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장 나온 고3들의 외침, "드디어 해방이다!"

[학생부장 일기 39] '고3'은 고등학생이 아니다, '수험생'일 뿐!

등록 2013.02.09 12:46수정 2013.02.09 12:46
0
원고료로 응원
학교마다 졸업식이 한창이다. 학생들에게는 지난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각별한 자리일 테지만, 학교는 또 다른 '1년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12월이 아니라, 졸업 시즌인 2월이 학교의 진짜 '세밑'이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교사들은 교육청의 인사 발령을 기다리며, 남는 교사들에게는 올해 어느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가 결정되는 때다. 거기에 따라 교사들 간 업무의 인계인수가 이뤄진다. 또, 몇 학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구체적인 수업 과목은 무엇인지도 이맘때쯤 모두 결정된다.

교과서와 지도서를 받아 예습을 하고, 수업과 평가 계획서를 만들고, 수업지도안의 얼개를 미리 짜둬야 3월 개학 후 허둥지둥하지 않는다. 게다가 담임을 맡게 되면, 작년 담임으로부터 학급에 배정된 아이들 개개인의 성향과 가정환경, 성적 추이 등의 대강을 파악해둬야 학급 운영에 차질이 없게 된다.

교사들에게 졸업식이 끝난 후 2주 남짓의 '봄방학'은 외려 생활기록부를 꼼꼼히 정리해야 하는 때와 더불어 연중 가장 바쁜 시기다. 업무 변경과 이동을 앞두고 짐을 싸며 지난 1년간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무실 옆 쉼터에 모여 무슨 자료뭉치를 주고받으며 분주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맘때는 아이들도 바쁜 모양이다.

뭐하나 싶어 살짝 들여다보니, 아이들끼리 그들의 '업무'를 인계인수하는 중이었다. 학교 내에서 내로라는 어느 동아리의 선후배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자못 진지한 표정이었다. 자료를 건네는 아이들은 현재 고2 아이들이고, 받는 아이들은 고1이었다. 3월이면 각각 고3과, 고2로 진급하는 아이들이다.

지난 1년의 동안의 활동 자료가 제법 두툼한 종이뭉치와 외부저장장치(USB)에 담겼다. 학년 말이라 별도의 동아리 활동 시간이 주어지지 않다보니, 점심시간 등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선배들은 지난 해 활동 중 아쉬웠던 점과 보완할 점 등을 돌아가며 얘기했고, 후배들은 경청하며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아무리 선배라지만 그들이 주도적으로 동아리를 이끈 건 고작 1년이다. 작년까지는 그들도 지금의 후배들처럼 선배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무언가를 받아 적었던 아이들이다. 더욱이 2학년이 된 이후 새로 가입해 활동한 아이들도 있어 선배라고 하기에는 어색한 경우도 있다. 길어야 2년이지만,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대단해 보였다.


그들을 보면서 내달 고3이 되는 지금 고2 아이들이 갑자기 가여워졌다. 그들의 학교생활은 1년 선배들의 졸업과 함께 사실상 끝났다. 이제 그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뿐이다. 동아리 활동도 접어야 하고, 심지어 학생회장도 그 역할을 2학년에게 넘겨줘야 한다. 소풍과 체육대회 같은 행사도 횟수가 제한된다. 모두 수능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매달 수능 대비 모의고사를 치러야 하고, 전국 단위 일제고사 등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는 주말에도 학교에 나와야 할 만큼 팍팍한 일상이 이어진다. 그들에게 여름방학이 사라진 지는 꽤 오래됐다. 방학 중 보충수업에 대한 시수 제한 규정이 있긴 하지만, 고1과 고2에 해당되는 것일 뿐이다. 고3은 대개 학교에서 행해지는 모든 교육행위에 대해 '예외'를 인정받는다.

우리나라의 '고3'은 고등학생으로 분류되지 않고, 그냥 수험생으로 통칭되는 '고유명사'다. 교사도, 학부모도, 심지어 아이들 자신도 대개 그런 줄 안다. 아이들은 고3만 되면 마치 군에 입대하는 사람처럼 그토록 기르고 싶어 하던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민 채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면서 "수능이 1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이제 사람 되야죠"라고 말한다.

고3이 되면 늘 그래왔듯 등교 시간은 당겨지고, 하교 시간은 늦춰진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등교시간이 너무 빠르다며, 또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잠이 부족해 수업시간 졸기 일쑤라며 불평을 늘어놓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수긍한다. 말하자면, 고2 학생들에게 2월 한 달은 생체 리듬을 고3으로 맞춰야하는 기간이다.

