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대통령실, 불법사찰 내용 보고받은 정황"

인권위 설립 이후 대통령에 첫 '권고'... 조사국 관계자 "자료 통해 드러나"

등록 2013.02.07 13:40수정 2013.02.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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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7일 오후 2시 57분]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직권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은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 조사국 관계자는 7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대통령실을 조사할 당시 사건 관계자들은 '대통령실은 불법사찰을 보고받은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대통령실이 보고를 받은 정황이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한 다음, 직권조사 최종 결정문에 대통령실 불법사찰 보고 내용을 넣을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설날(10일) 전에는 결정되지 않겠나 싶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대통령실(이명박 대통령 혹은 대통령실장)이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았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지난 2012년 이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정전길·하금열 전 대통령실장을 서면 조사했지만, 두 사람 모두 부인하면서 대통령실 보고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검찰 재수사가 종결됐다.

그러나 이후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재판에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VIP 보고' 문건 등이 드러나자 불법사찰 내용이 이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장에게 보고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번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드러난 정황으로 대통령실이 불법사찰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의혹이 더욱 거세질 수도 있다.

인권위, 대통령에 첫 권고... "대통령의 포괄적 통치권과 위임 근거로 불법사찰"


 국가인권위원회가 7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11층 브리핑실에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조사 결과와 정책 권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상영 기획조사팀장, 심상돈 조사국장, 한영일 조사총괄과장
국가인권위원회가 7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11층 브리핑실에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조사 결과와 정책 권고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상영 기획조사팀장, 심상돈 조사국장, 한영일 조사총괄과장이주영

한편, 인권위는 이날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관련해 "대통령에게 불법사찰이 근절되도록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인권위 설립 이후 대통령에게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는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11층 브리핑실에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직권조사 결과와 권고 결정 내용을 발표하며 이같이 밝혔다. 심상돈 조사국장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대통령의 포괄적인 통치권과 위임을 근거로 불법적으로 사찰했다"며 "또한 수집된 정보를 직무와 관련 없는 '영포라인' 관계자들에게 유출하는 등 권력 남용으로 귀결됐다"고 지적했다.


심 조사국장은 "이는 정치적 반대세력 관리를 위한 것이므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고, 또한 헌법 제10조·제17조 등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인격권과 자기정보결정권·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국민기본권을 침해한 사실을 확인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심 조사국장은 "이 대통령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직책·조직에 권고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인권위는 국무총리실에도 "공직 기강 확립이라는 목적의 정당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벗어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이를 공개하라"며 "사찰 피해자들이 명예회복 등 권리구제를 원할 경우 이를 지원하는 등의 조치하라"고 권고했다. 국회의장에게는 "국가기관의 감찰 및 정보수집 행위가 적법절차를 벗어나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적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4월부터 국무총리실 불법사찰 사건을 직권조사해왔다. 이후 1월 28일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조사 결과를 놓고 논의한 뒤 지난 4일 최종 정책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번 인권위 직권조사에서 드러난 국무총리실 불법사찰은 민간인 179명을 포함해 총 429건이었다. 불법사찰 지시는 민정수석실 10건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13건,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 65건, 공직윤리지원관실 자체 232건, 국정원 20건 등이었다.

불법사찰 보고처는 민정수석실 9건, 이영호 전 비서관 132건, 박영준 전 차관 6건, 이영호·민정수석실 74건, 이영호·박영준 15건, 이영호·민정수석실·박영준 22건 등이었다. 대통령실 보고와 관련해서는 결정문 미완성 등의 이유로 조사결과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민단체 "인권위 직권조사, 기존 사법기관 수사자료·판결 사실 재확인에 불과"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발표와 관련해 새사회연대 등 인권 관련 시민단체 등은 실효성 없는 권고라고 지적했다.

새사회연대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직권조사에 들어간 지 10개월 만에 내놓은 결과는 검찰과 법원 등 사법기관의 수사자료 및 판결에서 드러난 기존 사실들의 재확인에 불과할 뿐 새롭게 밝혀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새사회연대는 "대통령에 대한 권고는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정도인데다가, 임기 보름 정도를 남긴 대통령에 대한 권고는 아무런 강제력과 실효성을 갖지 못한다"며 "이번 권고는 인권적 실효성이 없으며 권력누수기를 틈탄 전형적인 권력 눈치보기식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법인권사회연구소도 성명을 통해 "인권위는 인권침해·차별 피해자들의 인권은 보호하고 그 피해를 구제하는 기능을 주된 업무로 하는 국가기관"이라고 전제한 뒤 "그런데도 인권위는 사찰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 대한 어떠한 피해구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인권위 스스로가 피해자의 인권침해 구제 책무를 부인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인권위는 이번 결정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고, 인권침해의 구체적인 내용과 유형을 밝히지 않았다"며 "가해 책임자와 실행자를 특정해 공개하지도 않았고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그 측근인 대통령실과의 연관성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인권위 #민간인 불법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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