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보다 높은 추정보상가... "믿을 수 없어"

경기도 추정분담금 시스템(GRES), 재개발 주민들은 혼란 가중

등록 2013.02.12 11:15수정 2013.02.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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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격에 팔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실제 거래 가격보다 더 높게 나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알려 달라고 하지 말 걸 그랬어요. 이거 하느라고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경기도 안양 상록 재개발지구(안양 8동) 주민 이원상씨의 말이다.

"안양시가 이럴 줄 몰랐어요. 아무리 추정치라지만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는데, 터무니없어요. 보상가는 대체로 실거래가 보다 낮은 편인데, 안양시는 오히려 더 높게 뽑았어요. 정말 후회스러워요, 왜 이거 알기 위해 그리 애썼는지..."

안양 비산동 임곡재개발 지구 주민 박창용씨의 하소연이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재개발 반대운동을 해왔다. 이들이 '속앓이'를 하는 이유는 안양시에서 주민들에게 제시한 보상금 추정치가 현 시세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추정 보상금이 높으면 좋아해야 할 텐데, 이들은 어째서 '속앓이'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재개발 해제 동의서를 받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미 시작된 재개발 사업을 멈추려면 토지 등 소유자(집주인이나 땅 주인)들에게 재개발 해제 동의서(50% 이상)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추정 보상금이 높게 나와서 주민들이 해제 동의서에 서명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추정 보상가를 알려 달라고 한 당사자가 본인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 마음을 돌리기 위해 벌인 일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상황이라고. 추정 보상가가 나오면 개발 반대 열기가 높아질 줄 알았는데 되레 찬성 분위기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 그러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덕천마을 효과' 기대하며 서명운동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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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8동 상록재개발 지역 주민 이원상 씨 ⓒ 이민선


지난 2012년 2월 1일, 개정된 법령에 따라(도정법 16조 2항)해당 지자체 장은 토지등 소유자의 100분의 10(10%) 이상의 요청이 있을 경우 토지 등 소유자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개략적인 정비 사업비 및 추정 분담금 등을 조사해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두 사람은 이 법령이 제정 된 것을 알고는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추정 분담금을 알려 주기 위해서는 '추정 보상가'를 알려야 하고, 그 추정 보상가가 알려지면 그동안 재개발에 찬성했던 주민들이 모두 반대로 돌아설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렇게 믿었던 배경에는 안양 덕천마을 재개발 지역 선례가 있다. 지난 2009년 2월, 시행사인 LH공사가 보상금액을 발표하자 주민들은 보상가격이 당시 시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며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당시 LH에서 주민들에게 제시한 감정 평가 금액은 3.3m²당 단독주택(대지기준)이 865만 원, 연립주택(건평기준) 798만 원 수준이다. 또, 분양 예정 아파트 가격은 59m² 크기가 3.3m²당 1015만 원, 84m² 크기가 1068만 원, 114m² 가 1247만7000원, 139m²가 1339만5000원이다.

이런 효과를 기대하며 이들은 몇 개월간 서명 운동을 벌였다. 집 주인 10% 이상이 동의해야 안양시에 추정 분담금을 알려 달라고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추정 보상가를 주민들에게 알게 했지만,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주민들은 아무런 동요를 하지 않았다. 추정 보상가가 예상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현 시세보다 정말 더 높을까? 공인중개사한테 물어보니

안양시가 제시한 추정 보상가가 현 시세보다 정말 높은지 알아보기 위해 지난 8일 오전, 인근 부동산을 통해 시세를 알아봤다. 안양시가 제공한 임곡재개발지구 우성아파트 (64.44㎡·21평형) 추정 보상가는 2억4640만 원으로, 부동산 사이트에 나와 있는 '상한가' 보다도 높았다. 부동산 사이트인 '닥터 아파트'에  나와 있는 아파트 가격 상한가는 2억3500만 원이고 하한가는 2억1000만 원이었다.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닥터 아파트'에 가격 정보를 제공한 '임곡주공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공인중개사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부터는 거래가 아예 뚝 끊겨서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만약 거래가 이뤄진다면 2억 원에서 2억1000만 원 사이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안양 8동 상록 재개발 지구는 대부분 다세대와 연립주택이라 인터넷에서 가격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8일 오전 상록지구에 있는 A공인중개사 사무실을 방문, 가격을 직접 알아봤다.

안양시에서 제시한 추정 보상가를 알려주고 현 시세를 묻자 공인 중개사는 "지금은 현 시세를 알 수 없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물으니 "2년 째 거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시세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래도 현 시세와 안양시에서 제공한 추정 보상가중 어느 쪽이 높은 것 같으냐고 묻자 "추정 보상가가 대체로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GRES' 믿을 수 없어, 더 헷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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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비산동 임곡 재개발 지구 주민 박창용 씨 ⓒ 이민선


재개발의 경우, 시세에 비해 보상가가 낮은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런데 안양시에서 제시한 추정 분담금은 어째서 시세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일까. 또 안양시에서 제시한 추정 보상가는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두 가지 궁금증을 풀기위해 감정평가(두요감정평가법인)법인 이정국 대표와 전화 통화를 했다. 이 대표는 "실제 감정 평가를 할 때는 감평사들이 감평 당시 거래 시세를 감안하고, 직접 주택을 방문해서 일일이 조사한 후 평가 하는데 비해, 추정 보상가는 아마 국토 해양부에서 정한 공시가에 보정률을 적용해서 산출 한 것이기에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추정보상가와 실제 보상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안양시에서 제공한 추정 보상가가 시세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안양시에서 제시한 추정 보상가가 시세보다 높은 게 사실이라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세를 감안하지 않고 단순히 보정률을 적용해서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한편, 안양시가 주민들에게 제공한 추정 보상가는 경기도가 마련한 'GRES' 추정분담금 시스템으로 조사한 것이다. 'GRES'는 재개발 주민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참고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도가 만든 시스템이다.

재개발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이원상씨는 "정보라는 게 어느 정도 정확하면 정보지만, 그렇지 않으면 소문보다도 못하다는 걸 이번 일을 겪으며 알게 됐다"며 "그 시스템(GRES)를 믿을 수 없다,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더 헷갈린다"며 'GRES'시스템에 강한 불신을 표시했다.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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