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매화3월 말경부터 4월 중순까지 선암사는 그윽한 매화향으로 가득하다.
박선미
사계절 꽃절로 불리는 절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봄이면 깊고 그윽한 매화향에 취하고 절 전체가 마치 커다란 정원과도 같은 전라남도 순천의 선암사. 이듬해 봄비가 내리던 날 선암사를 찾은 후로 매년 봄이면 매화의 개화시기에 맞춰 절을 찾았다. 지금은 비단 봄뿐만이 아니라 사계절 매월 찾는 곳이 되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며칠 머물 생각으로 절에 4박 5일 예약을 하고 기차표도 예약했다. 사진도 접어두고 푹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번 겨울은 감기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넘기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출발일 아침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일정을 취소할 수 없어 집을 나섰다. 순천행 기차는 용산역을 출발했고 기침이 날 때 마다 마치 기관지를 통째로 뜯어내는 듯 아프기 시작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순천역에 도착해 바로 병원으로 갔다. 입이 방정이었다. 독감이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서 선암사행 버스를 탔지만 괜찮을지 내심 걱정이었다. 종무소에 등록을 마치고 방사에 배낭을 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치 도미노가 넘어가듯 아프기 시작했다.
둘째 날 오후가 돼서야 겨우 대웅전으로 가서 절을 하는데 어딘지 이상했다. 곰곰이 살펴보니 합장을 하고 삼배를 해야 맞는데 장례식장 문상을 하듯 절을 하고 있었다. 얼굴의 화끈거림이 단지 감기로 인한 열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셋째 날까지 절에서 머문 동안 아침 점심 저녁식사 말고는 양치하고 화장실 다녀온 기억밖에 없다. 빠짐없이 감기약을 챙겨 먹었지만 겨우 거동이 가능할 뿐 호전이 없다. 문득 보리암 생각이 났다.
'비바람으로 돌 속에 나를 가두더니 이제 독감으로 산골짝 절에 가두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