 비서실 개편안에 대한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차기 정부의 청와대 구성에 대해 '2실 9수석 체제'로 2실은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며 비서실 산하 9개 수석이 구성된다고 발표했다.
유성호
어떤 단어에 담긴 일상적인 뜻을 지우고 자유롭게 다른 의미를 부여해 표현하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릅니다. 21일은 줄창 '불통' 인수위의 '입'으로 불리던 윤창중 대변인이 '시인'으로 거듭난 날이었습니다. 그는 이날 백브리핑에서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에게 '문학적' 답변으로 일관하며 허탈함을 자아냈습니다.
윤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25일부터 시작될 9일간의 현장방문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9개의 분과위가 각각 하루씩 정해 전방 부대도 가고, 재래시장도 가고, 중소기업도 가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올리는 보고에 반영한다는 내용입니다.
꼼꼼한 면이 돋보이는 행보입니다. 취지도 바람직합니다. 정부부처들이 보고를 올리면서 빠뜨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현장 방문은 박 당선인이 대선기간 내내 매우 중요하게 챙겼던 일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예년에 비해 출범도 늦고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의 인선도 늦은 편인 18대 인수위에서 기획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일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직접 방문의 효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재래시장이나 중소기업은 일정 목록에 버젓이 올라있는 반면, MB정부 내내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였던 4대강 현장은 빠져 있었습니다. 바쁜 인수위원들이 촘촘한 인수위 일정 중에 딱 한 번 가는 현장방문인데 말이지요.
기자들은 백브리핑 시간이 되자 여느 때처럼 윤 대변인을 둘러싸고는 이 지점에 의문을 쏟아냈습니다. 시간도 없는 인수위가 도대체 왜 현장 방문을 가는 것이며, 어떤 실익을 기대하느냐는 게 공통된 질문의 내용이었습니다. 방문일정 중에 금융시장 관련한 현장이 전무하다며 '금융계 홀대론'을 펴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윤 대변인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기자들의 '우려'를 모두 일축했습니다. 그는 일단 "시간이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저희는 '정립된 시스템(구조)'을 마련해서 굉장히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정에 쫓길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항상 그렇듯 그는 이날도 '정립된 시스템'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며 여운을 더했습니다.
4대강 문제에 대해서는 "인수위는 (4대강에 대해서) 노코멘트(의견없음)"라고 강조했습니다. "원래 인수위는 (전 정부의) 하자를 발견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일관된 '전 정부 프렌들리' 기조입니다. 그는 현장 방문이 내실이 있느냐는 '돌직구' 질문에는 "(기자들이) 내실이 없다고 하면 할 수 없는데 나름대로 내실을 기했다"면서 '배짱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윤창중이 언급한 '떡볶이', '오뎅'은 누구?호쾌하게 이어지던 백브리핑은 윤 대변인의 이 답변부터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소통의 '수챗구멍'을 틀어막은 단어는 '내실'이었습니다. 대변인은 인수위원들의 현장 방문이 '내실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기자들은 그의 말만 들어서는 도대체, 뭐가, 어떻게, 어디에 내실이 있는지에 대해 이해를 못했던 것입니다. '내실'의 내용을 묻는 기자들에게 윤 대변인이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며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윤 대변인이 말하는 '내실'과 기자들의 '내실'은 매우 달라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게 왜 의문이 돼?"라고 도리어 반문을 던졌습니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믿음이 안 가는 오빠의 '오빠 믿지?'를 연상시키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그 탓에 '현장에 굳이 인수위원들이 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재래시장 가는 것은 보여주기 식 행정 아닌가' 등등 비슷한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금융연수원 매점에서 윤 대변인이 '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백브리핑을 진행한 탓인지 기자들의 질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윤 대변인도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단어 세계'를 몰라주는 기자들에게 "저희들이 내실있게 재래시장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프로시져(순서)를 만들고 있다"면서 "가서 뭐 떡볶이 먹고 이런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떡볶이 오뎅, 어묵 이런 거 먹고 뭐 사고 이런 게 아니다"라며 "두고 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한 기자들을 두고 "그만 가야한다"고 일어서는 그에게 한 기자가 문득 생각난 듯이 '이날의 질문'이라 할 만한 물음을 던졌습니다.
"'떡볶이'와 '오뎅'은 특정인을 지칭하시는 건가요?"윤 대변인의 '내심'을 담은 생생한 '시적 표현' 전문을 아래에 덧붙입니다. 그의 진위가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래도 '박근혜 인수위'가 재래시장과 각 분야 현장에 가서 뭘 하는지 확인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인수위 일정과는 달리 현장 방문은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가 허용될 예정입니다.
'현장 방문 내실있나' 질문에... "없다고 하면 할 수 없고""(백브리핑 장소 도착, 윤창중) 다 오셨어요? 마감시간 문제없나?"
- 석간 마감시간 때문에 (브리핑 시간을) 20분 땡겨주신 거예요? "석간에서도 좀 땡기라고 했는데 사실은 보면 알지만 내가 막 적어서 온거거든요."
- 1인 취재?(웃음) "그 말을… (기자들이 보도할 때) 뒤집어서 하기 때문에… 괜찮으면 월요일이고 하니까 커피나 한잔 합시다. 갑시다.(이동)"
(커피숍에서 윤창중) "오늘은 미디어 지원실 사람은 아무도 없어? 미디어 지원실에서 왜 대변인을 지원 안 해?"
