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도 없다, 스펙도 없다... 그래도 잘 사는 비법?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 3] 청년 활력 도시락 가게 주인 단미와 쫑

등록 2013.02.07 19:12수정 2013.02.1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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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곰세(고갯마루에 선 곰 세마리)는 청소년을 키우는 세 명의 엄마들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우리는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 누군가에게 물 한모금 건네고 서로 길을 물어 보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가 되고자 합니다. '고곰세의 좌충우돌 인터뷰'는 청소년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심한 40대 엄마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학력에 상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과 대학, 꿈과 일에 대해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만점에 가까운 토플 점수는 기본이고 해외 봉사활동에 각종 자격증이 없으면 사회 속으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엄두가 나지 않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빽'도 스펙도 없이 자립하겠다고 도시락 배달가게를 창업한 청년들이 있다.

서울 마포구 성미산 마을에 자리 잡은 도시락 배달 가게 '소풍가는 고양이'(이하 소고)의 주인 26살 김은지(이하 별명 단미로 부름)씨와 19살 나종우(이하 별명 쫑으로 부름)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 가게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에서 운영하는 '연금술사 프로젝트' 2기 청년들이 201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2012년 5월 창업 1주년 기념 모임을 준비하고 있던 단미와 쫑을 처음 만난 후 지난 1월 31일 다시 만났다. 그들은 주방과 홀을 합쳐 8평 남짓한 가게에서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하느라고 여전히 분주해 보였다.

도시락 배달업체 주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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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활력 도시락 가게 - 소풍가는 고양이 성미산 마을에 있는 소풍가는 고양이. 가까운 곳은 가게 앞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한다, ⓒ 김영숙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던 단미와 머리카락을 자르기 싫어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서당에 다니던 쫑은 '연금술사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났다. 자격증을 땄지만 학연과 지연의 벽에 막혀 막막했던 단미는 지인의 권유로, 쫑은 아버지의 권유로 '연금술사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연금술사 프로젝트'
하자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창의네트워크학교중 하나이다. 구태여 대학을 가지 않아도, 사회에서 말하는 표준적 직업 교육을 받지 않고도, 투명인간이 되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고 있다. <소풍가는 고양이>는 연금술사 프로젝트 창업1호점이다.
2011년 2월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창업 준비, 창업과 가게 운영을 직접 해보는 일종의 일학교이다. 단미는 초기에 일머리를 키우기 위해 했던 여행이나 활동을 친구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다단계로 오해받기도 하고 스스로도 스펙없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사회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이 창업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어른들의 도움덕분이다.

"창업아이템은 이미 정해져 있었어요. 우리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했지만요. 프로젝트 교사들이 시장조사, 수익률 분석등 사전 준비를 많이 도와줬어요. 만약에 우리가 아이템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다 관여해서 해야 했다면 진이 빠져서 지쳤을 것 같아요. 우리끼리 했다면 가게 문을 열 수 있었을까요?"


2011년 12월에 프로젝트가 종료되었고 교육 현장이었던 '소고'는 '하자센터'에서 독립하여 주식회사가 되었다. 대부분의 동기생들은 수료 후 가게를 떠났지만 단미와 쫑은 출자를 통해 '소고'의 이사가 되었다. 가게가 정착할 때까지만 돕기로 했던 프로젝트 교사 박진숙씨와 차주희씨도 이제는 도우미가 아니라 '소고'의 이사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별명을 부르는 모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4명의 공동주인들은 가게에 대한 모든 일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책임을 진다.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출자금을 내고 있어요. 겉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내 가게라는 생각이 이전보다 더 강하게 들어요. 월급 받으면 방세, 핸드폰 요금 등등 이 것 저것 할 것도 많은데 출자금을 내려니 은근히 부담되어요. 그래도 눈 딱 감고 내요. 주인이니까."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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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예약 달력 도시락 배달은 최소 하루전에 예약을 해야한다. 10인분 이상이면 서울 시내 어디든지 배달한다, ⓒ 김영숙


'소고'는 성미산마을에 있는 유기농반찬가게 '동네부엌'과 협업하고 있다. 메뉴 구성과 요리를 가르쳐준 '동네부엌' 외에 창업자금을 마련해 준 권혁일 NHN 해피빈 재단이사, 가게가 있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 , '하자센터' 그리고 프로젝트 교사들을 단미와 쫑은 자원이라고 부른다.

"자원은 빽도 스펙도 없는 우리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삶을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원 그러니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자원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그 덕분에 가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고 끼니도 잘 챙겨먹게 되었어요. 예전에 비해 안정감을 많이 느끼고 내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팍팍 들어요."

인터뷰 내내 거의 말이 없던 쫑이 '소고'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즐겁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게임 대회에 나가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게임을 즐겨 한다는 쫑은 '소고' 일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서 게임을 적당히 하고 종료하는 절제력이 생겼다. 예전에는 이런 힘이 없어서 부모님과 자주 다퉜다고 한다.

