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청와대 경호실' 개편안이 우려스러운 까닭

[取중眞담] 장관급 경호실장 세계적으로 드물어...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 비판도

등록 2013.01.27 16:46수정 2013.01.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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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25일 현재 차관급인 청와대 경호처를 장관급의 경호실로 격상시켜 청와대를 '3실 체제'로 운영하는 내용의 청와대 조직 추가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날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을 비서실로 개편함에 따라 경호실을 비서실로부터 분리하고,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유민봉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경호처의 업무 과중에 대한 요구 사항을 박 당선인이 수용한 것"이라며 "차관이 그 기관의 장(長)일 때와 장관이 그 기관의 장일 때 구성원이 가지는 사기라든지 이런 것이 (달라진다)"라고 개편안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인수위가 밝힌 경호처의 승격 배경은 '독립성 확보'와 '과중한 업무부담 완화', '경호관들의 사기 진작' 등으로 요약된다. 인수위의 경호실 격상 방안에 대해 박근혜 당선인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총탄에 잃고 자신도 유세도중 피습당했던 일종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수위의 경호처 개편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박 당선인이 특임장관을 없애고 청와대 기능과 권한을 축소한다고 해 놓고, 경호처장을 장관급인 실장으로 격상시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경호실 기능이 비대화될 뿐 아니라 경호실과 경찰청이 수직적인 관계가 돼 무소불위의 경호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경호실장의 장관급 격상은 과거 유신체제와 군사정권으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라는 비판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경호실장, 대통령 권력유지 수단으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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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행사장에서 차지철 경호실장 등과 함께 자료를 보고 있다. (왼쪽에서 2번째부터 차지철, 박정희, 이상열, 박종규씨)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대통령 경호조직은 1949년 이승만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전신인 경무대에 경찰서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대통령은 1963년 12월 14일 대통령경호실법을 제정·공포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17일 대통령 경호실을 창설했다.

5·16 쿠데타에 참여했던 육사 8기 출신 홍종철 육군 준장이 군복을 벗고 초대 경호실장에 임명됐다. 2대 경호실장은 '피스톨 박'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박종규 예비역 대령이 맡아 1964년 5월부터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10년 3개월간 재임했다.

문세광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박종규 실장의 뒤를 이었던 인물이 바로 차지철이다.

1961년 제 1공수특전단 중대장(대위)의 신분으로 군사쿠데타에 가담했던 차지철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경호대 경호차장에 임명되었고, 박정희 정권의 출범과 함께 중령으로 전역, 공화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이후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던 그는 박종규 실장의 뒤를 이어 3대 경호실장을 맡게 된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가 심화될수록 경호실장의 권력도 막강해졌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박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차 실장은 경호실 차장 밑에 행정차장보, 작전차장보 자리를 새로 만들어 현역 준장을 임명했다. 현역 소장 직위였던 경호실 차장직은 나중에 중장 자리가 되었다.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던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과 33경비단은 대대급에서 여단급으로 격상됐다.

당시 차 실장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1977년 이후 매주 금요일 오후 경복궁 연병장에서 열렸던 국기하강식이다. 이 행사에 차 실장은 고위 공직자들과 재벌 총수들을 불러 놓고 국기하강식과 사열을 받으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는 제2의 권력자로서 국회와 행정부, 군 인사 등을 좌지우지했으며, 백발이 성성한 장관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등 온갖 횡포를 일삼았다. 이러한 차지철의 월권과 전횡이 10·26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절대 권력자의 안전을 책임진 청와대 경호실장은 권부의 실세였다. 나아가 대통령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변질된 경호실 권력은 곧잘 비리와 연결됐다. 장세동 경호실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대리해 정치자금을 모금하다 구속됐고, 이현우 경호실장 역시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다 구속됐다.

1993년 문민정부 이후 대통령 경호실 위상 변화

강한 권력을 가지고 독재자를 보필하던 청와대 경호실장의 위상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부터다. 군 출신이 경호실장을 독점하던 전통은 경호실에서 잔뼈가 굵은 민간 출신 박상범 실장(9대)이 맡으면서 깨졌다.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경호실장은 실질적으로 차관급으로 임명됐으며, 지난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는 아예 정부조직개편을 하면서 경호실을 대통령실 소속 기구로 축소시켜 '경호처'로 만들었다.

당시 정부조직 개편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박형준 의원은 "경호실 개편은 3공화국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조직체계를 글로벌 표준에 맞춘다는 의미가 있다"며 "필요하고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원위치 시킨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 외국의 예를 보아도 아프리카·중동의 몇몇 국가나 북한 같이 군이 직접 최고권력자의 경호를 담당하는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경호실 조직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드물고, 국가원수의 신변안전을 책임진 경호 책임자를 장관급으로 둔 경우는 거의 없다. 영국, 일본, 프랑스는 경찰이 국가원수와 총리의 경호를 맡고 있으며 독일은 내무부 연방범죄 수사국 경호안전과가 이를 담당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통령 경호실을 우리나라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 정도를 꼽을 수 있지만, 그 수장의 지위는 차관보급에 불과하다. 비밀검찰국(United States Secret Service, USSS)으로 불리는 미국 대통령 경호실은 본연의 대통령 경호 업무 외에도 위조지폐, 신용카드 범죄, 사이버 범죄 등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갖고 있다.

미국 대통령 경호실은 당초 위조지폐 수사 기관에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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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경호실이 특정 범죄 수사까지 맡고 있는 이유는 이 조직의 최초 임무가 위조지폐 적발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남북전쟁중 남부가 북부의 경제를 교란시키기 위해 위조했던 북부 화폐를 비롯해 각종 위폐가 성행하자 링컨 대통령은 대응조직을 재무부에 신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865년 7월 5일 40여 명의 직원으로 출범한 비밀검찰국은 위폐조직을 적발, 통화신용제도를 정착 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인 KKK단을 수사하고 미국·스페인전쟁 당시에는 스파이를 적발하는 방첩 업무까지 맡았다.

연방 정부로 집중되기 쉬운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찰권을 각 주가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구조에서 비밀검찰국은 1906년에야 지금의 대통령 경호까지 그 업무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그동안 링컨 대통령(1865년)과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188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1901년)의 암살이 있었다. 

50년 사이 세 명의 대통령이 암살당했음에도 대통령 경호 전담조직이 만들어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기구의 신설이 연방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을 비대하게 만들어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 때문이었다. 권력 집중에 대한 우려와 대통령 경호조직에 대한 필요성이 만난 지점이 바로 재무부 산하 비밀검찰국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지난 2003년 1월, 9·11 테러의 여파로 신설된 국토안보부(Homeland Security) 산하로 들어갈 때까지 100여 년간 비밀검찰국은 재무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6500여 명의 요원을 거느리고 한해 15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사용하는 비밀검찰국의 역사에는 이처럼 삼권분립과 권력견제라는 논리가 숨어 있다.
#청와대 경호실 #박근혜 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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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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