사람들은 고등학교 시절을 '학창시절의 꽃'이라며 추어올리지만, 어디까지나 고3은 열외다. 고2때까지는 꿈을 꾸는 시기이지만, 고3은 꿈을 이루기 위해 꿈꾸기를 잠시 멈추고 자유와 행복을 기꺼이 저당 잡히는 시기다. 아이들의 노트마다 적혀있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겨라'는 등의 '4당(當)5락(落)'류의 글귀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스마트폰은 내 분신'이라며 단 한 시도 스마트폰 없이는 못 살겠다는 아이들이지만, 고3은 그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수능 대박'을 위해 서로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며 카톡을 꺼두는 시기다. 스스로 스마트폰을 해지하는 아이들마저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스마트폰 분실 및 도난사건에 고3이 연루되는 경우는 드물다.

늘어난 보충수업으로 인해 고3은 이전의 2년에 비해 수업량이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 집중이수제 등의 영향으로 음악과 미술 같은 예체능 과목은 말할 것도 없고,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과목은 원천적으로 배제되므로, 좋으나 싫으나 국영수를 비롯한 몇몇 수능 과목만 주야장천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결코 '교육적'일 수는 없지만, 문제를 푸는 데에 반복 학습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그야말로 숨 막히는 일과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순간 낙오자로 취급된다. 교사는 물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그들의 부모조차도 "다른 얘들 다 견디는데 왜 너만 그러냐?"며 책망하기 일쑤다. 곧, 여전히 단 한 명의 열외도 허용하지 않는 일사불란한 군대조직 같은 곳이 고3 교실이다. 차라리 비장하다고나 할까.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모르진 않지만, 고3 담임교사들은 '고지'를 코앞에 두고 아이들 앞에서 유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졸업하면 이해해줄 거라고 자위하며 더욱 아이들에게 모질게 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서 고3 교사의 '숙명'이라고 한탄한다. 그게 본심은 아니라며. 그게 다 제자들 잘 되라고 하는 것이라며.

졸업식이 끝날 때쯤 한 손에 꽃다발을 든 졸업생 한 명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몇몇 2학년 후배들에게 웃으며 한 마디 건넸다. "어떻게 지옥 같은 1년을 보낼래? 내가 만약 너희들이라면 자살한다!" 힘들었던 자신의 고3 시절을 그렇게 표현한 거다. 군대에서 전역하는 선임병이 신참들에게나 건넸을 법한 농담이지만, 후배들에게는 결코 가볍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도 내년엔 후배들 앞에서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될 것이다.

지난 여름방학 어느 날, 축제를 앞두고 한창 연습 중인 후배들의 모습이 정말 부럽다며, "딱 한 번만이라도 무대에 서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쓴웃음을 지어보인 고3 한 아이가 떠올랐다. 베이스 기타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다뤘던 자타 공인 '뮤지션'이었는데, 고2 시절 축제 때 무대 위에서 펼친 공연을 잊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도 고3이 되면서 '딱 1년만 참자'고 다짐하면서 베이스 기타를 장롱 깊숙이 넣어뒀다고 한다. 마치 금연을 실천하듯 그때까지 한 학기 동안 단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다고 자랑했지만, 나중에 듣자니까 끝내 못 버티고 '직업반'을 선택했다고 한다. 직업반이란, 전문계 고등학교에 대학 진학반이 개설돼 있듯, 인문계 고등학교에 설치된 전문 기술반을 일컫는다. 대개 학교 내에 과목을 개설하지 않고, 그저 외부 학원을 다니도록 허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마 그는 그토록 좋아했고 나름 실력도 갖췄던 음악을 배우고 있을 것이다. 대학의 관련 학과에 진학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반추하는 고등학교 시절은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소식이 못내 궁금해 그와 친했던 한 아이를 불러 물었더니 대뜸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그는 한 선생님의 '조언 아닌 조언'을 듣고, 학교를 그만둘까도 고민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공부와 성적 아닌 건 아예 고민으로 받아들여주질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학교 다니던 옛날에는 훨씬 더 했다. 이제 8부 능선을 넘었다. 직업반을 선택하는 순간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음악은 대학 가서 해도 늦지 않다. 이왕 참은 김에 조금만 더 참자."

전국 고등학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학이 이러한 고3의 현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고등학교 생활이 교육과정대로 온전히 3년간 유지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여건을 만들어줄 수는 없을까.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을 제외하고 고3 시절 아이들의 활동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관행을 바로잡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지난 수능시험이 끝나고 시험장을 나서는 아이들로부터 들은 외침(?)을 졸업식 날에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염색을 하고, 검정색 양복을 멋지게 빼입은 아이들이 졸업식장을 삼삼오오 빠져나오며 이렇게 외쳤다. "드디어 해방이다!" 고3들에게 학교란 해방을 기다리는 엄혹한 식민지였던 셈이다.
#학생부장 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5. 5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