'소고'는 주인들만 인간미를 느끼는 가게가 아니다. '소고' 페이스북을 슬쩍 들여다보니 도시락에 담긴 손길과 정성에 감동받았다는 손님들의 글이 많이 보인다. 정성껏 요리한 도시락을 예쁜 그릇에 담아서 배달하는데 맛도 일품이다. 실제로 가게에서 먹어본 해물볶음밥은 짜지도 않고 기름지지도 않으면서 맛있었다. 10인분 이상이면 서울 시내 어디든지 배달을 해주고 이런 반찬 저런 반찬은 빼달라는 손님의 사소한 요구도 잘 들어준다.

"대학원을 나와도 헤매는 세상...나는 잘 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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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가는 고양이 도시락 예쁜 찬합 도시락에 맛있는 밥을 담아서 배달한다. 소풍가는 고양이는 손님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1회용 용기를 사용하지만 거의 없는 일이다. ⓒ 김영숙


설거지를 해야 하는 도시락 통이 가게에 태산처럼 쌓여 있다. 주부인 내가 보아도 '헉' 하는 소리가 날 정도인데 이들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고 일이 마냥 즐겁다는 표정이다. 그나저나 밥벌이는 되는 걸까?

"아직은 적자와 흑자를 오가고 있어요. 그래도 수익이 점점 늘고 있어요. 월급이 얼마 전에 90만 원이 되었어요. 가게에서 4대 보험료를 다 부담하고 밥은 가게에서 주로 먹으니까 흔히 말하는 88만 원세대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요. 명품 가방에 목매는 것도 아니고…. 마을에서 함께 사는 것이 많이 도움되요."

아무리 가치있는 일을 해도 밥벌이가 되지 않으면 계속하기 힘들다. 게다가 단미와 쫑의 월급이라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소고'는 단미와 쫑에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 게다가 그들은 '소고'의 주인이다. 비성수기 여름철 특별 메뉴 개발을 걱정하는 그들에게서 주인의 힘이 느껴진다.

또래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은 대학을 어떻게 생각할까? 쫑은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단미는 캠퍼스 생활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대학이 필수 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단미의 친구들은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되거나 대학원생이 되었다. 취업도 힘들고 딱히 하는 일이 없는 경우도 있고 대학원에 간 친구들도 학문과 진리 탐구를 위해 진학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을 20년쯤 다니다가 퇴직금으로 창업을 하잖아요. 나는 그 과정을 생략하고 다른 20대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는 거죠."

대학에 대한 그들의 소신 있는 대답이 자립한 사람의 당당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립에 대해서 물어보니 의외의 대답을 들려준다. 쫑은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자신이 쓰는 생활비를 스스로 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단미 역시 가족들과 떨어져서 자신이 번 돈으로 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자립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립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온전히 자립을 해야만 자립이라는 어른스러운 그들의 말에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단미와 쫑이 그들을 도와주는 주변 어른들의 울타리 안에 안주 할까봐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청년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앞에서 끌어주는 어른들이 없으면 자립은 힘들어요. 어린 청년들은 책임감도 약하고 자기 절제를 잘 못하지 않나요? 26살 먹은 나도 그런 걸요. 나도 '소고'가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단미와 쫑은 그들의 경험을 청년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지난 여름에는 고등학생이 일주일동안 '소고'에서 일 체험을 하기도 했다. '소고'에서 돈을 버는 것이 단미와 쫑의 최종 꿈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청년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도와주는 일터이자 배움터인 '소고'를 꿈꾸고 있다.

2012년 11월 서울시로부터 18세~24세의 젊은이들의 자립과 자활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혁신형 예비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었다. 멀지 않아 단미와 쫑의 꿈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제2 , 제3의 단미와 쫑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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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있는 소풍가는 고양이 부엌일보다 더 힘든 결산작업, 보고서 작성 ,기획회의등등 ⓒ 김영숙


'빽'과 스펙없이 살 수 있을까? 빽과 스펙이 없으면 특별한 재능을 가져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들을 만나기 전에 생각했다. 그들은 3시간만 자도 끄떡없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이거나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쳤거나 아이디어가 샘처럼 솟아나는 두뇌를 가진 청년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나의 기대와 달리 단미와 쫑은 평범하다. 도시락 주문이 평소보다 늘어나면 얼굴에 피곤한 티가 금세 묻어나고 한가한 시간에는 게임을 하거나 기타를 치고 의견이 맞지 않으면 다투기도 하는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다. 특히 쫑은 게임이야기만 나오면 즐거워하는 게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리고 '소고'를 도와주고 있는 주변 어른들이 쳐놓은 울타리가 너무 단단해 보였다. 어떤 어른은 창업자금을 모아주었고 어떤 어른은 가게 자리를 알아봐주고, 어떤 어른은 가게 운영을 함께 한다. 그들을 도와준 어른들이 하나둘씩 빠지면 단미와 쫑이 그대로 넘어질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처음에는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단미와 쫑은 누군가 넘어지면 옆에서 일으켜주고 서로 도와주면서 조금씩 어른으로 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후배 청년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어른들로 성장할 것이다. 어른과 청년들이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도와주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 이게 바로 평범한 그들이 빽과 스펙없이 사는 법이다.
덧붙이는 글 '하자센터'

1999년 12월 18일에 개관한 하자센터의 공식 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이다. 하자센터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진로 설 계 및 창의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청장년들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사회적기업등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있다.
#고곰세 #소풍가는 고양이 #도시락 가게 #청년 창업 #연금술사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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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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