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이 영화 본 걸 후회했습니다

소방관 가족이 본 영화 <타워>

등록 2013.01.24 15:27수정 2013.01.2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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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워> 포스터 ⓒ CJ E&M


[기사 수정 : 25일 오전 10시 10분]


영화 <타워>를 봤다. 영화를 본 지 좀 지난 상태에서 영화평을 쓰려니 조금은 난감하기도 하다. 22일 현재 <타워>는 관객 500만을 넘긴 만큼 지금 이야기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를 보게 된 사연이 있다. <타워>는 사실 남편과 아들과 함께 온 가족이 본 첫 영화다. 이상하게도 우리 가족은 영화관에 다 함께 간 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다. 아이들 아빠가 <타워>에 나오는 강영기(설경구 분)처럼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본 첫 영화

늘 어둡고 컴컴한 곳에서 일하는 남편의 직업 때문일까? 남편과 함께 살면서 난 그가 영화관같은 어두운 곳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나 역시 특별히 남편에게 영화관에 가자고 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신 우리 가족은 늘 밝고 공기가 맑은 곳을 찾아다녔다. 산이나 물이 있는 곳을 그래도 자주 가려고 했던 이유는 행여 전날 당직근무를 하면서 숨막히는 화재현장 속에서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남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불이 꺼지고 2시간 가까이 어두운 곳에서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극장은 남편이 지친 업무를 마치고 피로를 풀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 탓에 늘 마음과 몸을 맑게 해줄 환한 햇살과 바람이 있는 곳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으로 함께 가족과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설렘 때문인지, 기분좋게 영화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남편과 내가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난 영화였던 <해운대>에서 봤던 스케일보다 훨씬 커진 압도적인 영상에 눈이 휘둥그레지다가도 직업정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남편과 나는 열심히 타워를 무너뜨린 화재 원인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적 본 영화 <타워링>에서의 화재원인이 설계와는 달리 값싼 전기배선을 사용해서 비롯된 전기과열로 시작된 것이었다면, 영화 <타워>는 강풍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소방헬기를 띄워 소방헬기가 건물에 부딪히면서 생긴 화재였다. 설상가상으로 스프링클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까지 했다. 소방가족이기 때문에 그런지 화재원인에 유달리 눈에 띄었다.

화면을 압도하는 생생한 화재현장과 화려한 CG장면을 보면서 우리 영화가 참 많이 발전했구나라고 한편으로 느끼면서도, 영화관에 있던 사람들이 숨죽일 정도로 몰입하게 한 화재장면이 계속될수록 남편에게 영화를 괜히 보러 오자고 했구나라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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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워>의 한 장면. 고층 빌딩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뛰어든 소방대원들. ⓒ CJ E&M


영화 속에서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화재현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강영기 소방대장의 모습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그 모습이 왠지 내 옆에서 점점 심각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 같기도 하고, 또한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 아빠 없이 보내는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거 같아서, 영화에 대한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다.

비번날도 포기하고 모처럼 아내와의 크리스마스 데이트도 포기한 채 불길을 잡느라 동분서주하는 것도 모자라 타워스카이의 화재로 인한 주변으로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건물폭파까지 담당하는 강영기 소방대장의 모습이 영화의 감동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눈에 보이는 설정임을 알면서도 영화를 보는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부인에게 평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전화를 끊고 '꺼이꺼이' 우는 배우 설경구씨가 너무 연기를 잘해서였을까 아니면 16년을 함께 산 아내인 나에게조차 화재진압의 아찔한 순간들을 털어놓지 못하고 또다시 그 순간을 겪어야할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련했던 이유

소방관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하루하루의 소중함, 화재현장의 구조를 마치고 기적처럼 가족들과 마주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기에 영화가 다 끝나고 말없이 내 양쪽의 두 남자 - 사랑하는 소방관 남편과 또 커서 아빠처럼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아들 - 의 손을 꼭 잡았다.

"울었던 거야? 이 사람 참!"

하도 흐느끼는 날보고 깜짝 놀라하다가 너털웃음을 지어내는 남편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참 고마웠다. 가족을 위해, 또 누군가를 위해 매번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남편과 같은 소방관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것을 일깨워준 영화 <타워>에도.
#타워 #설경구 #소방관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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