- 저기 내려오네요. "(윤창중 직원실 직원에게) 커피 좀 시켜. 아 계산을 먼저 해야 나온다고 했지. 내가 후배들한테 커피 한잔 못 사겠어? 뭘 지갑까지 쳐다봐."
- (기자) 안 쳐다봤어요. - (카페 주인 윤창중에게) 한잔 먼저 드릴까요? "아. 제가 대변인인 걸 아시나요?"
- (카페 주인) 인사가 늦었나요? "허허허허. 반만 주세요. 연하게.(자리로 감)
- 4대강 관련해서 아까 인수위가 관련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진영 부위원장은 인수위에서 자세히 살펴볼 거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인수위는 4대강 문제에 대해서 어떤 입장 갖고 계신거에요?"인수위는 4대강에 대해서 노코멘트예요."
- 그런데 저번에 정부하고 감사원쪽 입장이 틀리니까 그 두개를 감안해서 잘 해보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현장방문 일정에도 없고 인수위쪽에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면…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정부쪽 입장에 손을 들어준 거라고 보면 되는지? "그것도 관련없어요."
- 전문가가 4대강에 가서 보고 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인수위에 4대강 관련 전문가가 없으니까 전문가가 보고오면 그걸 보고받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아… 그것은 아니에요. 사실이 아니에요. 네. 인수위가 뭐 4대강에 누구 보내고 이런 일 없어요. 보낼 계획도 없고"
- (인수위가 4대강 문제를) 소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럼 인수위원들과 다 협의해서 정하신건가요? "그럼 뭐 대변인이 안정했는데 대변인을 대변하겠어요?"
- 그럼 언제쯤 결정하신거에요? "우리는 처음부터. 왜냐하면 인수위 본래의 역할은 어… 업무보고 받을 때 제가 몇가지 자세와 원칙을 얘기했잖아요. 하자를 발견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스탠스가 있으니까. 아 커피 안 마셔? 이 실장. 커피 안 나왔어?(실장 : 나오고 있습니다.)"
- 행안부에서 보고 받으셨다고 했잖아요. 지난번에 받으신 걸로 아는데 또 추가 보고 받으신 거예요? "그것도 제가 얘기했잖아요. 보고를 받았는데 우리가 궁금한 부분이 있다. 더 받고 싶으니까 추가적으로 좀 더 말해달라."
- 어떤 점이 궁금해서 추가로 받으셨는지. "그것은 거기뿐만 아니라 다른 데도 계속 할 거예요. 분석을 하면서도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면 이제 행정부에 물어보는 거죠. 보고라는 형식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의견 청취하고 그런 게 아니겠어요?"
- 당선인에게 1차 보고는 이미 하셨다고? "아니에요."
- 아니에요? 전혀 보고 안 됐어요? 그럼 앞으로 언제쯤 보고하나요?"당선인과는 여러가지 어… 수단과 방법으로 충분히 보고드릴 건 보고드리고."
- 종합해서 보고해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런 단계는 아직 안왔죠. 여러분들이 뭐 23일이라고 쓴 거 있던데. 처음에 어디서 나갔죠? 23일.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여러분이 제가 말씀드리지 않은 것을 보도하지 않을 경우는 반드시 오보가 되게 노력하겠다고. 하하(웃음)"
- 그래서 총리 후보자도 어제 말씀 안하신 거예요? "아니. 하하하하(웃음) 그건 아니고."
- 행안부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총리 후보랑 조직개편해서 이번주 내로 잡혀있는데 그게 넘어갔잖아요. (예년에 비해 인수위 일정이) 늦어졌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늦어진 이유가 뭔가요?"제가 또 여러분들한테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건 행안부가 5년 전 인수위의 스케줄을 감안해서 그런 날짜들을 그쪽에서 한 것이지 여기에 영향을 줄지 안 줄지는 사안에 따라 다르다고 했잖아요."
- 5년 전이나 지금이나 2월 25일에 대통령 취임식 하는 건 똑같잖아요. 그럼 역산을 해보면 스케줄이 같을 수밖에 없는데 지금 스케줄과 5년 전 스케줄의 차이는 뭔가요. "저희는 스케줄이… 제가 계속 시스템(구조), 프로세스(과정) 얘기를 하는 이유가. 민주주의 강점이 시스템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거든. 일부에서 시간이 없다. 뭐뭐. 일정에 쫓긴다 썼던데 절대 쫓기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시스템을 마련해서 그대로 움직이면 굉장히 안정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 국회 통과 일정을 5년 전보다 짧게 가져갈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 이런 말씀이십니까? "음. 그것은 유추해석이고."
- 다른 게 없잖습니까. 시스템대로 처리한다고 해도 (총리 인선이) 결국 국회를 거쳐야 하는 거잖아요. 행안부에서는 그 기간을 보름 정도로 잡아서 이렇게 한 건데 지금 말씀은 그걸 땡길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땡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예컨대 뭐… 인선의 경우도 조각의 경우도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잖아요 며칠부터 며칠까지 필요한 기간이 있잖아요. 그거에 맞게 우리는 하는 거니까 일정에 쫓길 이유가 없어요. 그것은 행안부의 자체 생각이고 우리로서는 또… 어떤 정립된 시스템에 따라서 움직이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